야만의 시대는 소수의 특정 계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자유와 평등, 행복 증진이 아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하며 다수의 일반을 통제하고 고통과 상실, 비참함을 겪도록 하는 세상이다. 권력을 쥐고 주인 행세를 하며 보호자로서의 역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농민 운동 지도자 자크 카이에의 연설에서 이야기하듯 강도짓에 길든 사나운 폭군, 못된 망나니, 탐욕스런 박해자들일 뿐이다.
 
 
[본문발췌]
 
필립 6세와 장 2세 치하에서 토지 예속은 전례 없이 잔인했다. 온갖 봉건적 권리가 횡행했다. 밀 10파운드를 수확한 농민은 영주와 사제에게 7파운드를 주었다. 전자에게 봉건 십일조, 후자에게는 성무 십일조를 바쳤다. 게다가 농민은 영주에게 현물세 혹은 농지 수입 5분의 1, 농노 각자에게 임의로 부과되는 정액 지대(地代), 종종 한 달에 10일 걸리는 부역, 무거운 조세 그리고 수많은 사용료를 바쳐야 했다. 밤에는 영주 저택을 지켰고, 4가지의 경우에는 영주에게 인두세를 바쳤다. 농노와 봉신은 영주의 볼모가 되어야 했고, 짐 나르는 짐승들처럼 매매되었다. 또한 14세기에는 성직자가 주교구에 말을 타고 부임했는데, 이때 시중드는 남자 3명과 여자 3명을 대동했다.
영주는 초야권을 누렸는데, 15세기 초까지 심지어 신부와 사제, 그리고 주교도 마찬가지로 그 권리를 행사했다. 그들은 소녀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으며, 이를 이용해서 미혼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망나니권, 판매권, 측량권, 영지 매매권 등을 행사해서 영지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의 일부분을 그들이 취했다. 잔재권으로 모든 유기 가축을 차지했고, 그들의 땅을 지나는 통로와 강에 대한 통행세, 겨울에 불을 지피는 농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인 호별세, 임의 몰수권, 사냥 및 어업세, 기타 잡세 및 인두세, 재미를 위한 농지 유린권을 행사했고, 무역을 가로막는 외국인 재산 몰수권 및 파선권 등을 가졌다. 백성은 죽기 전에 사제의 재산을 늘려주려 하지 않으면 교회 축성지에 묻힐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지 않고, 사제에게 결혼 음식을 바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특권을 가진 성직자는 십일조를 정확히 납부하지 않은 사람, 교구를 위해 유산을 남기지 않은 사람, 그리고 수도사가 자식을 출가시키라는 명령을 전할 때 따르지 않는 사람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했다. 가문의 장자가 아닌 사람들은 장자권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
성관은 종종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루이 성왕 시대에, 행인을 더 이상 강탈하지 않고 위조화폐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기로 했던 영주들은 모두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 예속 농노들은 불행을 타고 태어난 초가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법도, 치안도, 사법도, 풍습도 없어 프랑스에는 온통 강도짓과 미신, 광신, 특권 그리고 불행이 가득했다.
 
※ 4가지 인두세 : 1) 농민들은 영주가 성지순례를 떠나면 여행비용을 부담했다. 2) 영주가 감옥에 갇히는 경우 돈을 지불하고 그를 석방시켰다. 3) 영주가 어떤 기사단에 가입하면 그들의 옷값을 부담했다. 4) 영주 딸이 결혼하면 지참금을 냈다.
 
 

농락당하고, 지치고, 짓눌리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더욱 심하게 반발했다.  혼란은 극에 달했다. 각자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뒤엎었으며, 그런 것에 놀랄 필요도 없었다. 왕은 대중의 행복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욱 키우는 데 몰두했고, 각자는 그런 왕의 본을 따랐다.
 

나는 내 아버지의 주인인 그 영주만 잔인한 괴물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한결같이 비정하고 야만적이었다. 영주가 농민을 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보면, 정말로 각각은 피가 다르고 시원(始原)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주는 권력과 재산을 갖고 죄를 짓고도 당당한 데에 반해, 농민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하며, 고통을 당하면서도 선행을 베풀었다. 모든 농노는 물론 그들의 잘난 주인과 마찬가지로 내 아버지도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선량했다. 아버지가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오두막과 작은 경작지, 농기구, 아내, 자식들 그리고 아버지 자신 등 모든 것은 영주에게 속했다. 나는 아들 4명 가운데 막내였고, 아버지가 똑같이 애지중지하는 우리 아들 넷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토지에 딸린 종살이를 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였다.
 
 
인간이란 사방의 비천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스스로 대단해진다고 생각하고, 그가 지배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천하게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비천해질 뿐이다.
 
 
"내가 살인이나 다른 비슷한 죄를 저질렀더라도, 가벼운 처벌만 받으면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을 행했고, 내가 복종하는 고위 성직자가 관심을 갖는 복수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무슨 이단 범죄를 저질렀다는 구실로 죽을 때까지 지하 감옥에서 지내거나 그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마음대로 상상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굴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단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화형에 처해 버린다. 그들은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의 종족을 없애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무지의 시대에 배운 사람은 불행하고, 야만의 시대에 예민한 사람은 불행한 법! 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과 내가 경험하는 연민의 감정은 무지가 낳을 수 없고 악한 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희열을 준다네. 나는 하느님이 나의 운명을 정하신다는 것을 알아. 고난의 순간 다음에 오는 무한한 행복을 알고 있지. 지상에 널려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애통해하지만 압제에 시달리는 것이 압제자가 되는 것보다 낫고, 또 다른 세상과 영원한 시대가 있다고 생각하며 곧 눈물을 닦는다네."
 
 
수 세기 전부터 우리는 땅의 노예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굴종 상태에 놓여야만 하도록 우리 조상은 무엇을 했으며,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프랑스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영주 아래서 떨고 있습니다. 단지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물이 우리의 재산을 몰수하고 우리를 극도로 힘든 노동에 시달리게 하며, 우리 아내들의 순결을 훔치고 그의 변덕에  따라 우리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오직 우리가 땅을 일구고, 오직 우리 손으로 불쌍한 우리 조국 사람들을 먹여 살리며, 오직 우리만 유익한 일을 하는 주민이며, 오직 우리만 압제에 시달립니다. 영주의 삶은 어떻습니까? 명령하고, 몰수하고, 처벌하고,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만들어 냅니다. 농노의 몫은 무엇입니까? 노동, 면죄부, 고통 그리고 처형입니다.
 
 
지금과 같은 처지라면, 우리와 프랑스 땅에서 신음하는 모든 농노를 포함한 우리에게 우리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강도짓에 길든 사나운 폭군, 못된 망나니, 탐욕스런 박해자들일 뿐입니다. 이 주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지옥에서 토해진 괴물을 닮았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나섭시다. 우주의 조화를 파괴하고, 타고난 평등의 바탕을 뒤엎으며, 모든 인류를 학대하는 비겁한 적을 처단한들 우리가 하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리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나의 고통과 여러분의 고통, 나의 상실과 여러분의 상실, 내가 겪는 비참과 여러분이 겪는 비참, 나의 복수와 여러분의 복수, 나의 자유와 여러분의 자유, 나의 행복과 여러분의 행복, 프랑스 전체의 고통과 비참과 복수와 자유 그리고 행복이 분명합니다.
 
 
나는 내 기억력을 발휘하여 전할만한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영주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농노들이 노예 사슬 아래서 떨고 있는 한, 불행한 자크리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 전쟁을 강도짓이라 덧칠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멋대로 비방할 수 있는 불쌍한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카이에를 음모가이자 폭도로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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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만 영웅을 찾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결국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남는다. 그렇다. 영웅담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 우리의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떠났고, 우린 그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우리 시대의 영웅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자를.' - <작품해설 중>에서
 
영웅은 이야기 속에 만들어진다.
 
 
[본문발췌]
 
나는 이 러시아인이 어쩌다 함께 살게 된 종족의 관습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정신적 특성이 비난받을 만한 것인지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이 점이 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 그리고 명확한 상식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상식이란 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그것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용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회적 인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으로 더 가까이 다가설 때에 그처럼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습득해 온 모든 것들이 영혼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영혼이란 과거의 한 때와도 같은 것이 되며, 미래의 어느 날에도 또다시 이러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삶이란 그다지 많은 걱정을 할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을....
 
 
"왜냐하면 일이란 건 그렇게 될 수 가 없는 거니까요. 평범치 않게 시작된 일은 반드시 평범치 않게 끝이 나죠."
 

아무리 악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영혼이 지나온 역사란, 온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유익한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마음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관찰한 결과물이며, 동정심이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야망 없이 쓰인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루소의 <고백록>은 그가 직접 이를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점에서부터 진정한 고백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있을 때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과거의 기억들을 훑어 보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걸까? 하지만 무엇이었건 간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나의 종착지 역시 높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종착지를 짐작할 수 없었고, 공허하고 배은망덕한 열정에 매료되어 왔다. 나는 호된 시련을 통해 강철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졌지만, 고귀한 열망이 지닌 열기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인생에서 피어나는 최고의 꽃을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무수히 운명의 손에 들린 도끼 역할을 했던가! 사형 집행인의 도구가 되어 불운한 희생자의 목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종종 아무런 원한도 없이, 늘 아무런 후회도 없이.... 내 사랑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무엇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기꺼이 사랑했다. 내 마음의 기괴한 욕구를 충족시켜왔을 뿐이다. 그것의 감정과 애정과 기쁨과 고통을 게걸스럽게 삼켜 버리면서.... 여기엔 끝이 없었다. 이는 마치 배고픔과 피로로 지친 사람이 잠이 들면 풍성한 음식들과 거품이 이는 포도주를 보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는 공상이 준 이 천상의 선물을 기쁘게 먹어 치운 뒤에 흡족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든 환영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층 더 배고픔과 절망뿐인 것을!
 
 
이 모든 일을 생각해볼 때, 과연 애써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지만 모두들 살아가는 것이다.  호기심 때문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우습고 성가신 일이다!
 
 
내 기억 속의 과거는 얼마나 분명하고도 날카롭게 각인되어 있는가! 시간은 어느 한 개의 선, 어느 한 개의 얼룩조차 지워내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폭풍 속에서 저는 몇 가지 생각만을 해 왔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조차 없었어요. 오래전부터 저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왔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열정과 행동에 엄격한 호기심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들의 무게를 달고 분석해 왔지만, 한 번도 그 속에 참여한 적은 없었어요. 제 속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죠. 
 
 
이런 게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어떤 행동의 나쁜 점에 대해 이미 다 알면서도 당신을 돕고, 당신에게 충고하고, 심지어 그런 행동에 찬성하기까지 한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나중에는 발뺌을 하며, 모든 책임을 짊어질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분에 찬 모습으로 떠나 버린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심지어 아주 선량하고 똑똑한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자신이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음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우리는 지각의 속임수라든지 이성의 실수를 확신과 혼동하는가? 나는 모든 일을 의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경향의 마음이 성격상의 단호함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를 때엔, 언제나 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바보인지 악당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벨라보다도 더요. 제 영혼을 세상이 버려 놓아서, 불안한 공상과 탐욕스러운 마음만이 남았습니다. 제겐 무엇이든지 모자라요. 저는 즐거움 만큼이나 슬픔에도 쉽사리 길들여지고, 제 삶은 날마다 더더욱 공허해지는 겁니다. 이런 저에게 남은 유일한 처방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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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시야를 넓히고 문제의 본질과 근본 원인에 집중하며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 최적의 선택과 결정에 도달하게 한다.
 
조직의 리더, 가르치는 선생님, 심지어 인공지능 chat-gpt도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발췌]

창의성은 고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아이디어의 융합에서 나온다. 
혼자 고립돼서 하는 작업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결국 몇가지 안 되는 선택지만 생각하거나, 같은 아이디어를 반복적으로 재사용하거나, 과거에 효과 있었던 익숙한 방식에만 의존하게 된다. 혼자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날 가능성은 줄어든다.


모방은 호기심과 열린 태도를 자극해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뜻밖의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게 했다. 모방이란 어떤 완성물을 주의 깊게 관찰 및 분석해 핵심 요소를 파악한 후 재조립하는 과정이며, 이것은 우리 두뇌에 평상시와 다른 놀라운 프로세스를 가동시킨다. 대상을 수동적으로 관람하거나 소비할 때와 달리, 모방을 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으로 미묘한 디테일과 숨겨진 기법을 찾아내야 한다. 


일반 경영자와 비교할 때 파괴적 혁신가는 호기심에 이끌려 행동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그것은 혁신 마인드를 가진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혁신적 창업가는 질문을 던지고, 평범한 관리자는 규칙을 따른다. 
창업가는 넓은 시야의 질문을 던지고('진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 
만일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며("만일 우리가 현금을 받는 시스템을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근본 원인을 캐내려고 애쓴다("고객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적인 모방은 실패에 이르는 길이고 지나친 창의성은 퇴짜를 맞는다면, 해결책은 그 양극단을 모두 피하는 것이다. 즉 익숙한 것에 참신한 요소를 살짝 가미해 변화는 주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카림 라카니는 이를 '최적의 새로움(optimal newness)'이라고 칭했다. 기존 공식에 약간의 변화를 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창작자들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을뿐더러 그런 접근법은 실제로 비생산적이다. 두고두고 회자될 작품을 만드는 비결은 오로지 창의성과 기발함만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검증된 공식을 이용하되 그것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하는 것이다.


기존 공식을 변주하는 전략
  1) 여러 영향 요소를 결합하기 
  2) 다른 분야나 업계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활용하기 
  3) 팀원이나 주변 사람의 구성에 변화를 주기(물리적이든 가상으로든)
  4) 정보를 선택적으로 소비하면서 영향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
  5) 배경에 묻혀 있는 요소를 가져와 중심 요소로 만드는 것. 이것은 기존 공식에 이미 들어 있는 어떤 요소를 포착한 후 그 지위를 높여 돋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성공한 많은 창작자가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요소를 일부러 외면하거나 밀어낸다. 때로는 적게 섭취하는 것이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길임을 아는 것이다.


측정만 해도 변화가 일어난다. 수치화한 지표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목표를 향한 집중력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이 바로 측정이 발전을 낳는다는 '점수판 원칙'이다. 체중을 감량할 때든, 새로운 기술을 익힐 때든, 역설계로 알아낸 공식을 습득할 때든, 어떤 일에서든 발전을 위한 첫 단계는 끊임없이 점수를 기록하는 일이다.


효과적인 점수판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
  1) '다양한 지표를 수집하는 것'이다. 한 종류의 수치(판매 실적, 좋아요 수, 투자자나 잠재 고객의 미팅 요청 수)에만 집중하면 다른 중요한 요인들은 제쳐두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 수집하는 지표의 종류에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행동과 결과를 함께 점검하기, 단기적/장기적 결과를 모두 반영하기, 바람직한 긍정적 지표와 바람직하지 않은 부정적 지표를 함께 수집하기
  3) 아무 생각없이 오래된 지표만 관리하지 말고 때때로 '지표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영역의 실력을 닦아나가다 보면 점검할 가치가 있는 항목이 변하기 마련이다. 어떤 지표는 추적하는 의미가 없어지고 다른 새로운 행동과 관련된 지표를 추가할 필요성이 생긴다. 자신의 점수판을 고정된 기준점으로 보는 대신, 실력이 향상되고 목표가 조금씩 변화함에 따라 조정 가능한 도구로 여겨야 한다.


단순한 반복만으로는 성장과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한 학습은 자신의 능력치를 약간 넘어서는 어려운 것을 시도하고 결과를 본 뒤 필요한 조정과 보완을 해나갈 때 이뤄진다. 적절한 리스크를 감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어떤 분야의 기술이나 능력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자연히 결과물을 개선하는 것에 주력한다. 완벽한 글을 쓰고, 완벽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완벽한 강연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때로는 완벽함 추구를 잠시 미뤄두고, 자신의 접근법이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것인지를 먼저 타진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다 완성했는데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함정을 피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완성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다음 단계란 고객이나 관리자에게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나 창작자가 실패할 프로젝트를 미리 피하고, 성공 가능성을 더 빨리 판단하고, 훨씬 적은 리스크를 감수하게 해준다. 먼저 판매하고 나중에 만드는 전략의 가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초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결국 그것은 배트를 더 많이 휘둘러서 성공 아이디어를 맞힐 확률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규모가 작은 청중을 상대로 테스트하기, 가명 활용하기, 먼저 아이디어부터 판매하기, 포트폴리오 다양화하기. 이들 전략은 실패에 따르는 대가가 작으면 리스크를 감수하기가 훨씬 더 쉽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성장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발전과 성공을 위한 유일한 길은 진취성을 발휘해 더 많은 리스크를 끌어안고 불편한 상황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려운 도전에 기꺼이 맞서는 것과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똑같은 일이 아니다. 능력을 연마해 최고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다. 리스크를 감수하되 그 리스크를 줄일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단점을 인정하고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면, 자신의 행동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족한 성과의 연관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만족과 심리적 불편함은 새로운 해법을 찾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게 하는 동력이 된다. 따라서 성과의 도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문가는 단순한 반복으로 고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약점을 정확히 공략해 개선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야만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을 넘어 성과를 낼 수 있고 자동성의 지배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연습을 쉽지 않게 만들어 도전 의식을 북돋을 방법
1) 새로운 요소를 가미
2) 어려움을 높이는 것
3) 자기 분야와 완전히 다른 분야의 연습을 택하는 것


오늘날은 피드백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창작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요즘처럼 세세하게 얻을 수 있는 때는 없었다. 클리프 쿠앙과 로버트 파브리칸트는 컴퓨팅과 디자인의 진화를 분석한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User Firendly)>에서, 인터넷이 우리 삶에 미친 주요 영향을 멀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이 발견되는 지점은 인터넷으로 인해 피드백이 비즈니스 거래의, 더 넓게는 인간관계의 중심 특성이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아주 간단한 거래 후에도 판매자나 제품을, 또는 서비스 제공자를 평가하거나 리뷰를 남기도록 요청받는다. 또 인터넷은 우리가 친구들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도록, 리뷰 내용이 별로인 제품은 구매하지 않도록 훈련시켰다. 


오프라인의 일상생활에서는 친구나 동료, 가족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우리에게 솔직한 조언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리뷰가 흔할 뿐만 아니라 그런 리뷰일수록 주목받을 확률이 높다. 온라인 세상의 리뷰 작성자들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똑똑하게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똑똑하게 보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선동적이고 악의,적이며 살벌한 리뷰가 그토록 넘쳐나는 것이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면전에서는 건네지 못할 피드백이 온라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표현된다.


유용한 피드백의 핵심은 구체적이야 하고,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타깃 청중을 대변하는 이들에게 얻어야 하고, 적절한 시점에 얻어야 한다. 피드백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적절한 때 적절한 질문을 적절한 상대에게 던져야 한다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이 네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어렵지 않다.


요즘 정치인들은 트위터를 통해 시사 이슈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얻는다. 얼핏 보기에는 긍정적인 현상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는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는 데 일조했다. 트위터 사용자들, 특히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시간과 의향을 가진 사람들은 평균적인 유권자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표성이 결여된 청중의 피드백에 맞춰 자신의 정치 견해를 조정하는 정치인은 일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게 된다. 피드백의 '양'이 많다고 해서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양은 많고 질은 낮은 피드백을 피해야 한다. 그런 피드백을 얻기가 편하다고 해도 경계해야 한다. 엉뚱한 청중에게서 피드백을 얻는다면 아예 피드백을 받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좁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면 방어적이 되고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저항하기 쉽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작업을 뛰어넘어 시간을 두고 전체적인 목표를 떠올리면 멀리 보게 되고 비판에 너그러워진다. 


탁월함에 이르는 길
1) 수집가가 돼라. 
2) 차이를 발견하라. 
3) 설계도를 뽑아내라.
4) 모방하지 말고 한 단계 더 나아가라.
5) 비전과 능력의 격차를 받아들여라. 
6) 당신만의 점수판을 만들어라. 
7) 리스크를 최소화하라. 
8) 편안함을 경계하라. 
9) 미래와 과거를 이용하라. 
10) 똑똑하게 질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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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지면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물질도 걱정과 불안도 비워야 행복이 더해진다. 
 

[본문발췌]
 

'인생의 시간과 공간을 내 의지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삶'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아 고독하고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며 나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다. 타인과 교류하고 다른 인간이나 생명체와 연결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우리 영혼의 충만감과 평화로움을 위해 자연만큼 훌륭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셋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든 얼마나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었든 간체, 세상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불행한 삶이란 없으며 반대로 무언가 부족해도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인간은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순례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가방에 넣었던 물건들 중에 실제로 필요한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게를 좀 덜어내도 아무 문제 없다. 덜어낼수록 오히려 행복의 크기는 커질 수 있다.


도시인들은 빗방울 몇 개만 후드득 떨어져도 지붕 있는 곳으로 달아나거나 우산을 펴 드는 일에 익숙하다. 반면 순례자에겐 비를 맞으며 걷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란 없다. 비가 내리면 빗속을 걷고, 태양이 뜨면 햇살을 맞고,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버텨내야만 하는 것이다. 또 미끄러운 길에선 몸을 낮추고, 개울이 있으면 물에 빠질 각오로 건너는 수밖에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순응해야만 한다. 상황 탓, 컨디션 탓 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없다. 실패나 좌절이 두려워 멈추어 선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빗속을 걷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 옷이 젖을 것이고 결국 춥고 불편해질 거라는 생각에 몰입되지 않도록 시야를 넓히고 '지금'에 집중하니 금세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비가 내리면 맞으면 되는데, 뭐가 그리 두려웠었지? 빗물에 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복구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비가 그친 다음 해가 나서 젖은 것들이 마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일이니 말이야. 그저 태양이 다시 뜨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런 거였네.'


나는 순례자들이 그 길 위에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얻어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걷는 이들도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그 안에서 무르익는 생각을, 수많은 사연과 감정, 에너지를 그 길 위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일종의 '작은 씨앗을 심는 과정'이며 길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이다. 산티아고 길,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겨질까 하는 것도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순례길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처음은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고, 다음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앞의 두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마지막에 심장이 열리는 경험을 선물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벌어져야 할 일은 나를 지나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내가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결국은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거지. 과거는 이미 내가 알지만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길이 없으니 현재를 살아야 해. 그저 현재에 집중해 살면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아."


카미노는 네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대신 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을 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네가 뭘 원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이 길이 어떤 것을 줄지 마음 편안하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도 좋을 거야.


Despues de tanto tiempo, el sol nunca le ha dicho a al tierra, 'Estas en deuda conmigo'. Imagina lo que puede hacer un amor asi. 태양은 그토록 많은 따뜻함과 빛을 뿌려 준 후에도 땅에게 '넌 나에게 빚졌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랑을 그런 식으로 나눈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벌어질지 상상해 볼지어다.


산에 올라오면 이렇게 잠깐 서서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갖곤 하잖아. 근데 인생을 살 때는 자기가 높이 오른 줄 모르는 것 같아. 계속 올라가려 하기만 하고 즐기지 못해. 이만하면 됐다 하고 멈추어서 자기가 있는 자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인생이란 결국 그런 건가 보다. 누구나 가슴에 응어리 하나 정도 얹어 놓고 살아가는 것. 각자의 짐을 들고 걸어가는 것. 이제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카미노란 것이 그냥 발을 움직여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미노는 마음으로 걷는 것이다. 두 발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인생에서든 순례길에서든 각자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고 앞에 놓인 길을 즐겨야 한다. 가지 않은 길이 궁금하더라도 내 앞에 놓인 길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인생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다리거나 미루지 말고요."


"운명이랄까, 뭐 그런 것이 우리 삶을 궁지로 몰며 힘들게 만들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예요. 가장 쉬운 길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 이제 다 그만둘래, 희망이 없어, 라고 불평하며 힘들어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병이 만드는 한계 속에 스스로 갇히는 거죠. 내가 선택한 길은 병이 닥쳤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하면서 인생이 주는 선물을 계속 즐기는 거였어요. 물론 그런다고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갑자기 닥친 불행이 내 삶을 지배하게 두지 않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나의 결정과 선택으로 내가 주도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 두 가지 길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종착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든 생각은 '인생은 버텨내는 거구나.' 하는 것이다.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때 피하는 대신 버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걸으면서 만나는 좋은 풍경이나 앞뒤에서 나처럼 힘든 것을 참고 걷는 사람들, 내 마음속에 피어나던 수많은 생각들이 도움이 되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육체적인 고통이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은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얻었다. 어려움을 초월하는 큰 기쁨이나 목표가 있고 마음이 열릴 수 있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순례의 과정도 아픈 발만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시야를 넓혀 주변을 보니 버틸 만했던 것처럼 말이다. 700km를 걸었는데도 상태가 너무 좋아서 내가 정말 그렇게 오랜 시간 걸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매일 걷다 보니 체력도 좋아졌지만 세상을 보는 관점과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똑같은 일도 내가 어떤 태도와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로 빚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산티아고 길 위에서 배웠다. 힘든 상황을 견디고 버텨내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기억할 것이다.


실수하고 방황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은 곧 '인간'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받거나 슬픔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거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역시 삶의 일부다. 우리 인생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을 직시하든 외면하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원하지 않는 혹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대신 그런 일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그저 짙은 슬픔으로만 묻어두는 대신 다른 빛깔의 옷을 입혀 간직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드리워지는 인생의 그림자를 고통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고마운 경험으로 끌어안을 수 있기를, 그러한 나를 이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40일을 걸었다. 


카미노가 주는 선물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800km를 걷고 나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질문, 해답, 위로, 그리고 사랑. 모든 것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 했고, 그 길을 걸었기에 이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행복하다는 느낌과는 또 다른 충만감, 모든 것을 다시 얻은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이것을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든 별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으로 온몸과 마음이 꽉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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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는 미지의 세계와 무지에 대한 불안에 신앙적 믿음으로 마음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

과학은 불완전한 조각들을 찾아 퍼즐을 맞추며 완벽에 가까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종교와 과학의 역할과 효용은 다르다. 서로 다투어 어느 하나가 승리한들 우주의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종교와 과학은 대립이 아니라 양립해야 한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변화할지 이해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종교와 과학은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문발췌]

중세는 단일하고 정합적인 철학 체계가 없던 시기이기는 하지만, 우주는 신이 만든 인형의 집이고 종교는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당시 통념이었다.


좋은 모형
우아할 것, 자의적이거나 조정 가능한 요소들을 거의 포함하지 않을 것.
기존의 모든 관찰들에 부합하고 그것들을 설명할 것.
만일 틀렸을 경우에 모형을 반증할(모형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미래 관찰에 관한 상세한 예측들을 내놓을 것.


자연법칙들은 우주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려주지만, 우리가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제시한 왜냐는 질문들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존재할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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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쉽지 않다.
시간과 공간의 불확정성은  새로운 역사,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가 된다.


[본문발췌]

시공에 경계가 없다면, 경계 조건을 결정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초기 상태를 알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서 시공의 경계 조건을 결정하는 신이나 어떤 다른 법칙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되는 지점인 시공의 가장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경계 조건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주는 완전히 자족적이고,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주는 다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가 정말로 완전히 자족적이고, 경계나 가장자리를 가지지 않고, 시작도 끝도 없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불분명해진다. 창조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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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모험을 즐길기 위해서는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
 
 
[본문발췌]
 
밤에 유리창을 쳐다볼 때면 나는 으레 '마비'라는 단어를 속으로 가만히 되뇌었다. 그 단어의 소리는 마치 유클리드 기하학의 '그노몬'이나 교리문답에 나오는 '성직매매'라는 단어처럼 언제나 귀에 설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어떤 죄 많은 못된 존재의 이름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면 공포심에 사로잡히면서도, 나는 그 곁에 더 바짝 다가가 그 '마비'란 놈이 저질러 놓은 죽음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애가 탔다. - <자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진짜 모험이란 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 건 밖에 나가서 찾아야 할 터였다. - <마주침>
 
 
'남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은 성적인 관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정은 성적인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 <가슴 아픈 사건>
 
 
"노동자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돈은 못 버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모든 걸 만들어 내는 건 노동이란 말이오. 노동자란 자기 자식과 조카와 사촌에게 넘겨줄 수지맞는 일자리를 찾지 않습니다. 노동자란 독일계 군주 비위를 맞추느라고 더블린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 <담쟁이 날의 위원회실>
 
 
우린 서로 다른 제단에서 예배를 올리지만 우리 믿음은 한가지네. -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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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길이 사막이나 평지가 끊없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을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희로애락의 역동성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고, 올라가기 위해 내려가야만 한다.
 

[본문발췌]

지옥이었다. 등반 첫날은 항상 그랬다. 내 몸 상태는 구제 불능이었다. 배낭은 그냥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준비가 안 된 채 이렇게 무거운 걸 메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운 투쟁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리 걸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봉우리가 나온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올라온 길은 훤히 보이지만 앞으로 뭐가 나올지 전혀 예측 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나무 커튼 사이로 가파른 비탈길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고, 그럴수록 몸의 기운은 쪽쪽 빠지고 얼마나 왔는지조차 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꼭대기라고 생각한 곳까지 억지로 몸을 끌고 올라갈 때마다 그 너머에 또 다른 봉우리가 솟아올라 있다. 그것도 전혀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비탈을 넘어서면 또 다른 비탈, 그 비탈을 넘어서면 또 다른 비탈, 각 비탈마다 새로운 비탈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길게 반복해서, 끊임없이 비탈이 늘어서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질 때까지 비탈이 나타난다. 마침내 그 너머로 맑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고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의 맨 위를 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면 "바로 저기다!" 하면서 전의가 다시 살아나지만, 이내 잔인한 기만으로 끝난다. 교묘히 치고 빠지는 산 정상은 나아간 만큼 계속해서 후퇴한다. 그래서 전경을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열릴 때마다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이 전과 다름없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어서 결국은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비틀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밖에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크게 심호흠을 한번 하고 몸을 돌려 똑바로 누운 뒤 배낭을 벗고 힘겹게 일어서면 갑자기 환상적인 경치가 눈 아래 펼쳐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산들이 나무로 뒤덮인 채 사방으로 끝없이 뻗어 나간다. 의심할 여지 없이 장관이다. 천당이 따로 없다. 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저 장관 속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새 발의 피도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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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할당할 것인가?


[본문발췌]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잘 관리해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으로 만족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위대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아라. 안주하지 말라. 마음속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면 알 것이다. - 스티브 잡스


자신에게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절대 한눈팔지 않고 목표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꿈이 사라지게 그냥 내버려두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 거기에 그냥 안주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타협의 길로 접어들면 대부분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건 바로 그런 타협이다. 그러나 이런 운명에 체념할 필요는 없다.


전략은 성취하고 싶은 것과 성취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선순위, 계획과 기회의 균형, 자원 할당 등의 요인들이 모두 합쳐져서 전략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일에서 동기를 부여받으면 그 일을 좋아하게 된다. 일이 좋아지면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받는다.


돈의 추구는 기껏해야 일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완화시켜줄 뿐이지만, 부자들이 부르는 유혹의 노래는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까지도 혼란에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행복을 찾고 싶다면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공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평생 단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일을 정말로 좋아하고 그 일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면서 분명한 우위에 선다. 그들은 자기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덕분에 하는 일마다 아주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좋은 대우를 받는다. 동기부여 요인으로 가득 찬 일은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돈, 지위, 보상, 고용 안정 같은 위생 요인의 개선은 행복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행복의 부산물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부담 없이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자신에게 동기를 주고 위생 요인을 만족시키는 일을 찾아야 한다.


행복을 기대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가정들이 사실로 판명돼야 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동기부여 요인들 중에서 어떤 것을 중시하는 입장인가? 그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갖고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직을 검토할 때마다 사실로 판명돼야 할 가장 중요한 가정들과 그 가정들의 진위 여부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라. 자신의 앞에 놓인 길에 대해서는 반드시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동안에 인생의 문을 활짝 열어둬야 한다. 각자 처한 특별한 환경에 따라서 위생 요인을 만족시키고, 동기부여 요인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때까지 다양한 기회를 실험하고, 방향을 선회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노력을 계속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당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가끔 힘들 수 있다. 해야 할 일의 관점에서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게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생각은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 시킨다. 
'내 아내가 (혹은 남편이) 내가 어떤 일을 해주기를 가장 바라는 걸까?'라고 자문해보면 당신은 올바른 분석 방향 속에서 그 일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주변 관계에 접근할 때 어떤 게 올바른 일인지 막연히 추측하는 것보다 그 대답이 훨씬 더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가 당신이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당신은 그 일을 실행해야 한다. 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자신의 우선순위와 바람을 억누르고, 대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과 배우자들에게도 그들이 우리에게 이처럼 헌신할 기회를 똑같이 주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이런 방법을 쓰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분명히 포기하는 것이 되므로 관계에 억울함을 초래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정반대의 효과가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치 있는 뭔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것에 더 강하고 깊게 헌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앞서 나가기를 바라고, 우리가 제공한 기회와 경험이 아이들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 즉 아이가 깊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사실상 아이가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만들지 못하는 경험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미래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세스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갈 뿐이다.

아이들을 위한 부모들의 의도는 모두 좋을 수 있지만, 나중에 극소수의 아이만이 자신이나 남을 위해 힘들 책임을 지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이 문제에 맞서는 게 두렵지 않아. 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는 자존심은 풍부한 자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하기 힘든 중요한 일을 해냈을 때 생긴다.

선진국의 청년 실업률에 대해 나는 젊은 세대 전체가 일자리를 얻는 능력(특히 그중에서 프로세스)이 없이 성인이 된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는 집안일을 아웃소싱했고, 그래서 생긴 빈틈이 우리 아이들에게 도전이나 참여의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활동들로 채워지게 내버려뒀다. 우리는 아이들을 인생에서 생기는 문제로부터 지켜주려다가 무심코 그들로부터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세스와 우선순위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갔다. 나는 가능하면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또한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렇게 해서 얻은 성취감 속에서 자긍심을 느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부모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돕고 싶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려운 도전을 겪어보지 못한다면 평생 필요한 회복력을 쌓지 못할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 년 동안 멈추지 않고 성공을 거두다가 처음으로 중요한 장애물을 만나본 사람은 종종 그대로 허물어져버린다.

아이들이 겪는 도전은 중요한 목적을 충족시킨다. 즉 도전은 아이들이 한평생 살면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고 개발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가령 까다로운 선생님을 상대하고, 운동 경기에서 패하고, 학교 내 복잡한 사회적 파벌 구조를 해쳐나가는 법을 배우는 일들이 모두 경험의 학교 내 학습 과정이 된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본래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주는 도전을 준비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지금까지 잘못된 과정을 밟아온 사람들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좋은 성적과 체육대회 우승 등 아이의 이력을 쌓는 데 전적으로 몰두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밟아야 할 과정을 무시하는 건 잘못이다. 자, 이제 돌아가서 아이들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쌓는데 도움이 될 적절한 경험을 찾아라. 당신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이다.
 


기업은 미래 혁신을 위한 투자를 결정할 때 일반적으로 기존 사업의 관점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투자 금액을 계산한다. 계산 결과에 따라서, 기업은 투자했을 때 드는 한계비용보다 한계수익이 적으면 투자 포기를 결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에는 거대한 오류가 잠재해 있다.
어쩌면 한계적 사고가 쳐놓은 덫이다. 우리는 투자했을 때 드는 비용을 즉시 확인할 수 있겠지만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드는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기란 정말로 힘들다. 여전히 완벽하게 여겨지는 기존 제품을 팔고 있는 반면에 신제품 투자의 장점이 충분히 좋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할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 특히 그중에서도 기존 제품을 팔아서 번 돈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기업은 일정 시간 동안 그런 결정에서 빚어질 결과를 보지 못할지 모른다. 기업은 경쟁사가 앞서 나가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 경쟁사에게 '따라잡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비용이란 렌즈를 통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기업은 궁극적으로 대가를 치른다. 기업들이 미래를 보고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에 실패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경우가 정말로 많다.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생에서 불편한 도덕적 양보를 했을 때 초래되는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보다 처음부터 그런 양보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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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치는 빈 서판에 무엇이라도 써야 남겨진다.

[본문발췌]

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사람을 구경만 하는 것은 더 힘들어서 그래요. 더구나 노인이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이에요.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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