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읽는 세 가지 기준 : 속도, 양(변화가 미치는 범위 혹은 변화 대상의 수), 지속성
기업 변신의 다섯가지 딜레마
1) 미래 예측의 어려움
2) 전망과 실제 수요의 괴리 ( 있으면 좋겠는가? vs 돈을 내고 구매 하겠는가?)
3) 타이밍과 3개의 계곡
연구/원리발견 -> 개발/시작개발(유용성 계곡) -> 사업화/양산개시(경제성 계곡)
-> 산업화/기존제품 대체 신시장 창출(수용성 계곡)
4) 기술혁신의 불연속 (기술혁신의 속도가 빠른 신산업)
5)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당사자들
3대 메가트렌드와 신사업의 탄생
1) 인구구조 변화 --> 헬스케어 --> 에이징솔루션사업 / 1~2인 가구 대응 사업
2) 도시화 --> 인프라스트럭쳐 --> 안(安) 비즈니스 / 도심형 서비스업
3) 기후변화 --> 신재생 에너지 --> 에너지 효율화 사업 / 식량 비즈니스
기술이나 공급의 관점이 아니라 수요나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자. 공급자가 컨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 보다 소비자 자체가 컨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비즈니스 매력도가 높아진다.
변화는 곧 기회다. 경제 시스템이나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변화에 적응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무궁무진하게 발견할 수 있다. 메가트렌드를 다각도에서 분석하여, 불안정한 것은 안정화하고 넘쳐나는 것은 사용하게 만들며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기술을 찾아보자. 변화로 인한 낯선 환경을 완화해 경제주체들이 보다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 그것이 바로 신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변화의 대응 방향 : Reduce(에너지 소비절감, 스마트 그리드 등), Replace(에너지/소재 대체), Recycle(자원 재활용/도시광산), Return(탄소 포집/저장)
신사업 기획의 4가지 포인트
1. 3가지 키워드에서 기회를 찾는다
- 변동성(Volatility)은 줄여주기
- 넘쳐나는 것(Abundance)은 줄여주거나 사용하게 하고,
- 점점 부족해지는 것(Rare)은 그 대안(Replace, Reduce,Return)을 제공하라. 그것이 바로 유망 신사업이다.
2. 패턴을 읽으면 진입 타이밍과 시장 규모가 보인다
- 가구 소득이 5천 달러가 넘으면 지출이 늘어나는 품목은?
- 소득이 낮아도 보급률이 높은 것은?
- 소득, 산업, 인구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정확히 읽어라.
-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 보일 것이다.
3. 정확한 업(業)의 정의가 경쟁의 조건을 말한다
- 지금 구상하고 있는 신사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원점으로 돌아가 업을 재정의하라.
- 경쟁자와 진입 장벽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 시장 전체의 가치사슬을 읽고 '업'을 파악. (예, 자동차는 신차구입/중고차구입/연료/보험/보수/금융/기타 등)
--> 고객이나 기술을 재정의할 수 있는지 검토 (후지필름 안티에이징 솔루션, 세콤 화재보험시장 진출 등)
4.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눈으로 봐야 한다.
- 최첨단 기술이 반드시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 단순하고 명쾌한 가치를 제공하고 한눈에 알 수 있는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며 획기적 원가 혁신으로 승부하라.
--> 소비자가 깜짝 놀랄 '차이'를 제공하라.
-->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파는 원가혁신으로 승부하라. (중급 이상 품질에 저가)
--> 목표는 단순하고 구체적으로 설정하라. (크기나 규모 등 물리적 기준 혹은 가격이나 성능처럼 숫자화 할 수 있는 것, 총량 개념의 목표. 연비 30% 개선 등, 총량 개념의 목표 설정에서 비롯되는 혁신의 부수 효과가 더 크다)
무한 욕망을 위해 소비하는 삶보다 작고 적은 것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며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본문발췌]
"역사상 전례 없는 인류의 자연 침범. 그리고 바이러스에게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제공하는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냈다. 이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지금까지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 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이다. 생태백신과 행동백신 없이는 어떤 방역체계와 화학백신도 바이러스 팬데믹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 최채천
"현 사태는 주객이 전도된 경제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무한 이윤 추구와 성장이라는 수단이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자는 목표, 즉 공공, 복지, 생명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분류되면서도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비효율적 의료복지 시스템의 미국, 보수 정권과 극우파 등장에 따른 복지 축소와 재정 긴축으로 의료서비스가 부실화된 유럽 국가들의 코로나19 재앙이 그러한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 장하준
"생존율 높은 길을 선택하는 인간의 DNA는 코로나19 사태로 결국 언택트 문화를 본격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 페달을 밟게 되는 이유다. 결과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온라인을 통한 초연결 사회에서 포노사피엔스는 영역과 경계 없이 만난다. 팬데믹쇼크에서도 살아남고, 그 안에서 더 넓은 관계를 형성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몰려올 것이다." - 최재붕
"현 세계를 떠받치던 체제, 즉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라는 네 개의 기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제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길은 선명하다. 시장근본주의의 극복,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 구축,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 욕망에 대한 질서 부여, 인간 서식지 무한 확대의 방지, 도시적 공간집약화 해소가 그 이정표다. 그 길 위에서 포스트 코로나 문명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류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 홍기빈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코로나19 사태를 낳은 지금의 문명은 사회가 주입한 경쟁, 비교의 원트want를 기반으로 한다. 원트에는 만족감이 없고 무한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원트를 정당화하고 제도화한 문명은 원트를 더 갖기 위해 찌르고 파괴했다. 인류는 사회가 심은 원트가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라이크like로, 새로운 행복의 척도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라이크는 만족감을 낳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더 적은 것으로 함께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든다." - 김경일
새삼 깨닫는다. 지식과 정보는 나날이 새롭지만 지헤는 변함이 없다. 몰라서 못 한 것이 아니라 아는데 안 한 것이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불청객 탓에 인류가 신음한다? 아니다. 이런 사태가 오리란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재촉했고, 그래서 더 아프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왜일까?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도우며 공존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들. 혼자서만, 자기들끼리만 더 많은 것을 탐하는 자들. 지구의 아픔, 타인의 고통 위에 권력과 부의 철옹성을 쌓은 자들. 한 줌도 안 되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살겠다고 다짐하자. 다짐한 사람끼리 손잡자. 어깨 걸고 뚜벅뚜벅 걸어가자. 평화, 민주, 복지, 생태, 공감의 절대 가치를 내걸고 인류적 실천에 나서자. 어리석은 이들이 더 이상 모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맞서 싸우자. 우리는 코로나 사피엔스다. - 정관용
경제 발전이라는 건 수단이고 목표는 복지, 안전, 건강인데 우리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최소한 주객이 전도된 시스템을 살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가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장이라는 건 수단이잖아요.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결국 목표인데 말입니다.
"현대경제, 자본주의경제는 곧 쓰레기가 될 문건을 계속 생산해온 경제다.",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라고 부추기면서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쓰레기를 만들어왔던 게 아닐까요. 생태 파괴도 그렇고요.
지금 경제가 어떤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상황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담론과 운동을 강하게 일으켜야 합니다. 무한한 경제 성장이 아닌 인간과 자연과 사회 모두가 좋은 삶. 이러한 방향으로 경제를 전환하자는 거지요.
인간은 발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인간의 역사는 발전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발전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발전 이데올로기인데요. 사실은 근대사회에서, 특히 68혁명 이후에는 발전 이데올로기가 당연하지 않거든요. 물적 발전, 물질주의적 발전이라는 성장지상주의가 대단히 위험할 수 있고 오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동시에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생산을 중단하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에 비유합니다. 수요가 없어 불필요할 때도 계속 생산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생산이라는 게 뭔가요? 모든 생산은 자연을 변형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거잖아요. 끝없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말이죠.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면 저는 22세기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인간화, 여기서 인간화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째, 자본주의라는 게 인간을 소외시키거든요. 소외시킨다는 말은 사실은 인간 삶을 전도시킨다는 거죠. 자본주의에서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외시킨다는 거고요. 둘째, 자본주의는 사회를 파괴합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파괴하고 일종의 정글로 만듭니다. 셋째, 말씀드린 대로 자본주의는 무한히 자연을 침탈하고 파괴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면서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3가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수월성meritocracy 사고는 이제 존엄성dignocracy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겁니다. 수월성 사고는 실력주의, 그러니까 능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고요. 존엄성 사고는 말 그대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입니다.
한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보여준 대응 모델을 사회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대응 모델, 미국의 자유방임적 대응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대응 모델, 그 어느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모델을 사회 개혁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자.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을 자본 지배를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몇몇 재벌과 대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보인 일련의 행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보인 자본친화적 조치들은 재난 자본주의의 악폐가 재현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분명 우리의 국민적 대응은 훌륭했고 의식도 높았습니다만, 이런 악폐에 대한 자각도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거죠.
분노가 아니라 불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리의 감정은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김경일 교수는 불안은 정확한 사실로 잠재울 수 있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투명한 공개시스템뿐이라 말한다. 인간은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 사이클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행복의 척도는 바뀔 것이다. 적정한 기술이 최고의 기술보다 중요하듯, 적정한 행복이 무한한 욕망보다 우선시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원트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적정 기술로 공존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은 이번 사태의 결과임과 동시에, 넥스트 코로나가 또다시 찾아왔을 때 인류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생존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력보다 공존력이 더 강하다. 지난 수만 년, 수십만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는 능력을 가진 자보다 공존하고 포용하면서 윈윈하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문화가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개발하고 빼앗고, 착취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강자중심주의나 패권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공존해봐, 그런 과정에서 너희 인류들이 더 지혜롭고 효율적이고 스마트해질 거야. 그런 걸 그르쳐주는 거죠.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도 나오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처럼 반응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나의 이기심이 잘 충족될 수 있다는, 아주 차원 높은 문화를 만들어냈다.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있었떤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지요. 진실은 좀 다릅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감춘다' 혹은 '밝힌다'같이 보다 더 드러냄을 의미하는 동사적 표현과 결부시켜 사용합니다. 사실fact이란 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정확한 면이 있는 겁니다. 진실은, 그러니까 truth는 진짜 원인을 얘기하는 겁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광장에 나갈 때는 어떤 상태일까요? 분노해서 나가죠. 광장에 나간 시민들은 진실을 말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니야, 이거 별문제 없는 거야.'라고 사실관계만 얘기하면 분노가 사라지지 않죠. 심리학자들이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는 것이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사태입니다.
코로나19는 불안이지 분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 때문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불안'한 거잖아요. 그런데 불확실함은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무한 욕망을 추구하느냐 하면요. 만족감이라는 기제가 뇌에서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만족을 하면 멈춰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을 멈추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장치가 만족감인 거죠.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도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우리는 이것도 가져야지, 저것도 가져야지, 하면서 끝없는 만족감의 사이클을 돌았어요. 그러다 이번 사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자기만의 라이크가 생긴 거예요.
남의 감탄을 받는 데 목매는 것, 인정 투쟁을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삶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감탄의 주체를 상대방이 아닌, 타인이 아닌, 나로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크란 무엇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거, 진짜 내가 즐기는 그런 거죠.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느 것. 그러니까 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꽃의 색깔이 바뀌면 그걸 보면서 감탄을 하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에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감탄을 하고요. 즉 나의 미학적 경험, 나의 감탄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인 셈입니다.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좀 더 복잡해지고, 다음 세대보다는 좀 더 단순하다. - 마이클 토마셀로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길 수 있는 예술적 경험, 미학적 경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보람, 그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적정 기술이 인류에게 가장 행복한 기술이라는 말이 있죠. 적정한 삶과 적정한 기술, 적정한 행복감이 어디인지, 그 점근선을 찾아가는 계기를 우리가 이번에 만난 겁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 개인만이 다른 문명 또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수 있겠죠. 공존력을 갖춰야 가장 안전한 개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국가나 문화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크게 당하고, 역으로 침략받을 가능성이 커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사망자가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내부 동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다시 말해 다른 나라보다 무엇을 더 잘했다. 더 못했다 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만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진국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규정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잘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안의 힘을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대한 토론이나 담론을 꺼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공부와 분석을 통해 이해하는 것!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찾고 기다리는 것! 타인의 의견과 상식에 휘둘리지 않는 것!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투자자를 위한 조언.
[본문발췌]
위기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다. 위기는 산불과 아주 흡사하다. 산불 자체는 위험하다.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을 일거에 없애고 새로운 숲이 조성되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누구나 산불을 좋아하지도, 산불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느다. 그래도 산불은 세상을 위해 숲을 재생한다. 좋은 시스템이란 누군가가 기업 운영에 실패했을 때 똑똑한 사람들이 찾아와 망가진 기업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다. 고름을 짜내고 필요한 처치를 제때 해주면 그 기업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살펴보면, 좋지 않은 시스템을 일거에 없애야 최악의 결과를 피해 갔다. 실패를 깨닫고 이전에 해온 방식을 바꿔야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데, 실패한 사람들과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고 지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위기의 순간에야말로 인내심이 요구된다.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다. 세계에는 성공하지 못한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동시에 성공하지 못한 재능 넘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또 성공하지 못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잔뜩 있다. 그 가운데 성공하는 사람,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결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학벌이나 재능보다는 인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투자의 성공을 좌우한다. 이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핫팁hot tip, 믿을 만한 정보'을 원한다. 사람들은 내가 "이 주식은 사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타인에게 의지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투자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잘 아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만약 인생에서 고작 스무 번밖에 투자하지 못한다고 하면 누구든 투자에 무척 신중해질 것이다. 돈벌이에 관련해 귀가 솔깃해질 만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무작정 뛰어들거나 다른 사람의 정보에 기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눈으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아는 세계에 머물면서 아무 데도 투자하지 않는 편이 낫다. 성공한 투자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투자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서면 그때야 비로소 움직인다. 그리고 일단 투자하면 가치가 오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팔아야 하는 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하려는 분야를 자시헤 알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곧장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추천받아 아무 생각 없이 투자하면 그 상품이 어떤 것인지, 왜 샀는지조차 알지 못해 머리를 감싸 쥐게 된다.
모두가 실패할 때야말로 최고의 타이밍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실패하고 손해를 볼 때 누구보다 재빨리 움직인다. 모든 이가 비관적으로 "이제 끝이야"라고 말할 때 기회를 발견하고 투자해놓으면 위기에서 벗어나는 시점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투자에 실패한 경우,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른 것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무언가에 쫓기면 투자해서는 안 될 때도 바다에 뛰어들 듯 무작정 돈을 넣는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절대로 서둘러 어딘가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투자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다.
1년에 2퍼센트를 잃기보다 1퍼센트를 버는 편이 낫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해도 늦지 않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바람을 담아서 투자하지 마라. 희망보다 현실에 맞춰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성공하는 투자에 이르는 길이다.
역사적으로 강하고 위대했던 나라를 살펴보면, 모두 이민자를 조건 없이 수용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민자가 찾는 나라가 번영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법칙이다.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장소로 이주 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며 그렇게 움직이게 되어 있다. 로마제국이 좋은 예다. 나는 '강한 로마'의 비결은 다양성에 있었다는 분석에 매우 동의한다. ... 널리 알여지지는 않았으나 에티오피아의 사례도 있다. 에티오피아는 1,500년 전, 아주 풍요롭고 번영한 나라였다. 악숨왕국으로 불렸는데, 해외에서 이주하려는 외국인을 적극 수용하며 번영했다. ... 하지만 7세기에 들어서면서 악숨왕국의 세력이 약해지고 에티오피아는 기나긴 쇠퇴기에 들어간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악숨왕국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악숨왕국은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국가였기에 기독교 신자, 유대교 신자, 불교 신자 등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은 나머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에티오피아로 이주하길 원하는 외국인이 점차 줄어들었고,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증가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모든 미디어는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다. 중국이나 러시아 미디어의 보도 역시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의 오른팔 같은 인상마저 주는 BBC만 볼 때보다는 보다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 세계를 보는 눈을 넓히고 싶다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 다양한 채널을 접하길 바란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뉴스 채널을 접할 필요가 있다.
"국가 체제는 독재에서 과두정치, 민주정치, 혼돈 상태로 이행하다가 다시 독재로 돌아온다." - 플라톤, <국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15년이 지나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나 베를린장벽의 붕괴,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 등을 사전에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 세상에는 10~15년마다 어김없이 큰 변화가 나타났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타나는 변화가 세계경제는 물론 우리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가 하는 말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틀릴 가능성이 크다. 세간의 상식을 의심하고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부를 쌓고 성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믿는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에는 다양한 종목이 저평가되므로 잘만 투자하면 경제가 회복하면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평소 자신 있는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어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다시 없을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단,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실행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만흔 사람이 근사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되 반드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위기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뛰어오르고 싶다면 타인의 의견과 상식에 휘둘리지 마라. 혹여 당신의 판단으로 큰 실수를 했다고 해도, 환경은 반드시 달라질 테니 너무 절망할 필요 없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분명 강력한 전환점이 될 큰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에게 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회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단련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위기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생각한다.
오랜 세월 시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차분히 타이밍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하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투자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자연 생태계와의 공존과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에너지, 커뮤니케이션, 모빌리티의 변화.
엔트로피, 소유/노동/육식의 종말 시리즈, 3차산업혁명, 한계비용제로사회로 이어지는 제러미 리프킨의 통찰!
[본문발췌]
인류 역사에서 주요한 경제적 변혁은 모두 공통분모를 가진다.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그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해 경제 시스템이 하나의 완전체로서 돌아가도록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와 동력원, 그리고 운송 메커니즘이 바로 그 세 가지 요소다.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관리할 수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 운송과 물류가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가동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운영 체계는 함께 경제학자들이 범용 기술 플랫폼(사회 전반적 인프라)이라고 칭하는 것을 구성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와 운송 인프라는 또한 사회의 시간적 및 공간적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 통치 유형,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 거주지, 내러티브 정체성 등을 변화시킨다.
19세기에는 증기력을 이용한 인쇄와 전신, 풍부한 석탄, 전국 철도망이 서로 맞물리며 사회를 관리하고 사회에 동력과 이동성을 제공하는 범용 기술 플랫폼을 형성함으로써 1차 산업혁명이 발생했다. 20세기에는 중앙 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저렴한 석유, 그리고 전국의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차량이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창출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화한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태양광 및 풍력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인터넷, 그리고 녹색 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자율 주행 차량으로 구성된 디지털화한 운송 및 물류 인터넷이 상호작용하며 수렴하고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 및 수렴은 상업용, 주거용, 산업용 건축물 및 시설에 설치되는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플랫폼을 기반으로 삼으며 21세기의 사회와 경제에 변혁을 알리고 있다. ... 2030년이면 전 세계에 분포된 지능망(intelligent network)에서 수조 개에 달하는 센서가 인간과 자연환경을 연결하게 될 전망이다.
3차 산업혁명에서 상품의 '거래'는 연중무휴 서비스의 지속적인 '흐름'에 자리를 내준다. 현재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서는 소유권이 접근권에 자리를 내주고 시장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부분적으로 네트워크에서 공급자와 사용자로 대체된다.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에서 산업 및 부문은 스마트 네트워크에서 중단 없는 재화 및 서비스의 흐름을 관리하기 위해 플랫폼에 통합되는 '전문 역량'으로 대체되며 시스템에서 연중무휴로 이어지는 트래픽 덕분에 적은 이윤에도 충분한 이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일부 상품 및 서비스의 이윤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들어 자본주의적 네트워크에서조차도 더 이상 이익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생산 및 유통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거의 무료가 되는 경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나름의 음악이나 유튜브 동영상, 소설 미디어, 연구 결과를 창출해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적잖은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대학교 교수들이 가르치는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MOOC)에 참여하고 있으며 종종 그렇게 대학 학점을 취득하기도 한다. 모두 무상으로 말이다. 그저 스마트폰과 서비스 제공자, 전원 공급 콘센트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세계 각지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해 사용하고 남는 전기는 그리드에 되팔고 있다. 역시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말이다. 태양과 바람은 아직 우리에게 청구서를 발부하지는 않는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들은 집이나 차량, 의류, 도구, 운동 장비 등을 비롯해 일련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유하는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다양한 가상 재화와 물리적 상품을 공유하는 것은 신흥 순환 경제의 초석으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서 지구의 자원을 훨씬 적게 사용하며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유 경제는 그린 뉴딜 시대의 핵심적 특징이다. 현재 공유 경제는 초기 단계를 밟고 있으며 앞으로 여러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공유 경제는 사람들의 경제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이동성의 디지털 인프라에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경제 현상이다. 그 점에서 공유 경제는 18세기와 19세기에 태동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후 세계 무대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사실 3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고 고용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진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에너지 인터넷, 물류 인터넷으로 구성된 스마트 IoT 인프라가 소수 전문 인력의 관리 감독하에 문명국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것이다. 그러나 중단기적으로 보면, 미국 및 세계 여러 국가에서 IoT 인프라의 대규모 구축으로 30년에 걸쳐 임금 및 봉급 노동이 마지막이자 대량으로 급증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점점 더 많은 고용이 시장 부문에서 비영리 부문과 사회적 경제 및 공유 경제로 옮겨 갈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줄어들지만, 심오한 사회적 유대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활동이라는 분명한 이유로 기계가 시민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 역시 감소할 것이다. 기계가 언젠가는 사회적 자본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장 열렬한 기술 마니아조차도 품지 않는다.
비영리 부문은 이미 세계의 선진 산업 경제체 다수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고용 분야이다.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수천만의 자원봉사자와는 별도로 수백만의 인력이 활발하게 고용되고 있다. ...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는 비영리 부문의 고용이 국가 전체 인력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러한 고용수치는 갈수록 자동화되는 시장경제에서 고도로 노동 집약적인 사회적 경제로 일자리가 옮겨 감에 따라 향후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완전한 디지털 경제와 3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은 20세기에 2차 산업혁명으로 얻은 이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총체적인 효율성 도약을 안겨 줄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0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총에너지 효율은 국가 인프라의 발전과 더불어 2.48퍼센트에서 12.3퍼센트로 꾸준히 증가했다. 여기서 에너지 효율이란 에너지와 물질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잠재적인 물리적 작업에 대한 유용성 비율을 말한다. 총에너지 효율은 1990년대 후반 약 13퍼센트 수준에서 맴돌다가 2010년 무렵 2차 산업혁명 인프라가 완성되면서 14퍼센트로 정점을 찍었다. 미국에 비할 데 없는 생산성과 성장을 안겨 준 총체적 효율성의 상당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2차 산업혁명에 사용된 에너지의 86퍼센트가 전송 및 전달 과정에서 낭비된 셈이다. 다른 산업화 국가들도 그와 비슷한 총효율성 곡선을 경험했다. 탄소 기반의 2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설령 업그레이드한다 하더라도 총효율성과 생산성에 어떤 영향이든 미칠 가능성이 별로 없다. 화석연료 에너지는 이미 충분히 발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및 중앙제어식 전력 그리드처럼 화석연료 에너지로 작동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되는 기술은 더 이상 이용할 잠재력이 거의 남지 않았을 정도로 생산성이 소진된 상태다. 그렇지만 새로운 연구들에 따르면, IoT 플랫폼과 3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면 향후 20년 동안 총에너지 효율을 6퍼센트까지 올려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에너지 효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탄소 이후 재생에너지 사회와 고도로 탄력성 있는 순환경제로의 전환도 그려 볼 수 있게 된다.
많은 것이 운송 부문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세 가지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 휘발유 차량에서 녹색 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의 이행, 차량 공유 서비스로의 전환, 자율 주행 차량의 도입 등이 그 세 가지다. 이러한 변화 각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혁신적이며 기존 운송 부문을 파괴하기에 충분한다. 그것들이 서로 힘을 합쳐 전 세계에 걸쳐 이동성과 물류의 완전한 격변을 일으키며 일련의 좌초 자산을 남기고 있으며, 그 규모는 완전히 알기 어려운 상태이다.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재생에너지 인터넷의 맞물림으로 자율 이동성 및 물류 인터넷의 구축과 확장도 가능해진다. 이 세 가지 인터넷의 수렴은 3차 산업혁명 경제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관리하고 구동하고 운송하기 위한 IoT 플랫폼의 핵심을 이룬다.
IoT 플랫폼은 픽업 및 배송 일정, 기상 조건, 교통 흐름에 대한 실시간 물류 데이터는 물론이고 경로상의 창고들의 수용력에 대한 최신 정보도 제공할 것이다. 또한 발송의 자동화로 빅 데이터 분석에 의해 물류 경로를 따라 종합적인 효율성을 최적화하기 위한 알고리즘과 애플리케이션이 창출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모든 선적의 한계비용이 감소하는 가운데 생산성은 높아지고 탄소 발자국은 줄어들 것이다.
보다 놀라운 발견은 (한계비용 제로에 가까운 노동력으로 운영되고 한계비용 제로에 가까운 태양광 및 풍력 전기로 구동되는) 자율 주행 차량을 통한 공급자/사용자 방식의 운송이 이동성을 제공하는 비용을 급락시키는 동시에, 공급자로 하여금 차량 승객들에게 장거리 항공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오락과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승객의 이동 시간을 상품화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리싱크엑스는 "광고와 데이터 수익, 오락물 및 상품 판매 등의 다른 수입원 덕분에 무료 운송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공유 차량 각각은 사적으로 소유된 차량보다 평균 열 배 이상 더 많이 사용되므로 도로를 달리는 차량도 그만큼 적어질 것이며 교통 정체 지역에서 소모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미국에서만도 교통 혼잡으로 인해 2017년 한 해에만 305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인간의 능력 향상에 대한 한계는 없다. ... 인간의 완전성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 ... 이 완전성의 진보, 향후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어떤 힘이든 통제할 수 있는 그 완전성의 진보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이 행성의 지속 시간 이외에는 어떤 한계도 없다. - 마르키 드 콩도르세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이제 복원의 시대(Age of Resilience)이다. 그린 뉴딜 인프라는 복원의 시대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것의 구성 요소와 응용 및 운영은 우리가 한때 길들이고 진정 시켰지만 지금은 다시 날뛰기 시작한 자연에 적응하고 바라건데 오늘날 지구를 뒤덮는 악화일로의 기후변화 사태에서 살아남도록 도울 것이다.
킹스밀 본드는 글로벌 에너지 수요 성장률을 1에서 1.5퍼센트 범위로 잡고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성장률은 15에서 20퍼센트 사이로 잡는 다양한 사니리오를 제공한다. 그 모든 시나리오는 "화석연료 수요가 정점을 찍는 시점을 2020년에서 2027년 사이로 추정한다.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은 3단계 프로세스로 구성된다. 먼저 발전과 산업 공정에서 생성되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이어서 탱크로리나 선박, 파이프라인 등을 통해 저장 시설로 운송한다. 그런 다음 탄소를 땅속 깊이 지질학적 암반층에 저장한다. EU는 이 기술의 타당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파일럿 실험에 수억 달러를 지출한 후, 그 프로세스가 기술적 또는 상업적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손을 들었다.
바이오 기반 재료는 바이오 플라스틱과 바이오 기반 식품 및 사료, 바이오 계면활성제 및 바이오 윤활제 등과 같은 주요 영역에서 석유화학 물질을 대체하고 있다. 의류와 필름, 필터, 음료, 동물 사료, 스낵 식품, 가정용 세제, 산업용 세정제, 자동차 및 산업용 윤활제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제품 및 공정에서 석유화학 물질을 생물학 기반 물질도 대체할 수 있는 시장 잠재력은 실로 방대하다.
이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현재 냉혹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기후변화에 대한 조치가 확실하게 취해진다면 그들은 화석연료에 투자한 자본에 발생하는 잠식을 감수해야 하고, 반대로 만약 완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관리 가능한 자산의 전체 포트폴리오에 발생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한 계획이 장기 투자자들로 하여금 포트폴리오에서 기업들과 관계를 맺고 투자를 수익성 있는 저탄소 미래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다.
그린 뉴딜은 인프라가 관건이다. 광대역 통신망, 빅 데이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 탄소 제로 녹색 전기,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스마트 도로를 주행하는 자율 주행 자동차, 노드로 연결된 탄소 제로 전력 생산 건물 등 그린 뉴딜 인프라의 핵심 요소들이 각 지역에서 구축되고 확대되어야 하고 모든 지역에 걸쳐 연결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대륙을 뒤덮어야 한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 이하로 저지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인프라의 전환이 시급하다. 저억도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라도 조속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전국적으로 스마트 전력 그리드를 필요로 한다. 주택, 자동차, 사무실, 공장, 지역사회에서 수백만의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친환경 전력의 흐름을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 운영되는 재생에너지 인터넷 말이다. 스마트 전력 그리드와 전력을 주고받는 실질적인 인프라 구성 요소의 상당수는 본질상 고도로 분산적인 형태가 되며 수많은 개인과 가구 수십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그 비용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보유한다. 태양광 지붕과 풍력 발전기, IoT에 연결된 건물, 축전지, 충전소, 전기 차량 등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이 인프라의 구성 요소가 된다는 말이다. 규모가 크고 하향식이며 고정적이고 일방적인 1차 및 2차 산업혁명 인프라와 달리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분산형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이라는 특징을 보유하기 때문에 전 세계 수십억의 참여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인프라의 구성 요소를 끊임없이 진화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에서 조합하고, 재조합하고, 해체하고, 결합할 수 있다.
후한 세액공제와 다양한 인센티브는 인프라 구성 요소 및 절차의 급격히 감소하는 비용곡선과 더불어 대다수 스마트 인프라의 온라인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린 뉴딜에서는 인프라가 각 지역의 민간 기업 거버넌스가 아닌 공유 거버넌스에 의해 감독되면서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을 띠며 항상 새로운 패턴으로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ESCO: 그린 뉴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그린 뉴딜의 민관 합작 투자 사업이 번성할 수 있는 대안적 경로가 있다. 25년 동안의 성공적인 실적을 보유한 그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에너지 사용자를 대신해 에너지 절약 시설에 투자하고 그에 따른 에너지 절감액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에너지 서비스 기업(energy service company)', 즉 ESCO다. 이것은 수익성 확보를 이른바 "성과 계약"에 의존하며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급진적 접근법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적 기본 원리인 판매자/구매자 시장의 토대를 뒤엎는 반직관적 비즈니스 형태이다.
성과 계약은 판매자/구매자 시장 전체를 일소하고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대체한다. ESCO가 투자 재원의 100퍼센트를 책임지고 약정된 그린 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성 창출의 성공률에 기초하여 자본 투자에 대한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새롭게 출현한 정부와 ESCO 간의 민고나 합작 투자 사업은 기술적 전문성과 민간 기업의 성공 사례를 공공서비스 분야에 윈윈 방식으로 적용함으로써 공공과 민간 부문 사이에 강력하고도 새로운 역학을 창출하고 있다. 결국 연금 기금은 이와 같은 형태의 민관 합작 투자 사업의 재원 조달을 위한 최상의 파트너가 된다. 재원 조달은 수백만 미국 노동자들의 유예된 급여로부터 이뤄질 것이며, 그 혜택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연금 투자수익률이 되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그린 경제를 통해 창출되는 수백만 개의 신규 일자리와 후손들을 위한 탄소 배출량 제로에 가까운 녹색 미래 또한 연금 수혜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다. 이 새로운 경제모델 덕분에 사상 처음으로 지방 자치체와 주 정부, 기업 그리고 미국 노동자들이 강력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각 당사자가 상대방으로 인해 사회계약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ESCO이 투자 수익은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 기술의 설치와 녹색 전기의 생산, 전국 스마트 전력 그리드의 구축 및 관리를 통해 획득하는 송전의 효율성, 상하수도 체계의 개선을 통해 창출되는 에너지 효율성은 물론이고 여타 형태의 성과 계약 관련 작업들에 의해 창출되는 에너지 효율성 등으로 발생하는 수입에서 나온다. 성과 계약 관련 작업에는 기후 관련 재난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건물 개보수 작업, 에너지 저장 장치의 설치, 에너지 효율 향상 및 모니터링을 위한 IoT 센서의 설치, 전기 차량을 위한 충전소의 설치, 비즈니스 운영의 각 단계별 총효율 증대를 위한 생산 시설, 절차, 공급망의 재조정 등이 포함된다.
에너지 성과 보증 계약(energy savings conttracts), ESCO가 투자 자금을 완전히 회수하고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창출되는 에너지와 달성되는 에너지 효율 중 상당 부분을 취하고(대개 85퍼센트), 그 이후에 창출되는 모든 혜택은 고객들에 돌아가게 된다.
성과 계약은 지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 회복력을 구축함으로써 공중 보건에 관한 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임과 동시에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GDP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성과 계약의 맥락에서 이들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다.
이것은 자본의 투자 대상이 되는 사업 계획 내에서 사회적 책임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다. ESCO는 투자 수익을 안겨 줄 새로운 기술과 경영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기 마련이며, 지역사회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헤택을 다양한 방식으로 누릴 수 있다. 주거지와 업무 시설에 부과되는 보다 저렴한 공공요금,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공급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을 위한 녹색 전기, 공중 보건의 증진을 위한 보다 깨끅한 환경, 지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복리 강화를 위해 수익과 혜택을 지역사회로 재순환하는 데 따르는 새로운 비즈니스와 고용의 기회 등이 그 헤택이다.
성과 계약의 성공이 온전히 잠재적으로 수백만에 이르는 반숙련 및 숙련 노동 인력과 전문 인력에 대한 훈련과 배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전역의 주거용, 상업용, 산업용, 기관용 건축물의 개량과 전국 스마트 전력 그리드의 구축,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의 설치, 광대역 케이블과 IoT 기술의 설치,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의 생산, 전기 충전소와 에너지 저장시설의 제작과 설치, 전국에 걸친 스마트 태양에너지 도로의 건설 등을 직접 수행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교육과 활용이 관건이라는 얘기다. 성과 계약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ESCO는 노동 인력과 지역사회 모두에 동등한 유익을 안겨 줄 것이다.
계약관계의 비대칭성 중 일부는 기업이 제공하는 보증으로 완화될 수 있으나, 그런 것조차 필연적으로 구매자의 완전한 보호에는 미치지 못하기 마련이다. 성과 계약은 시장 안에 존재하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모두 제거하고 전통적인 자본주의 모델을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대체함으로써, 불평등하고 이익이 언제나 판매자에게 편중되게 돌아가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시장 거래의 편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ESCO의 근본적인 특징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객의 비즈니스 운영에서 총효율, 생산성, 창발성을 증대시키도록 설계된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고객의 비즈니스 운영의 모든 측면에서 고정비요오가 한계비용의 절감, 탄소 발자국 감소, 순환성과 회복력의 연마 등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의 ESCO들이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최초의 성과 계약 종료 이후에도 서비스를 연장하고 있다. 특히 상업 및 산업 분야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글로벌 기업이 민간 투자의 형식으로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행을 적용하여 새로운 그린 인프라 구축 및 관리 사업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인프라는 ㅁ루론 그에 수반되는 서비스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권을 모두 넘겨받는, 구식의 신자유주의 모델은 오늘날 외면당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성과 계약 모델은 인프라의 건립과 관리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재원 확보의 책임은 민간 ESCO에 부담시키며 새로운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과 소유권은 모두 지방자치체나 카운티, 주 정부가 지역사회의 일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공유 자산'으로서 보유하는 하이브리드 사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판매자/구매자 시장의 '구매자 위험 부담 원칙'이 공급자가 "선행을 통해 성장"하는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주의'의, 본질이며 단기간 내에 탄소 제로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실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대표하는 것이다. 판매자/구매자 시장이 화석연료 문명과 '진보의 시대'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면, 성과 계약에 의해 운영되는 ESCO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는 새롭게 부상하는 '복원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녹색 문명을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그니처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우리는 불현듯 이전 지질시대의 매장지를 파헤친 행위에 따른 결과를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때 이 행성에 생명체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석탄과 기름, 천연가스로 변형된 과거 생명체들의 잔해를 우리가 땅속에서 꺼내 놓지 않았던가. 그렇게 에너지로 변형된 채 저장되어 있던 '사체'에 의존해 인류는 지난 200여 년 동안 풍요를 누려왔다. 그 과정에서 발생된 이산화탄소라는 형태의 쓰레기는 모두 대기권의 한쪽 구석으로 밀어 둔 채로 말이다. 대혼란은 지구의 상호작용 권역 전반에 걸쳐 실재적으로 피드백을 촉발했고 인류는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멸종이라는 위협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열두 세대를 거치는 동안 탄소 기반의 산업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가 현재 지구의 역학을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후변화로부터 우리가 얻는 교훈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지구상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가 이 행성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평화로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존재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구의 상호작용 권역들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자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교훈이다. 그런 지구의 상호작용 권역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인류가 지배자에서 관리자로, 인간 중심적인 분리주의자에서 살아 숨 쉬는 지구와 함께하는 진정한 참여자로 바뀔 수 있는 기회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생물권적 의식을 갖도록 만든 시간적, 공간적 지향성의 대전환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는 한 줄기 희망이다. 우리가 그것을 진정으로 내면화하고 깊이 새긴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몰락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창의적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생존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번성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그 새로운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전력 그리드, 이른바 디지털 판게아 구축의 초기 단계에 있으며, 디지털 판게아는 지금부터 2030년대 후반까지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온라인화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를 하나로 연결해 주면서 말이다. 개인과 가족, 공동체, 나아가 국가 전체가 제로섬게임의 갈등과 전쟁을 특징으로하는 석유 시대의 지정학으로부터 벗어나 지구가 조는 풍부한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를 무상으로 공유하며 깊은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생물권적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인류를 글로컬 범주에서 스마트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서로 연결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일이나 사회적 삶 그리고 거버넌스를 이행하는 방식에서 경험한 바 없는 매우 특이한 일이다. ... 또한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본질적으로 중앙 집중식 통제보다 통제권의 분산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는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투명한 것일 때 효율적일 수 있으며, 총효율 및 순환성의 극대화를 위해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확장한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위해 생성된 플랫폼은 유연성과 다중성을 선호한다. 이 두 가지가 바로 기후변화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회복력 구축의 핵심 요소들이다.
ICT, 텔레콤, 인터넷, 전력, 운송, 건물 등 경제의 핵심 분야들이 빠르게 화석연료로부터 떨어져 나와 재생에너지와 재결합하며 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구축하고 있따. 경제의 각 부문들이 차례로 화석연료로부터 분리되어 보다 깨끗한 재생에너지 및 녹색 기술과 재결합하는 현상은 인류를 화석연료 문명으로부터 더 빠르게 벗어나도록 만들고 있다. 몇몇 연구에서는 빠르면 2023년에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하며, 또 다른 연구에서는 늦어도 2035년이면 거기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예상들을 종합하여 짐작건대, 변곡점은 2028년 전후에 화석연료 문명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수평으로 확장되고 다수의 소규모 참여자들이 서로 연결될 때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다.
EU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3차 산업혁명 인프라의 분산적 특징은 그것이 실제 배치될 공동체와 지역에 의해 자체적으로 개념화되고 도입 될 때 신속한 적응과 확산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더라도 분산형 그린 인프라를 신속하게 설치하고 각 관할권을 상호 연결하는 데 필요한 운영 형식과 규칙, 기준을 결정하는 일은 주 정부 간에 그리고 연방 정부와의 협력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린 뉴딜은 녹색 이니셔티브를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고 곳간을 열어 인센티브를 나누어 주라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역사 중 가장 암울한 순간에 모든 지역사회에 각자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관장하도록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 운동과 일반 대중 거버넌스를 창출하기 위한 첫 번째 동원령이다.
두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석탄기 시대의 화석연료 매장량에 의존해 온 생활 방식은 인류에게 미래는 어떠한 제약도 없이 무한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고 지불해야 할 대가도 미미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며 지구는 인류에게 끝없이 내주기만 하는 존재라고 믿어 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언제나 불확실한 청구서가 따라온다는 진리를 간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를 진보의 시대라 불렀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그 청구서의 기한이 도래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선을 지나는 중이다. 복원의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새로운 세상의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따라 생물종으로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생물권적 의식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바라건대, 너무 늦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믿는 그린 뉴딜이다.
기본소득 개념에 호의적인 사상가들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은 가까이에서든 멀리서든 앙드레 고르츠의 분석 주위를 맴돌면서 노동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소외, 파괴적인 공리주의, 무한한 성장이라는 환상, 환경친화적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산제일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단 하나의 수단으로 모든 것을! 높은 기본소득은 실직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자리를 잃는 것이 기회를 창조하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실업자가 스스로 무익한 사람이라는 죄의식과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지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실업자들은 시간을 내서 주말에 소비와 여가 활동에 몰두하기보다는 자본주의적 현대성의 원자화에 의해 사회관계가 파괴된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들은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일을 하겠지만, 노인들을 돌본다거나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등, 물질적으로는 간소하지만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풍요한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단순 반복 작업이나 개방된 공간에서의 잡일이 주는 소외를 더 이상 견뎌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필요한 것도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덜 소비한다. 이 것이 바로 행복한 간소함이다. 더 적은 돈을 벌더라도 직접 더 많은 일을 하므로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일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반공리주의다. 소비를 덜 하므로 생산도 덜한다. 이것이 바로 탈 성장이다.
공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공유가 혁신적인 것은, 그것이 이미 포기한 원칙들을 되살리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갑작스럽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에게 반대하며 독점적인 사유재산권보다는 사용권에 토대를 둔 재산권 개념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다. 또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반대하며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가정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유토피아적'이라고 이름 붙인 사회주의적 전통을 회복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유효한 추상적 규정들을 만들어 계획을 세우고 개입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에 반대하는 반면,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지역에서의 경험과 계속해서 쇄신되는 개별적 권리를 옹호한다. 공유는 다른 측면을 통해서도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공유가 이렇게까지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는 안 된다. 그들은 '위에서 내려보내는' 결정보다 '현장에서 내려지는' 결정을 더 중요시한다. 또 그들은 공무원들의 평가보다는 실무 경험을, 인가증이나 제한적인 면허증보다는 '함께 건설해나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더 근본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들은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분열을 정당화하는 국가와 시장의 대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른 제도와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선거를 통해 어떤 행정관직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과두제라고, 즉 적은 숫자가 많은 숫자를 지배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선거는 선택이며, 선택은 필연적으로 지적 엘리트(귀족정치)와 돈의 엘리트(금권정치), 기술의 엘리트(기술자 정치), 혹은 노인들의 엘리트(노인 정치)에게 권력을 부여하게 되어 있다.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1748)에서 이 같은 분석을 되풀이한다. "선택에 의한 선거는 귀족정치의 성격을 품고 있다." 만일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을 따른다면,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일종의 보통선거로 선출하는 귀족정치가 될 것이다. 즉 우리는 거의 대부분 부유하고 교육받은(부유하다는 것과 교육받았다는 것은 보통 뒤섞인다) 계급에서 뽑힌 '가장 훌륭한 소수(귀족)'를 정기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교대로 통치자가 되기도 하고 피통치자가 되기도 해야 하며, 대중의 '양식'이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정치에서의 '훌륭한 결정'은 가르칠 수가 없다고 여기는 아테네 정신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1962년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는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민주주의란 이따금씩 투표용지를 투표함 속에 넣고, 권력을 한 명이나 여러 명의 선량들에게 위임한 다음 5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제도 밖에서 각종 단체를 통해 집단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프랑스에서 공산주의를 제외한 모든 좌파의 사조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다른 맥락에서 출현한 참여의 개념을 되풀이해서 말한다.
대의제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구조를 통해 풍요로워져야 한다. 그것은 심지어 '공급의 민주주의'에서 단순한 소비자-유권자가 아닌 시민들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 즉 대중들로부터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1939~2017)는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대중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시민들은 토론한다. 대중들은 처신하고, 시민들은 행동한다. 대중들은 서로 부딪치고 교차하며, 시민들은 참여하고 공유하고 기여한다."
시민의회, 토의를 통한 여론조사, 시민배심원, 시민 회의 등, 여러가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실험들을 통해 어떤 정치적 결과를 기대하는 것일까? 첫 번째로 이 실험들에서 정당의 논리나 인기영합적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추첨으로 뽑힌 시민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이 결정이 자신의 재선출이나 직업적 인맥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 추첨은 더 이상 의원들의 개인적 야망과 연관되지 않는 '자율 통치'의 수단이 되어, 추첨 제도가 없어다면 아마도 이 같은 책임에 접근하지 못할 일반인들에게 '통치' 수단을 제공해준다. 이렇게 해서 결정은 더 대표적이거나 사회의 현실에 더 충실한 집단에 의해 내려진다. 이것은 또한 시민배심원단이나 시민 회의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명확한 문제에 관한(특히 사회적이거나 생명윤리적인 주제에 관한) 갈등을 더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토론을 통한 여론조사의 경우, 추첨으로 뽑힌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만일 사회가 토론을 들을 수 있다면) 식견 있는 여론이 형성됨으로써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는 여론 민주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식으로 내세워지는 논거는, 추첨이 일상생활의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엘리트 계층보다는 보통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일반적이며 관습적인 지식(때로는 대중의 '상식'을 덧붙이는 지식)을 전수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간에 본질의 차이가 없다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몇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태도는 성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와 유사하다. 프랑스에서 반종차별주의를 대중화시킨 저널리스트 에므리크 카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성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범주화에 근거해 일부 인간을 학대한다. 흑인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들의 피부색 때문에 노예로 전락했고, 여성들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과 똑같은 권리를 갖지 못했으며, 이제 동물들은 그들이 '닭'이나 '돼지', 혹은 '담비'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학대받고 죽는다." 반종차별주의는 어떤 종에 소속된다는 사실을 도덕적 배려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피터 싱어는 이러한 생각이 터무니없거나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항상 "실존적 의식의 충격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의 도덕적 태도는 "우리의 생각과 행위 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단순히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동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변화시켜서는 바뀌지 않는다.
동물 보호를 위한 생태학적 논거. 공장식 목축으로 생산되는 동물성 제품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것.
자동차를 타는 것을 포기할 때보다 고기 먹는 걸 중단할 때 탄소발자국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현대 사상가들은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인지능력과 감각능력,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성, 기억력, 인내력을 향상하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한다. 또한 초고속으로 접속하고 반응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와 시간과 에너지를 영구적으로 최적화하기를 요구하는, 자극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병적 의지의 표명으로 트랜스휴머니즘을 해석한다.
그러고 나서 이 철학자(귄터 안더스)는 인간의 인공화한 변환을 "세계의 법칙을 위반하는" 무언가로 보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자유를 아무 조건없이 포기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계획에서 조물주는 흔히 위대함에 대한 망상으로, 히브리스(정념과 오만이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의 의지로 여겨지는 반면 안더스는 그것이 포기라고 주장한다. "상황에 맞추어 만들어진 존재처럼 행동하는 것은 한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미묘한 차이를 고려해 표현한다. "그것은 자만심이 부추기는 복종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생물학적 여건과 인간의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마음껏 발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는 기술에 모든 것을 넘겨주고 영원토록 골동품 취급을 받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고 변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자유롭다는 것의 피곤함,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의 피곤함에 대한 해답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적 우생론은 트랜스휴머니즘을 둘러싼 대부분의 의문과 비판을 반대로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최상의 유전자 개량은 가장 비싸고, 엘리트 계층만을 위한 것일 될까? 그 시대의 몇몇 사회적 기준과 일치하는 아기를 선택해 인류를 표준화하는 것일까? 이로써 자연적 진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성의 근원인 불확실성과 우연성이 파괴될까?
보완 화폐의 주요 이론가 중 한 명인 베르나르 리에테르가 볼 때, 인간의 화폐 제조는 현재의 단기성과주의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성장, 부의 집중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경쟁사회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익이 시간이나 위험을 보상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익을 수요와 공급의 결과로, 어떻게 보면 돈의 비용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보완 화폐는 장기거래에 사용되는 '가치 저장' 화폐와 더 일상적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교환 화폐'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지역화폐 제도는 유명 회사는 철저히 제외하고 지역 생산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지역에서의 소비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소비자는 사회적, 생태적 기준을 준수하는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상품과 상품의 유통경로 축소, 고용 확대, 부정적 외부성(부정적 외부성이란 어떤 재화의 생산이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하는데, 오염을 예로 들 수 있다)에 대한 더 나은 검토 등 짧은 순환에 대한 호의적인 논거가 다시 등장한다.
지역화폐는 실용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의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여러 메커니즘과 결합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전부 혹은 일부가 지역화폐로 지불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 보조금을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사는 데 써버릴 위험이 줄어든다. 또한 세금의 일부나 시민 활동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을 특별 화폐로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민들은 시간을 내 이런저런 협회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지역화폐는 흔히 서서히 녹아 없어진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오늘날에는 거의 잊힌 독일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에 의해 이론화되었다. 게젤은 돈이 "잠자지 않기"를, 즉 그것이 쌓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녹스는" 화폐를 상상한다. 즉 지폐의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 따라서 화폐는 더 빨리 유통되어(이론상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고전적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생각이 화폐가 가진 세 가지 기능 중 하나, 즉 시간이 흘러도 그것의 부를 간직하도록 하는 가치 저장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할 것이라며 경계한다. 경제가 각자 그 자체의 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작은 공동체들로 분산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왜냐하면 화폐의 목적은 교환을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일 화폐를 가지는 것이 더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베르나르 리에테르는 대답한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이 같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만성적인 불안정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1970년과 2010년 사이에 은행 공황이 145번, 화폐 가치 폭락이 208번, 국가채무로 인한 위기가 72번 일어났다. 리에테르는 생태계의 역학에 관한 연구로 알려진 생태학자 로버트 울라노비치의 연구를 토대로 최적화된 생태계가 가장 지속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은 효율과 탄성에너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대안 화폐를 도입해서 전통 화폐를 안정시켜야 한다.
유한한 세계에 무한한 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탈성장은 식별 가능한 세계의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녹색 자본주의와 지속 가능한 발전(이상기후에 직면하여 제시되는 잘못된 해결책)의 거부, 생산제일주의와 소비주의의 거부, 더 절제하고 연대하며 민주적인 '검소한 풍요사회'의 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단계가 지나면 인간은 더 이상 소비하지 않고 소진한다. 우리는 생물다양성이 악화되고 생물들이 사는 자연환경이 교란(농업을 위해 토양을 개량하는 것, 단일 경작을 위해 높은 생산성을 가진 소수의 종을 선택하는 것, 화학비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 등)되면서 생물 종들이 소멸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 사상가 코르넬리우스 카르토리아디스는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짐승으로, 멍청한 TV 리모컨 이용자로 바뀌면서 인류가 멸망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물질화되고 개인주의화되었으며 시장경제를 따르는 소비사회는 인간을 왜곡해 개인적인 이익과 욕망에 의해 인도되는 '단순한'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자율적이고 진정한 행동력을 갖추고 있으며 의식을 가진 참여적 시민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덜 집착하는 한편, 그들의 생활양식과 안락함을 축소시키려 할 것이다. 탈성장주의자들은 민주주의야말로 여전히 사람들이 (앙드레 고르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은 것으로 더 잘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경제적 합리성 모델을 폐기하며, '충분함'의 윤리를 집단에서 재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세 개의 큰 경향이 페미니즘 운동의 발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 시작된 첫 번째 경향은 시민의 권리들(그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권리가 투표권이다)을 쟁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두 번째 경향은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사를 사적 영역까지 넓혔다. 이 경향의 결정적인 순간은 피임의 합법화(프랑스의 경우에는 1967년)와 낙태의 합법화(1975년)다. 이 두 번째 경향은 급진적이며 유물론적인 페미니즘과 연관된다. 1990년대에 시작된 세 번째 경향은 퀴어 운동과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을 포함한다.
우버는 사람들이 플랫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선구자다. 플랫폼은 정보와 콘텐츠, 혹은 서비스를 교환하기 위해 사용자들(전문가이건 아니면 단순한 소비자이건 간에)이 접속하는 디지털 환경, 예를 들면 인터넷 사이트나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이다. 우버와 이해당사자들의 경우에 이 플랫폼은 서비스를 교환하고 고객과 서비스업자 간에 상업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제적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플랫폼은 실현된 거래에서 수수료를 공제한다. 이 플랫폼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협동경제나 공유경제의 동의어이며, 노동의 중요한 부분이 중개자가 덜 개입한 상태에서 디지털 수단을 통해 '도급으로' 이루어지는, 더욱 수평적인 사회를 예고한다. 미래에는 기업가들과 프리랜서들이 엄격한 임금제 밖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공급과 수요를 즉시 연결하는 기술 덕분에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호의적으로 보이는 이 외관 아래 악마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디지털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진 협동경제가 결국은 새로운 종류의 독점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기생적인 플랫폼들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어 사회적, 정치적 재난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업가라는 수사와 유연성, 자율성, 선택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은 실업이라든가 질병, 노화 같은 엄청난 위험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다. 전통적인 일자리가 장기적인 협업에 참여하는 두 당사자들의 결합이었던 바로 그곳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노동력은 이제 원나이트스탠드의 연속에 불과해지게 된다.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삶과 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의 답은 우리 뇌 속에 있을 것이다.
자연 속 생명을 가진 개체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는 처연하고도 경이롭다. 달밤에 개구리는 구슬프게 울어 댄다. 소리를 내면 천적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높아지는데도, 개구리들은 목숨을 걸고 애타게 짝을 찾으며 운다. 소통이란 생명 그 자체이고, 때로 개체의 목숨을 초월해서 관철되기도 한다.
인간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백영옥 작가가 말했듯이 제대로 소통하는 것은 기적이다. 솔직히 우리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더구나 소통은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불필요하게 상대의 주의를 빼앗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고통이다. 정보화 시대이자 소통과 연결의 시대, 오히려 우리는 더욱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며 소통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배워 가고 있다.
유머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여유를 갖고 주위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이다. 한 발 물러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렇게 넓혀 놓은 공간에 경직된 당위를 해제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어서고, 근시안적으로 보면 엉뚱해 보일지 모를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의성도 들어선다. 여유는 세상과 더 잘 지내기 위해 개인들이 애써 확보해야 할 공간이다. 그 여유 공간 속에서 날선 감정들은 희석된다. 그리고 그 안에 유머가 채워진다.
중첩이나 관측이라는 '현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제대로 기술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언어는 세상을 기술하기에 충분치 않다.
우주는 엔트로피의 증가, 즉 죽음을 선호한다. 이런 우주에서 생명은 돌연변이이자 이단아다. 그래서 우주도 중요하지만 생명은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여 주려 했다. 음악은 결맞은 파동이다. 결맞은 파동은 양자역학이 가지는 기이함의 근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을 보면 결이 어긋난다. 소리를 보기 위해서도 결이 어긋나야 할까? 칸딘스키가 보여 준 음악은 결이 어긋나며 의미조차 상실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음악은 추상을 통해 그림이 되었다.
'자연스러움'이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기보다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관념이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보편성과 다양한 문화별, 개인별 특수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계'에 대비해서 우리는 인간에게 '인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간적'은 놀랍게도 '인위'보다는 '자연'에 가깝다. '다른 생물', 특히 '동물'에 대비해서는 '인간답다'라는 표현을 쓴다. '인간다움'은 '야만' 아닌 '문명적'이라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기계에 대응해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할 때 '인간적'이라고 하고, 동물에 대응해서 자연과 본능에 저항하는 문명적 의지를 '인간답다'고 한다. '인간적'과 '인간답다'가 이렇듯 반대에 가깝게 놓이니, 인간의 관념적인 '자연스러움'도 반어, 즉 아이러니를 종종 발생시킨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말 자체가 자연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과학에 따르면 생명의 모습은 진화의 결과다. 진화에는 목적이나 의도 따위는 없다. 그때그때 생존에 유리한 특성을 지닌 것들이 자연선택되어 생존에 성공한 것뿐이다. 어찌 보면 그런 결과는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자연의 모습이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라면 자연스럽다는 말에 어떤 심오한 의미는 없다. 물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선택된 생명체의 공통점, 그러니까 일종의 보편성은 존재할 수 있다.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면 높은 온도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는 멸종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의 모습에 합법칙성까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이렇게 죽음은 생명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을수록 낫다.(Less is more."는 경구로도 유명하다. 이 건물(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안에서 나는 이 '레스(less)'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체득한 것 같았다. 그 '레스'는 덜어 내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집약되어 최후까지 남은 것이었다.바닥과 기둥과 벽과 지붕이 모두 완벽하게 정확한 위치에 있었다. 한 치도 더 덜어 낼 것 없는 그 용감한 합리성이 상쾌했따. 벽들은 바르셀로나의 태양 아래서 기분 좋은 그늘을 적재적소에 드리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모더니즘이 가치 있다기보다는, 이성과 합리를 '제대로' 가동시킬 때 좋은 모더니즘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때 유럽인은 유색인종을 짐승으로 취급했다. 이는 시각이라는 감각에 의존하여 내린 결론으로, 단지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 수준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인종 간의 유전자 차이보다 같은 인종 내 유전자변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레더릭 생어가 개발한 염기서열화 방법을 이용하면 감각할 수 없는 유전자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어느 수준에서 보는지에 따라 상대를 인간으로 볼 수도 있고 짐승으로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글이다. 이 소설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세밀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에게 그림이란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규칙을 어기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들에게 궁극의 경지란 밤낮으로 연습하다가 눈이 멀어서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역사는 깊고 다채로우며, 어느 시대에든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들은 서로 연결되어 왔다. 그래서 나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니 '융합'이니 하는 구호들이 새삼스럽다. 제도권 교육과 분과 학문 시스템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칸 나누기'를 당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예술과 과학은 애초에 서로 긴밀하게 스며 있다고 느낀다.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플라톤적이고 수학적인 발상의 세계는 물리적 현실 속에서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형으로 창작되어야 예술로 귀결된다. 이 '물화'의 과정은 불가피하게 물성, 힘, 운동의 원리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물리화' 그 자체다. 이때 표현의 팔레트에 여러 분야의 정확하게 정제된 지식들을 짜 두면, 풍부하고 대담한 조합의 생겨나기도 한다.
예술에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도 있지만, 순수형식주의적이고 작가적인 가치라는 것이 있다. 세상을 보는 확장적인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 인식의 구속과 오류로부터 자유를 탐색하고, 왜곡되었을지 모를 구태의연한 시선에 대해 보다 나은 방식을 제안하려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들은 개인의 자립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결국 공동체를 각성하게 하며 치유하는 사회적인 효과를 가진다. 인간이 세상과 더 잘 지내고자 하는 도정인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에 인간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없다. 중력에 의한 물체의 낙하 자체는 아름다운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니다. 낙하하는 것이 낙엽일 때 아름답고, 유리잔일 때 불행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낙엽은 불행하고, 이탈리아의 결혼 피로연에서 깨지는 유리잔은 행복하다. 가치는 인간이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집단의 부분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다. 이들은 직접민주주의로 국가를 운영했고, 철학, 과학, 수학, 예술을 활짝 꽃피웠다. 이들의 과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이들의 태도가 자연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성별, 나이, 민족, 문화가 다른 사람들 간의 교류가 있어야만 비로소 내가 속한 체계의 고유한 구조를 새삼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인류의 서로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낯선 체제를 통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알아 가는 기회라는 것이다.
낯선 언어는 인식을 확장시킨다. 낯선 언어는 서로 다른 것들 간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이 연결을 자유자재로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곧 창의력이다.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예술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이 정도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꿈은 현실의 도피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으로부터 도피하고자 꿈을 그렸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세계가 초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인 원자는 초현실적으로 행동한다. 원자가 실재라면 꿈은 현실이다.
능숙한 기술을 연마하기보다는 개인의 기분과 정서를 존중함으로써 공동체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았다. 시도하고 실행해낸 용기 자체가 칭찬받아야 한다. 잘해내지 않았더라도,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순간 행복한 몰입을 겪었다면 이 사실을 존중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놀이와 장난, 무턱대고 해보는 시도는 소중하다.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을 해봐야 일상의 경험이 풍부해진다. 결과가 서툴더라도 그 과정은 소중하다. 시행착오에 겁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간의 서투름과 실수조차 지울 수 없는 오점인 양 다그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한 공동체 속 여러 개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일의 가치는 진화론과 뇌과학이 뒷받침해준다. 환경은 변화한다. 뜻밖의 상황이 닥칠 때도 있다. 이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경험이 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는 힘이 된다.
특정한 기준으로부터 평균이 산출되면, 그 평균을 벗어나는 것은 오류처럼 취급된다. 이때 수치적인 기준이란 과연 중립적이고 객관적일까? 산업시대 이후 서구 중심 성인 남성의 많은 기준들이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맞춰진 것은 아닐까? 이런 획일적이고 편협한 기준이 다양한 문화와 다면적인 가치관과 어린이와 노인과 여성과 약자와 소수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경로만 정상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고유성은 소외된다. 그런 기준으로부터 상정되는 평균이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침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부적격자로 만든다. 애초에 침대를 사람에게 맞춰야지, 왜 사람의 키를 침대에 맞춰 늘였다 잘랐다 고통을 주는가? 특정한 기준에서는 정의되지 않는 능력들,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아 사장되는 다채로운 재능들을 놓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낭비가 아닐까?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이해받고 발휘하고 그에 몰입해서 인정받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모든 개인의 가치를 고루 살피고 구성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들이 다원화돼야 한다. 평균을 산출하는 단편적인 잣대로는 규정되기 어려운 잠재적인 재능들을 돌보아야 한다. 교육은, 특히 교양 미술교육은 그렇게 가야 한다.
누군가 너무 힘이 들고 창피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그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시스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인들을 세심히 살피면서 사회적 잣대와 기준이 정당한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고유하게 존엄하다.
정규분포에서 평균은 집단을 대표한다. 평균이 집단을 대표하지 못하고, 부의 분포가 지나치게 치우치면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그 해답은 평균, 즉 집단지성을 이용해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근본적으로 공간 자체에는 방향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공간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방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이 어둠이다. 일단 당신이 있는 위치는 특별하다. 다른 모든 위치가 갖지 못한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어느 방향이나 똑같다. 특별한 방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 이외에 또 하나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구에는 중심이 있지만 표면에서 중심을 볼 수 없다. 지구라는 구의 표면에만 사는 우리에게 세상의 중심은 없다. 중력과 전기력은 모두 구의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별과 행성뿐 아니라 원자도 구형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구형의 원자가 모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입체파 화가들이 깨달았듯이 모든 존재는 평등하게 원자로 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은 구의 정신을 품고 있다. 편평해 보이는 세상의 저 깊숙한 곳에 구의 중심이 있어, 세상의 모든 곳은 평등하다는 것을 말이다.
검정은 끊임없이 흑체복사를 한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듯, 검정도 검지만은 않다.
다른 길을 가더라도 틀린 길을 간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효율의 독서가 아니다. 정보를 명쾌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시의 의미가 몸에 오래 머무르며 느리고 풍부하게 경험되도록 했다.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예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예술품이 일단 시장에 나오면 그것의 가치는 예술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한다.대한민국 아파트의 가격은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재비용이나 주거 환경의 가치보다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로 결정된다. 아파트 가격이 7억원이라는 것은 7억원에 사서 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워홀의 작품에 매겨진 500억원은 그것이 500억원의 절대적 가치가 있다기보다 훗날 500억원 이상의 값으로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는 의미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모두가 같으면서 다른 ‘쾌(快)’다. 쾌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자연의 복잡성은 무작위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유기적인 현상과 생명현상의 원리는 수많은 변수를 가진 방정식으로 기술된다. 항이 많아지고, 알고리듬은 길어진다. 디지털시대인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이 복잡한 연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제 디자이너의 창의력이란 기존에 미처 지각하지 못한 변수들을 정의하고 찾아내는 데에서 새롭게 발휘된다. 디자이너들은 규칙을 디자인하고 이를 파생시킴(generate)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워진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고 새로운 미학에 다가간다.
차이를 만들고 싶다면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만의 시선을 갖고 이해하며 혼자만의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본문발췌]
마케팅이란 '기업'과 '실제의 사람'이 만나는 공간에서만 기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실제의 사람'들은 기업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속의 사람들은 절대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알고리즘이나 생산공정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현실 속의 소비자들은 비즈니스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독특하고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들은 결코 논리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일상 속의 생각들은 복잡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세계의 진실 역시 모순투성이인 길을 걸어가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법이다.
치열한 경쟁이 차별화를 약화시킨다.경쟁관계로 얽혀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서로를 모방하는, 그래서 유효한 차이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제품들만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 오늘날의 기업들은 점점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고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천방법을 찾아 갈 수 있는 통찰력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가지 유형의 여행 책
1) 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책
2) 여행을 통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보는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
평가 시스템의 치명적 부작용,
무언가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속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비슷비슷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물리학에서도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관찰자 효과 observer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시장조사를 멀리한는 기업이 1등이 되는 이유, 경쟁 브랜드와 비교 평가를 통해 약점을 보완하다 보면, 결국은 차별점이 없이 비슷해지게 된다.
차별화는 곧 포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포기해야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다양한 평가항목으로 소비자들에게 평가를 받고,
대다수의 접근방식 :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 (더욱 '평준화된' 모습), 취약점을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일을 시작
극소수의 접근방식 : 강점을 강화하려는 시도 (더욱 '차별화된' 모습), 뛰어난 항목에 집중투자하여 평균 점수와 의 격차를 더 벌리려고 노력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포지셔닝 맵을 그려보는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분석 작업들은, 브랜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순수한 시도라고 할지라도, 조직을 평범하게 만들어갈 위험을 안고 있다.
진정한 차별화, 즉 지속적으로 유지가능한 차별화는 이러한 평준화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야만 가능하다.
즉, 차별화란 불균형의 상황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들을 포기해야 한다.
무리를 따라 이동하는 철새, 자율조직 시스템 self-organizing system
자율조직 시스템의 개별 구성원이 갖추어야 할 조건
감각기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들이 포지셔닝 맵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바로 이러한 감각기관의 기능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기업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있다. 즉,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경쟁자들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이해할 수있다.
방향을 수정하는 능력. 근처의 구성원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꿀 때, 여기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무리 속에서 움직이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들은 더욱 상대방에 신경을 쓰게 된다. 다시 말해,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리고 구성원들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수록,
1)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도 무리에 움직임에 동조를 하고,
2) 더 많은 기업들이 무리의 움직임으로 합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장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집단적인 움직임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치열한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개별 기업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무리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가령 교통체증에 갇혀 있을 때, 운전자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하기도 하고, 더 빨리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계속해서 모색한다. 무리의 시선으로 개체를 바라보는 것과, 개체의 시선으로 무리를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길이 없을 때 길이 보인다.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높이고자 하다면, 구체적인 정의가 없는 상태가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과잉성숙 hyper-maturity' : 많은 기업들이 한 카테고리 속으로 몰려드는 경우, 제품확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분히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한 카테고리가 이러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면, 기존에 그 카테고리를 지배했던 원칙들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단계를 과잉성숙이라 부른다. 한 카테고리가 과잉성숙 단계로 접어들면, 초세분화, 과잉확장, 과잉경쟁이 함께 나타난다. 과잉성숙 단계에 속해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아마도 마음 편하게 장사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남는 것은 오직 자기파괴뿐이다.
과잉성숙 단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제품확장의 흐름에 대해 논의하면서 제품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추가적 확장), 소비자 선택권이 확장되고(증식적 확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해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카테고리 내에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경쟁자들보다 한 걸음 앞서 가기가 더욱 힘들어 진다.
진화의 역설이란, 모두들 발전을 위해 달려가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공동의 파멸뿐이라는 사실. 치열한 경쟁에서 남는 것은 오직 자기파괴뿐.
카테고리 내 차별화가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 소비자들은 그 카테고리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카테고리 내 다양한 기업들의 전략들을, 개별 브랜드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브랜드에 대한 구체적인 특성은 외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숲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 속에 있는 나무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하나의 브랜드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과잉성숙 단계로 인한 두 번째 현상이 나타난다. 소비자들의 애착은 이제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카테고리에 대해서 나타나게 된다.
카테고리가 성숙할수록 카테고리 내 기업들은 점차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인 움직임은 비교적 뚜렷하고 일관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카테고리는 '이종적 동종'의 특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크게 확대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제품들 간에 유효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차별화
고정관념 뒤엎기, 엉뚱한 가치를 선보여라.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브랜드는 바로 만화와 같은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기대들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전혀 차원이 다른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기대가 마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양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현실적인 한계를 과감히 떨쳐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브랜드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는 기존의 경쟁자들이 내놓았던 가치들보다 좋다 혹은 나쁘다고 수직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들 브랜드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수직적인 비교를 벗어난, 수평적인 차별화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그리고 경쟁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진정한 차별화이다.
아이디어 브랜드, 무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가라.
새로운 집을 장만할 때, 집을 수리해서 쓸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을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집의 기본적인 골격을 유지하면서 외형적인 부분만 수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완전히 백지상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비용과 시간이 당연히 더 많이 들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 브랜드는 시장 내에서 기존의 가치를 전면적으로재검토한다. 이들으 기존의 기업들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집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브랜드들은 무리를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특정 시점에서 경쟁 무리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전체 카테고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간다.
창조적 파괴, 미래의 시장을 만들어라.
다른 경쟁자들과 동떨어져서 혼자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하기가 지극히 위험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창조적 파괴 creative distruptive'를 통해 모험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이들은 뚜렷한 목표를 향해 반항아임을 자처하고 있다.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한다.
'역포지셔닝 브랜드 reverse-positioned brand' : 구글, 젯블루, 이케아, 인앤아웃버거
아주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결단을 내린 아이디어 브랜드. 그들은 기존 브랜드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기로 결정을 내린 용기 있는 브랜드다.
역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불리한 상황을 거꾸로 뒤집는다. 역 브랜드들은 핵심에서 벗어난 모든 부가적인 가치들을 털어내고, 혁신적인 조합을 통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이들은 자칫 그동안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가치들을 기발한 방식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입지를 마련한다.
역 브랜드는 기존 가치들을 없애 버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많은 것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을 세운다. 그리고 부가적인 가치들을 없애고, 핵심적인 가치들로만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습은 처음에는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 브랜드가 진정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주는 것보다 적게 주는 게 사람을 사로잡는 이유
역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오히려 과잉만족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을 한다. 즉, 역 브랜드들은 광잉성숙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그들 스스로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역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기존 가치들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대신, 넘쳐나는 가치들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재조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거꾸로 가는 전략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차원에서 만족을 느낀다면, 기업들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케아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소비자들의 심리는 복잡하고 아이러니한다. 즉, '더 많이'를 통해 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더 적게'를 통해서 더 큰 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많은 것들을 없앰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는 역 브랜드의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역 브랜드들의 등장은 오늘날의 모순된 소비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역 브랜드들은, 과잉만족의 시대에서 부수적인 가치들을 과감하게 제거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독특한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 왔던 가치들을 빼앗아 가면서, 동시에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욕망을 싹트게 만들고 있다.
'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덜'을 원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넘쳐 나는 풍요의 바다속에서 단순함의 자유를 다시 찾는 것이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넘쳐 나는 과잉만족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마음의 휴식을 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더more'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덜less'를 요구하고 있다.
역브랜드는 원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에서(차별점 유지) 소비자들의 불만을 부드럽게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역 브랜드들은 처음부터 경쟁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모방 브랜드들이 일구어내지 못한 진정한 차별화의 이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다.
'차별화 differentiation' : 기존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도
일탈 브랜드는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경계의 가장자리에 최대한 가깝게 포지셔닝한다. 그리고 기존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밀고 나간다. 이러한 차원에서 일탈 브랜드는 기존 카테고리 내부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외부에 존재하는 브랜드이다.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돌을 던져라
카테고리 평준화의 흐름은 브랜드들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간다.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다양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평준화의 흐름에 빠진 기업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만을 제안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일탈 브랜드들이 등장하여, 다양성에 목마른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그동안 가져 왔던 고정관념들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쟁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처럼 일탈 브랜드들은 사람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카테고리 개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카테고리의 경계를 무력화 시켜라.
일탈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제품을 바라보도록 자극하고 있다. 일탈 브랜드들은 어울리지 않는 가치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카테고리 개념을 보여 준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시선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마케팅이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 전통적 마케팅 (Feel good)
1) 제품 :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2) 접근성 : 합리적으로 제품의 가격을 정하고 폭넓게 유통망을 구축하여 접근성을 높임
3) 커뮤니케이션 : 소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임
--> 단점은 눈 감고, 장점은 과대 포장하는 기업의 광고 전략
적대적인 마케터 The Hotile Marketer, 적대 브랜드의 마케팅은 안티마케팅, 반대심리학
단점을 감추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진리를 적대 브랜드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리적인 부조화를 계속해서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적대 브랜드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인 인식이 기반 되어야 한다. 합의와 통일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다는 관용적인 문화가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도토리 키재기 - 아이디어 브랜드는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핵심전략)
그들은 경쟁이나 비교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불만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래의 세가지 유형의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오늘날 소비자들이 동일함과 평범함에 지쳐 있을 때, 신선한 가치 제안으로 죽어 있던 소비 감성을 살려내고 있다.
1) 역 브랜드 : 제품의 확장을 거부한다.
2) 일탈 브랜드 : 카테고리의 경계를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서 새로운 하위 카테고릴 창조한다.
3) 적대 브랜드 : 손님이 왕이라는 비즈니스 세계의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한다.
차별화의 두가지 종류
1) 세상에 별로 의미 없는 차별화 : 진지한 고민없이 즉석에서 생각난 대로 행동, 창조적이지 않음.
2)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별화 : 소비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 항상 삶에 변화를 주는 것, 변화와 자극이 있어야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생기를 띤다.
2%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인다. (100%의 정답이 아니라 2%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보여 주는 것)
1) 비즈니스 세계를 비딱하게 보려는 노력은 오늘날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이다. 익숙한 방식이과는 다른 방식으로 비즈니스 세계를 바라보는 것
2)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이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그들의 브랜드가 분명히 차별화되어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분명 차별화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여기서 차별화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소스타인 배블런 Thorstein Vevlen 의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오늘날 소비는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활동이라기 보다, 주변의 사람을 따라잡는 활동이 되어버렸다. 즉, 소비활동은 점차 원래의 목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과를 경쟁자들과 비교하는 작업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투자함으로써 경쟁의 악순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보편적인 흐름...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재자를 따라잡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원래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있다.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차별화를 잃가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시선에서 지금의 경쟁 환경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경쟁을 하는 목표가 동일화의 흐름 속으로 합류해 들어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보편적인 흐름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만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차별화의 개념이다.
혁신의 세 가지 방법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개념적 차원의 혁신), 혁신은 차별화의 출발점. 차별화란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만은 아니다.
혁신은 '확장'이 아닌 '제거'를 통해 가능하다. 추가적인 확장이나 증식적 확장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는 진정한 혁신. --> 역 브랜드 부수적인 가치들을 제거하고, 핵심가치들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차별화를 실현
분열을 통한 혁신 --> 적대 브랜드 모든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떨치고 소비자 계층으로 양분함으로써 시장에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함.
변형(transformation)을 통한 혁신. --> 일탈 브랜드 제품 자체에 대한 변형 보다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의 변형, 이를 통해 그들은 소비자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을 위해서는 내놓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기에 앞서 긍정적인 차원에서 얘기해야 한다는 규칙이 필요하다.
시장을 믿지 마라.
시장조사는 그 자체로 한계가 분명한 접근방식이다. 설문조사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제품에서 어떠어떠한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나 이 제품들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나 획기적인 제품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마케팅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점진적 수정'의 수준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단편적인 데이터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데이터에는 객관적인 정보도 담겨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데이터들은 와전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지 못한다. 이는 오직 절반의 메시지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기업의 마케터들은 객관적인 자료들을 엄밀히 분석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료들로 부터 곧장 어떤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마케터들에게 시장조사 데이터느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통계 수치만 들여다보다가는 더욱더 중요한 통찰력을 놓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마케터들은 누구보다도 더 균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통계 데이터에만 주목하는 마케터는 누구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피상적인 정보밖에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소중한 진리를 놓친다.
(통계적인 자료에 집착하는 접근방식은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인간을 이해하라.
아이디어 브랜드들은 인간을 이해하고, 그리고 인간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개발해 나가고 있다. 데이터나 논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복잡하고 모순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일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가치를 제안한다.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다. 일회적인 광고 캠페인도 아니다. 그리고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며,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아니다. 진정한 차별화란, 말하자면 새로운 생각의 틀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정보가 흘러넘치는 상황일수록 직관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 존 나이스비트
조직 내에서 직관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케터이다. 미래의 마케터들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리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기업에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양한 소비 패턴으로부터 마케터들은 통찰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다. 차별화는 새로운 사고의 틀이다. 그리고 보고 듣고 분석하고 흡수하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차별화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통찰력이다.
모든 일에 너무 애쓰기보다 내 뜻데로 안될 때는 잠시 비켜가거나 기다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은 잠든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죽음은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 없는 몽상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별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
단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보다 비열하고 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대(大) 플리니우스
당신은 단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에우리피데스
근심 없는 사람의 인생만큼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 근심 없는 삶은 참으로 고통 없는 악이다. - 소포플레스
인생을 꽉 움켜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겪는 경험에 꾸밈없이 순수하게 경탄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몽테뉴처럼 모든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려고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생이 시간을 재촉하며 흘러가고 있어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죽음에게 내어주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느림의 발견, 자유로워져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이 꼼짝없이 빠져드는 광적인 생각과 어리석음은 속임수를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 생각을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참으로 원하던 생활 방식이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내게 강요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헬레니즘 철학 :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회의주의
세 학파의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는 생활 방식을 성취하는 것.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 '기쁨', '인간적인 번영'
에어다이모니아에 이르는 지름길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다. 아타락시아는 '침착'이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옮길 수 있고 '평정'을 뜻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때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모든 일이 꼬일 때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세 학파의 견해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이 평정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에피쿠로스: 가족을 떠나 공동체 전용 '정원'에서 광신도처럼 살라
회의주의: 여느 사람들처럼 대중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했으나 정신적 자세를 철저하게 바꾸라
스토아: 양극의 중간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르스 학파의 공통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두 가지 큰 단점에 의하여 저해된다. -->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와 주의력을 현재에 집중하는 못하는 성향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우러지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일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인생이 평온할 것이다." - 에픽테토스
몽테뉴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 주의를 다른 일로 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억제하는 것보다 생각을 바꾸는 편이 훨씬 빠르다. 생각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면 반대로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면 위안을 얻고, 문제가 풀리고, 번민이 없어진다.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면 피한다. 필할 때는 잽싸게 요리조리 비켜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다"
회의주의자는 늘 증거를 찾으려고 하고, 남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의심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나는 대자연이 내게 베풀어준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위대하고 전능한 수여자가 준 선물을 거절하고, 그 선물을 쓸모없게 만들고 망가뜨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 볼테르
"우리의 삶을 옳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절대적인 완벽함이자 실질적으로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찾고, 우리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죽마를 타고 높이 올라서도 소용없다. 죽마를 타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옥좌에 올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 몽테뉴
몽테뉴는 인간은 모든 존재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과정은 동일한 본성에 따라 진행된다.'
"우리는 생명과 감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와 식물도 존중하고 인도주의적으로 대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고, 자비와 인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다른 피조물에도 자비와 인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피조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서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니체는 이런 인정과 공감을 '호의'라고 했다.
"풍경화에서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을 볼 때, 대자연의 얼굴에서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을 읽고, 대자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한 나라 전체가 아주 가는 붓으로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사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에세'에서 발견하는 '여덟 가지 자유' 목록
1) 자만심과 우월감에서 벗어나라.
2) 신념, 불신, 확신, 파벌 의식에서 벗어나라.
3) 습관에서 벗어나라.
4) 야망과 탐욕에서 벗어나라.
5) 가족과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라.
6) 광산에서 벗어나라.
7) 운명에서 벗어나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
8) 죽음에서 벗어나라.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적대적인 당파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원만하게 대처하는 몽테뉴의 방법:
양측에 도를 넘지 않게 호의를 보여서 어느 쪽도 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만 처신하면 된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지 마라. 몽테뉴의 방침은 맡은 일을 잘하되 너무 잘하지는 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그는 곤경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운 자세를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만 이행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직무를 완수하였다.
몽테뉴가 늙어 간다는 사실에서 얻은 교훈: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나이 먹음의 가치는 그러한 결점을 수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결국 일종의 지혜를 얻는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샤르트르의 명제
'철학자의 일생은 죽음을 명상하는 것' - 키케로
'죽음은 인생의 끝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 - 몽테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으니' 이미 흘러가 버린 의식의 흐름 한 줄기에 매달리자 말자. 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만물이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 존재하는데 인간의 생각이 한결같이 한 곳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의 우화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누리지 못한 아프리카의 우화가 세계화를 부채질하는 구호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