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결말, 희망이다.

 

 

[본문발췌]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언젠가 읽게 될 책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죠. 서재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죠. 그것들을 영원히 못 읽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장 클로드 카리에르, <책의 우주>

 

 

어떤 것에 대해 미운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꼬치꼬치 캐고 들거나 속상해 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거란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 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 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취미의 세계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 무라카미 류, <무취미의 권유>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곧 겨울이 되기 때문에 작은 들쥐들은 옥수수, 호두, 밀, 짚을 모으기 시작했다. 쥐들은 모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프레데릭을 제외하고, 들쥐들이 물었다. "프레데릭, 왜 일을 안 하는 거니?" 프레데릭이 말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나는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빛을 모으고 있는 거야." - 칼하인츠 A. 가이슬러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레오 니오니의 동화 <프레데릭>을 인용한 부분

 

 

흘러가는 세월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혹은 우리를 노쇠하게 만드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면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을 바꿔서 흘러가는 세월이 우리를 보다 더 완성시켜가고 있다고 여기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생텍쥐페리 잠언집>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해방감을 선사해준다. 의견이 없다고 지적으로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다. 의견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라. 의견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다. 오늘날 진짜 문제는 정보의 부하가 아니라 의견의 과부하다. 세상은 당신의 코멘트 없이도 잘 돌아갈 것이다. - 롤프 도벨리, <불행 피하기 기술>의 52개 기술 중 '모든 것에 뚜렷할 필요는 없다'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과거의 교육은 여러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환경이 달라질 때는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전략을 설계하면서 적응해나갔다. 그러나 작금의 변화는 과거의 변화와 전혀 다르다. 교육자들은 인간 역사의 어떤 전환점에서도 이번만큼 어려운 고비와 도전에 직면한 적이 없다. 정말이지, 우리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고 있다. 우리는 정보로 과포화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기술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하물며 그보다 더더욱 어렵고 역부족인 기술, 즉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인간을 가르치는 기술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 매일이 좋은 날'

 

 

익숙한 것의 안도감과 지루함, 낯선 것의 경이로움과 두려움. 아마도 이것들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생은 안정되는 것이리라.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질병의 부재나 기능의 부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거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에도 문이 있다.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공감하는 마음이 열쇠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는 거란다. 네가 마음만 먹느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단다. - 영화, <와일드>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 조지프 캠벨, <신화와 인생>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 - 위스망스, <거꾸로>

 

 

그것은(여행기는) 여행이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을 돌아오는 것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노승이 말했다. "진정한 지혜는 이 풍경 속에서 한 순간에 발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까지나 깊이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꾸뻬는 문득 깊이 감추어져 있는 그것을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 사원 앞에 서서 구름과 태양과 바람이 한 순간 산들과 어울려 노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꾸뻬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새로운 배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씨의 행복여행>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우리 뇌는 습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디자인돼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즐겁게 추구하도록 디자인돼 있기도 합니다. 어느 뇌 영역을 사용할 것인지는 이제 여러분이 선택하시면 됩니다. - 정재승, <열두 발자국>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우리는 흔히 혼자됨을 개인적인 실패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삶에 속한 것이며, 홀로 있음에 힘들어하는 것 역시 사회적인 통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를 안다면 혼자인 사람은 자신이 커다란 전체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 프란치스카 무리, <혼자가 좋다>

 

 

혼자라는 것은 같이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분명 결핍이다. 같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충족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틀로 비추어보면, 행복은 혼자 있을 때와 같이 있을 때 어느 한쪽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행복이란 혼자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결핍에 벗어날 때, 그리고 같이 있을 때 발생하는 과잉 충족으로 인한 질식에서도 동시에 벗어날 때 가능하다. -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별들은 멀고 먼 거리 /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 저 혼자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 김재진,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주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토끼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가고 있니?" 사람이 대답했다. "나의 일을 쫓아가고 있어." 토끼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네가 일을 쫒아가야 할 정도로 일이 너를 앞서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그 일이 네 등 뒤에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그냥 멈추기만 하면 만나게 될 텐데. 지금 너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건지도 몰라." - 동유럽에서 전해지는 우화 중에서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이상 긴장감 속에서 경계심을 품은 채 이 세상을 조사,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조급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충고한다. 그렇다면 방향을 잡는 것도 서두를 일이 아니다. 헤매는 것이 인생이다.

 

 

향미가 희석되는 현상은 현대 농업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문제다. 종자 개량, 화학비료, 비닐하우스, 지력 쇠퇴, 토양미생물 감소 등 다양한 원인이 밍밍한 음식을 만들어 냈다. 닭고기는 향미를 잃었따. 토마토는 밍밍해졌고, 옥수수, 밀, 딸기, 상추도 각각의 고유한 맛이 약해졌다. 모든 음식이 묽게 변했다. - 유진규, <맛의 배신>

 

 

미래는 종종 예상하고, 계획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새로운 시간과의 만남에 설레고 싶다. 그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이므로.

 

 

"미지를 향해 문을 열어두는 것, 어둠으로 난 문을 열어 두는 것. 그 문은 가장 중요한 것들이 들어오는 문이고, 내가 들어왔던 문이고, 언젠가 내가 나갈 문이다. ...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무언가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의 건너편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모르거나, 모르는 데도 안다고 생각한다." -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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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우화처럼 집, 학교, 사회에서 게으름은 나쁜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 배우고 생각한다.

게으름이, 느림이, 멈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깨닫는다면 물질과 권력 중심의 목적지향적인 삶이 얼마나 공허하며 거꾸로 삶을 피폐하고 힘들게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선우정아의 '뒹굴뒹굴'을 BGM 깔고 읽어보시길...


[본문발췌]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 피에르 쌍소

나는 시간을 멎게 하는 게으른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병리학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모를까,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되찾고, 느긋이 몸을 돌보고, 서로 아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거의 현자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만 시간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아니면 차라리, 강요받고 별 뜻 없으며 앞다투어 능률을 올리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갈음할 뿐이다. 게으름이라 함은 이따금 제 기분이나 기질에 따라서 행동하는 만큼, 그리하여 드디어 자기 자신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남이다. 그러나 정신까지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맞서는 것을 잠깐 멈추는 식의 물러남이다. 이 세상이 뭐가 되든지, 되어 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어른이 되고, 늙은 사람은 죽게 되는 것.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신경 쇠약으로 죽음을 재우쳐서도 안 된다. 겨울이 우리를 삼키고 꽁꽁 얼어붙게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자. 겨울이 가면 봄이 올 것이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될 테니.

말하자면,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다.
존재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은 놀라움의 순간이고, 당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다. 웃음을 띤 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러한 순간이다.
게으름은 어디 아픈 것처럼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증세가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삶을 누리려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이다. 아주 천천히 가고 있어서 삶의, 저물녘에, 막바지 노을 속에서, 영원의 저녁 빛을 숨쉬는 그러한 능력이 게으름이다.

이와 같은 인식 행위에는 시간을 멎게 하는 힘이 있다.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 볼 가치가 있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볼 가치가 있다. 마치 포도주잔에 빠져들어 한 방울 한 방울 그 맛을 느끼며 즐기듯이 말이다. 사람들이 아껴 마시는 포도주, 그 포도주 또한 입 안의 포도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나.

움직이 않음, 마침내 그것은 움직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일 터.



<정원에서> - 질 클레망

자연은 아무도 정확하게 내달볼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커다란 자원이기도 하다. 자연은 언제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만일 사람들이, 자연이 스스로 알아서 저희를 표현하고 무슨 일이든 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아마 한결 풍요로운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꽃이며 짐승들이 곳곳에서 나타날 테니까.

이러한 삶이, 이러한 다양성이 실재한다. 자기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이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차라리 거꾸로 움직이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더 잘하는 것이다.



<무를 위한 시간> - 티에리 파코

'휴식recreation'이라는 말 속에는 '창조creation'라는 말이 들어 있다. 창조의 그 순간에 아무 감정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그에 따르는 침묵에 방해는 받았다는 듯이.

더구나, 그러한 침묵은 우리 스스로의 소리를 듣게 하고, 우리를 가깝게 하고, 우리를 꽉 채워 주고, 우리가 삶의 길을 다시 갈 수 있게 한다. 휴식과 창조의 시간, 무를 위한 그 시간은 새로운 무엇을 예비하는 시간이다.



<시간, 멈추어 버린>

나날의 삶에는 나날의 삶이 필요로 하는 박자와 어긋나는 방향이 있다. 그러한 템포의 틈서리에서, 우리의 삶은 멋대로 휴식을 얻는다. 낮잠과 밤새우기와 일요일과 기다림과 권태가 우리로 하여금시간을, 우리의 시간을 되찾게 해 준다.



<밤과 잠> - 마르틴 쿠티에

누구나 알고 있다. 회한에 사무쳐 괴로워하는 사람은 제대로 쉬거나 잠을 잘 수도 없다는 것을... 유령 이야기, 서서 자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거꾸로, 뉘우칠 거라곤 없는 순수하고 천진하고 결백한 영혼은 평화롭고 깊은 잠을 자도록 보장받는다. 흔히 그렇다는 말이다.



<일요일, 그 등대에서> - 장 프랑소와 뒤발

늦잠을 자고 나면 그 나머지 시간이 있는 법. 일요일은 사회 생활의 규칙으로 말미암은 것만큼이나 계절의 리듬, 밤과 낮이 바뀜에 따라 결정되는 '시간의 추종자들'이 한 순간 폭발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 추종자들은 바깥쪽 요인의 강요를 받아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시계의 연대기 생물학의 시간과 다른 결을 타기 일쑤다.

아침잠을 깨우는 자명종, 수첩에 적힌 갖가지 일, 노동 시간, 제때 식사, 여름 시간표, 겨울 시간표 따위가 한 주 동안에 우리와 일상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그러나 일요일에는 낮 열두 시에 아침을 먹기도 하고,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간식 시간과 점심 또는 저녁 시간이 뒤섞이기도 한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몽롱하게 취하기도 하고, 사냥감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몇 킬로미터를 내달려 보기도 한다. 굳이 시간을 셈하거나 하지 않고.

일요일이 지닌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느림과 감속이라는 특성이다(이따금 멈춤에 따른 불안한 감정까지 건네면서). 평일은 재즈처럼 늘 비슷비슷한 템포로 움직인다. 일요일은 훨씬 조화로운 날이며, 화려한 피날레가 따르곤 한다. 영화에서 화면이 바뀌며 나타나는 영상 하나하나가 우리 나날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으로 갈음되듯이, 우리는 갑작스럽게, 아주 쉽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사물, 곧 위대한 시간을 맞이한다.

평일은 경제의 역학 구조와 온갖 구속에 의하여 완벽하게 조정되기 일쑤다. 그러나 일요일은 이 역학 구조를 차단시키며, 마침내 시간과 맞물리지 않는 흐름을 타곤 한다. 어느 시간대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기제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일요일에는 저마다 자신이 시간을 가진다. 삶은 셀 수 없이 숱한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갖가지 시간으로 짜여 있다. 일요일은 우리에게 시간의 다양성과 그 최초의 밀도를 조금이라도 되찾아 주는 날이 아닐 수 없다.

오늘, 함부로 흘리거나, 붙들고 있거나, 갈무리하거나, 써 버리거나, 아예 없애거나, 잃어버리거나, 보람차게 만들거나,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내가 힘없이 가라앉아 있거나, 힘이 넘쳐서 설레거나,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에 대한 나의 지배는 변함이 없다.

일요일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지위를 빼앗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 불연속성 앞에서, 평일에는 우리가 다른 배역을 맡지 않을 수가 없다. 평일은 우리를 나누고, 우리 자신을 갈라놓는다.

지속성과 연속성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 일요일에는 그런 배역이 없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이따금 그 단일성 속에서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며, 존재의 흐릿한 윤곽을 분명하게 하도록 촉구한다. 왜냐하면, 존재 방식을 통해서, 정체성이 찾고자 하는 내적이고 심리적인 태도를 통해서, 그 특별한 날은 온갖 퇴행 현상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곤 하는 까닭이다. 괄호 속에 놓인 사회적 자아, 나르시시즘을 곁들인 욕구는 틈만 나면 차츰 기력을 되찾는 경향이 있다. 그 때 우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자기 가족을, 자기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만일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면, 그것은 식전의 맛보기 술이 주는 가벼운 행복감, 즐거운 식사 모임, 알코올로 말미암은 취기, 묵직한 소화 기관, 이런 상태에서 이미 쾌락주의자들이 겪은 바 있는, 무기력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그 때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억눌려 있는 자아다. 만족시켜야 할 욕구가 있는, 쾌락을 좇는 자아다.

만일 일요일이 우리의 나날 가운데 가장 걱정 없이 보내는 날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일요일이 온갖 일탈을 가능하게 하며 다른 어떤 시간보다도 광기와 우연과 창조의 시간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그 날의 시공간 속에서 본다. 그날은 또한 과거 속에 가장 뿌리내린 시간이다.

평일에는 탈을 써서 오히려 그 만남을 훼손시키지만, 일요일에는 아예 탈을 쓰지 않음으로써 남과의 만남 또한 자기와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진다. 일요일에는 왕조차 가식을 벗어던진다. 일요일은 누구나 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임을 깨닫는 날이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휴식의 시간인 일요일은, 사람과 사람이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가 다시 창조되는 시간인 것이다.



<시시한 이야기> - 크리스티앙 보뱅

영원이라 함은 시간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남는 자취 같은 것이지요. 마치 이삭들을 헤치며 걷다 보면, 어느덧 밀밭에 생기는 어린 시절의 오솔길처럼... 영원이라는 것 또한 그 시간 하나하나에 깃들여 있는 소박한 삶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째서 그 영원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옮기고 나서]
<게으름의 즐거움>은 게으르게 사는 것이 바쁘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찬양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언사로 게으름이, 느림이, 멈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이리저리 풀어헤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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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라! 사먹던 열매로는 상상 못했던 꽃이다. 올해는 수확해서 먹다.

변산 드라이브길 담배꽃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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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의지는 도덕과 선에 어긋난 결단과 행동을 취하게도 한다.

제자백가의 대표 사상인 유가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인 · 의 · 예와 같은 덕치(德治)가 근본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전제권력을 추구하며 보다 엄격한 법치(法治)와 술치(術治), 세치(勢治)가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법가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로'과 닮았다.

 

 

[본문발췌]

 

 

정치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

 

 

풍경을 그리려는 자들은 낮은 평야에서 산과 고지대를 살펴야 하고, 평원을 살피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되어야 하고, 군주의 본질을 잘 이해하려면 백성이 되어야 한다.

 

 

비슷한 풍토를 가진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방법

  1. 옛 군주의 핏줄을 완전히 제거
  2. 주민의 법률도 세제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예부터 내려오던 상태가 유지되고 풍습이 달라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평온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풍토가 다른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방법

  1. 지배지를 획득한 인물이 친히 그곳으로 가서 정주,  신민은 군주가 자신들의 호소에 즉각 응답해줄 때 만족을 느낀다.
  2. 새로운 지배지에 상주병(주둔지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군사 일도 겸하는 군대)을 배치. 백성은 다정하게 회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말살해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가벼운 상처를 입히면 복수를 해 오지만, 상처가 중하면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때는 복수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해야 한다.
  3. 약소 세력의 도움을 받되 그들의 기세를 경계
  4. 다른 세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격

 

 

전쟁을 피하려고 혼란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피할 수 없을뿐더러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불리한 방향으로 늦춰지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법대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지배지에 대한 세가지 통치 방법

  1. 이것들을 괴멸
  2. 친히 그곳으로 이주
  3. 고유의 법에 따라 살라고 인정해주면서도 내부에 당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과두정권을 세워 조세를 거둠

 

 

선두에 나서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일보다 어렵고 성공이 의심스럽고 위험한 일은 없다.

새 제도를 도입하는 자는 낡은 제도의 혜택을 입은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고, 새 제도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은 그저 뜨뜻미지근한 아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적지근한 까닭은 첫째로 기존의 법을 장악한 대립자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확실하게 경험해 보지 않는 한 새로운 사태를 진실이라고 믿지 못하는 인간의 시의심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새로운 군주가 겪게 되는 어려움은 우선 사나운 적과 뜨뜻미지근한 아군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여기에 더욱 근본적인 어려움, '천성적으로 변덕스러운 탓에'라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가 더해진다.

 

 

박해는 일거에 끝내되, 은혜는 조금씩 천천히 베불어야 한다.

 

 

윤리적 공상과 엄현한 현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 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이다. 모든 군주들이 잔인하지 않고 인자하다고 생각되기를 더 원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민들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 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너무 자비롭기 때문에 무질서를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호의는 자신이 베풀고 처벌은 신하가 내리도록 한다.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주는 귀족을 존중해야 하지만 인민의 미움을 사서는 안된다.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현명한 통치자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해지거나 약속하도록 만들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약속을 지킬 수도 없을 뿐더러 지켜서도 안됩니다. 만약 모든 인간이 선하다면 이 교훈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사악하여 군주에게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들에게 했던 약속들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들을 언제나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우의 기질을 교묘하게 감추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가장 위선적이어야 하며 거짓말을 능숙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매우 단순하여 눈앞의 필요에 따라 쉽게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속이고자 하는 자는 언제라도 속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군주는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일으켜 세워줄 거이라고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건 일어나지 않건 이러한 책략은 당신의 안전을 도모해 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방어책은 당신의 능력 밖에 있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취약하고 비겁한 것입니다. 당신의 주도하에 있고 당신의 역량에 기초한 방어책만이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영구적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 시키는 사람들은 행운을 누린다.

어떤 사람이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고 시대와 상황이 그의 처신에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하면, 그는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다시 변화하면, 그는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런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 만큼 지혜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 그러한 변화를 용납하지 않거나, 아니면 일정한 방법으로 행동함으로써 항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리의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중한 사람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지를 못할 것이고, 이로 인해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운명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특질은 위장기술이다.

심각하게 상황을 빨리 깨들을수록 현명한 군주다.

특권층의 지지는 서민층의 지지보다 약하다

군대를 모르는 군주는 경멸당한다

오로지 선만으로는 권력을 지킬 수 없다

군주에게 가장 튼튼한 요새는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897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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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하는 방수공사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마지막 방수액 도포단계에 왔다.
일반 유성 우레탄방수의 경우 중도, 상도의 순서로 진행하는데 내가 선택한 마스터원코트는 중,상도를 한꺼번에 하는 개념으로 최소 3회 도포를 추천했다.
방수액 주문업체에서 바닥상태 사진을 보고 부직포를 같이 시공하는 것을 추천해서 주문하긴 했는데, 초보자가 부직포 시공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가 마지막 방수액 도포전에 바꾼 마음이 결국 하자가 발생하고 어렵게 시공한 부직포와 엄청난 방수액 낭비를 초래하며 부분 재시공까지 하게 된다.

모든 시공을 마무리하고 노을과 별을 보며 노고를 스스로 자축하려 했지만 휴가기간이 끝나 결국 다음 기회로!


10일차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마지막 단계 방수액 도장 준비.
5시반부터 시작한 작업이 저녁 9시반까지 점심먹는 시간 빼고 15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1~3차 방수액 도장, 방수액 주문업체에서 추천한 부직포는 시공에 시간도 걸리고 초보자가 하기에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 포기하려 했는데 바닥 상태에따라 부분 사용을 마음먹고 7미터 11장을 재단으나 더운 날씨에 방수액이 빨리 마르고 부직포를 정확하게 맞추어 붙이기가 쉽지 않아 일부만 시공하고 포기.
3차 도포는 저녁 6시 넘어 시작해 어둠속에서 감으로 칠했다. 내일 아침부터 비오 온다니 급해진 마음에 마무리는 했으나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11일차
하루종일 비, 오랜만에 휴식.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아프다.
비 온후 옥상 상태는 부직포 부분의 들뜸 하자 말고는 만족할만하다. 역시 초보자가 부직포를 시공하기에 무리가 있었나 보다.
방수액이 빨리 마른 곳에 부직포 밀착이 제대로 안되고, 비가오니 부풀어 오르거나 들뜬 부위가 여러곳이다. 결국은 부직포를 걷어내고 그 부분만 프라이머 하도부터 재시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다.


12일차
새벽부터 부직포 하자보수. 힘들여 붙이고 방수액도 많이 먹은 부직포 뜯기도 어려워 몸도 마음도 아프다.
그나마 아버지, 어머니 도움까지 받아 오전중에 하도 프라이머까지 마무리하고, 오후 3번의 방수액 도장과 일부 실리콘 보수로 옥상방수 끝.
마지막 계단 부분은 미끄럼 방지용 네버슬립을 혼합해 도포해야 하는데, 방수액이 모자라 일부만 처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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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그라인딩을 포함한 바탕면정리가 끝나면 하도를 바르고 크랙 및 메꿈보수를 하고 중도, 상도를 바르는 형태로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집 상황은 울퉁불퉁 패인곳이 많은 바탕면에 면갈이를 했지만 기존 우레탄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곳들이 있고 수평이 맞지 않는 면적도 넓어 복합적인 시공방법을 선택했다.

하도(프라이머)는 기존 우레탄이 남아 있는 부분을 고려하고 한진건설화학의 중상도용 마스터원코트로 방수를 할 계획이라 마스터멀티프라이머를 도포하기로 했다. 마스터원코트와 프라이머를 주문하기 전 문의를 하니 메꿈과 크랙보수를 위해 초속경몰탈(마페이 플래니탑CD1)을 추천해 주셨고, 기존 우레탄 부위에 수성 우레탄 도포를 바로 할 경우 탄성차이로 유성 우레탄이 탄성이 더 좋아, 기온이 높은 날 탄성에 의해 위에 도포된 수성 우레탄 균열이 올 수 있다고 마스터원코트 1차 도포시 부직포 시트를 같이 붙이길 권하셨다.

그런데, 초속경몰탈만으로는 네 귀퉁이의 수평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깊고 넓게 패인 곳의 메꿈과 귀퉁이 배수관 근처 수평구배는 몰탈방수제(방수프로+레미탈)를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 단계 계획은

  1. 마스터멀리프라이머 도포
  2. 1차 크랙 보수 (초속경몰탈)
  3. 몰탈(방수프로+레미탈)로 배수구 근처 수평구배와 넓게 패인 지역 메꿈
  4. 크랙과 메꿈 보수부위 프라이머 재도포
  5. 2차 크랙 보수와 벽바닥 조인트 부분 우레탄 실리콘 시공


계획은 계획일 뿐, 날씨와 보수 상황에 맞게 조정하며 진행하게 된다.


7일차
비소식에 마음이 급하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안아야 만족한 마무리가 가능!
밤중에 비소식에 초속경몰탈을 이용한 크랙보수와 방수프로+레미탈 시공 순서를 바꾸어 진행한다.
더운 날씨와 난간벽 난이도가 높아 1차프라이머 도포에서부터 지치고, 방수프로+레미탈 시공은 집에 있는 작은 드릴로는 레미탈 교반이 제대로 안되서 삽을 이용해 몸으로 교반을 하니 체력도 저하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결국은 해질때까지 작업! 몰탈이 굳기전에 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8일차
밤중에 천둥번개가 요란했지만 비가 많이 오지는 않고 방수프로+레미탈 시공한 곳도 일부 잔크랙이 있고 수평이 조금 안맞아 물고임이 일부 있어 마감이 매끄럽지 않지만 괜찮은 수준이다.
비온 후 물기가 마르기까지 오전 휴식 후 초속경 몰탈을 이용한 크랙보수와 메꿈작업. 1킬로 이하로 조금씩 교반해 작업했지만 굳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여러부위를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적은양을 계속 물을 조금씩 섞어가며 작업한다.
방수프로+레미탈 시공시 여기저기 떨어진 레미탈 가루와 덩어리, 초속경몰탈 잔여물때문에 물청소를 다시 한번 진행하다보니 시간 지체된다.
일부 부족한 메꿈작업과 물고이는 곳 초속경 몰탈 보수를 위해 다시 부분 프라이머 작업으로 8일차 작업 마무리.


9일차
초속경 몰탈로 물고이는 곳 수평잡기와 패인 난간 등을 보수하고, 프라이머 재도장, 우레탄 실리콘으로 크랙보수와 벽바닥 조인트 부분을 메꿔준다. 더위와 여러날 피로 누적으로 생각보다 진도가 느렸지만 이제 마지막 방수액 도포 단계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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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기초가 중요하다. 방수의 기본은 바탕면 정리.
아래 사진으로 보듯이 우리집 옥상 바닥은 정말 최악이다. 바탕면 정리라도 업체에 맡겨볼까 고민도 했고, 더 큰 면갈이 공구를 빌려볼까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은 4인치 그라인더를 가지고 바닥 40평과 난간 위쪽 면갈이를 시작한다.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다보니 다리에 마비가 오고, 그라인더 떨림에 손가락, 손바닥, 손목이 아프고 마비가 오는 면갈이 지옥을 경험했다.
 
아마 두 번 다시 못할 작업이 아닐까? 업체에서는 7인치 또는 9인치 그라인더와 집진기, 또는 전문적인 면갈이 기계를 사용해 좀 더 수월하게 작업을 하기에 가급적 바탕면 정리라도 업체에 맡기는게 낫다.
직접 고생을 맡보고 싶다면, 4인치 그라인더로 도전해 보시길. 단, 호흡기 건강과 먼지날림을 방지하기 위해 집진흡입커버와 청소기 연결은 필수다.
 
 
1일차 (5월24일)
방수재료 선택을 못해 이생각 저생각에 잠못이루는데 집 강아지는 떠돌이 암캐에 마음이 뺏껴 밤새 낑낑댄다.
아침부터 바탕면 정리 작업 착수. 집진용 청소기가 배송되기 전이라 오전은 스크래퍼로 난간벽의 기존 우레탄 방수제 제거하는데 손이 얼얼하다.
오후 집진용 청소기가 배송되서 본격적 면갈이 작업 시작. 처음 쓰는 그라인더, 석재용 평면컵 다이아몬드 날을 이용한 바닥면 갈기. 
기존 우레탄 방수면과 벗겨진 콘크리트가 섞인 열악한 옥상바닥에 처음 다루는 장비다보니 집진기 체결이 제대로 안되 결합부위가 일부 녹아내렸다. 면갈이 지옥문이 열릴줄 이때는 알지 못했다.
구부려 앉아 작업하다보니 다리가 마비될지경. 그라인더 떨림에 손과 손목도 같이 마비가 온다.
지금까지 몸쓰는 일 안해본 티가 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에 조금씩 적응해보자.
 
 
2일차
갈수록 스킬은 업그레이드 되는줄 알았으나 기존 우레탄이 잘 안벗겨져 진도가 너무 늦다. 업친데덥친격으로 초반 실수때문에 일부 결합부위 플라스틱이 녹았던 집진기가 그라인더 열이 더해져 완전히 망가져 읍내 철물점 몇 곳을 알아봤지만 집진기가 뭔지도 모르신다.
걱정은 접고 오전 곰소항에서 산 갑오징어, 오는길에 캐온 죽순으로 갑오징어죽순물회와 껍질무침과 태임씨 막걸리 한잔하며 피로를 푼다.
 
 
3일차
새벽부터 깨서 옥상에 올라가보니 붉게 타오르는 동틀녘 하늘, 해는 뜨지않는 흐린 아침. 기온이 차다.
바람과 흐린 하늘, 갑작스런 소나기. 집진기 없이 그라인더를 돌려보지만 먼지가 너무 심해 그것을 내가 마셔야 하니 작업은 불가하다.
고창읍내에 집진기 브랜드 공구 대리점이 있어 가봤더니 집진기는 잘 찾지않는 물건이라 별도로 주문해야한단다.
일단 다시 11번가에서 주문 넣고 스크래퍼로 들뜬면과 바깥쪽 난간면 수작업과 물청소. 
 
 
4일차
오전 흩날리는 비로 휴식하며 방수제 주문을 하다.
망가졌던 집진기 새로 주문한 것과 몇가지 부자재 도착해 4시간여 면갈이 진행.
어제 유튜브에서 그라인더 면갈이 팁을 배워 날이 돌아가는 방향따라 힘조절하니 한결 낫다. 그 전에 그라인더 회전반대방향으로도 돌리다보니 열도나고 바닥이 패임도 심했는데 이제야 깨닫다. 사방 난간쪽 균열부위도 있고 약한부위라 조심해서 작업. 
그라인더 회전충격이 손과 손목에 그대로 전달되고 밭일에 쓰는 방석의자 달고 해도 쪼그린 자세에 다리도 마비되는 느낌, 힘들다. 
 
감자 수확시즌이라 얼마전 수확한 감자전에 막걸리로 피로 풀고 이른 코스모스가 벌써 피고 개구리소리가 온동네를 깜싸고 밝은 달이 비추는 저녁을 보낸다.
 
 
5일차
달이 무척 밝은 새벽, 새벽 1시경부터 깨서 잠못이루고 다음 작업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본다. 
계속된 면갈이,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잠시 휴식.
 
 
6일차
9시부터 오전 작업으로 면갈이 마무리, 오후 보강과 계단 면갈이 까지하고 물청소로 마무리. 드디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바탕면 작업 전 상황]

 
 
[그라인더 작업]
 

 

 
 
[그라인딩 작업 완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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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살고계신 시골집, 일출과 일몰 그리고 석양, 밤에는 별빛을 보며 힐링하기 좋은 옥상이 있는 곳.

10여년 전 우레탄 방수 후 그대로 방치하니 기존 방수가 벗겨진 곳, 여기저기 패인 콘크리트, 수평이 맞지 않는 구배로 물이 고여 패인 곳 등 처참한 수준이다.

 

몇 해 동안 방수를 미루다가, 올해 2주간의 refresh 휴가기간 동안 코로나19로 여행도 쉽지 않으니 옥상방수와 건물 벽과 바닥 조인트 틈새 보수를 결심했다.

 

몇 개월전부터 방수재료와 방식 등에서 대해서 블로그와 카페, 유튜브 검색을 통해 공부하다보니 정보의 홍수를 체감하며 쉽게 결정내리기 어려웠고, "직접해보면 왜 전문가에 맡기는지 안다", "병원비가 더 든다" 등 주변의 조언으로 망설이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드디어 5.24일부터 2주간의 휴가를 활용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옥상 바닥 면적은 대략 40평, 벽과 난간 등이 약 15평으로 총 55평 규모!

 

방수재료와 방식을 나름대로 알아보며 나만의 이해와 장단점 비교를 하고 준비과정에서는 최종적으로 한진건설화학의 마스터원코트를 활용한 수성도막 방수를 시도하기로 했다. (장단점은 지극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방수재료, 방식 장점 단점
유성 우레탄
도막 방수
가장 일반적이고 셀프시공 사례와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많음 수분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고 중간에 비가 오는 경우 난감함.

중도, 상도의 경우 일부 교반(첨가제 등을 섞는 것)과 시공 스킬에 따라 완성도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임.
수성 우레탄
도막방수
물기가 있거나 작업중간에 비가오더라도 잠깐 멈췄다가 작업이 가능하고 방수액 도막 자체는 초보자가 하기에도 쉽다. 시공 사례가 유성 우레탄 만큼 많지 않고, 내구성 등에서 신뢰도 확보가 미흡.
몰탈
복합방수
바탕면이 고르지 않거나 기존 방수액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방수재와 혼합한 몰탈로 덮어버리기에 자동수평을 맞춰 깨끗한 바탕면을 얻을 수 있고, 그 위에 유성 또는 수성 도막방수 등을 쉽게 할 수 있다. 파워방수가드나 방수프로 같은 방수액과 레미탈, 물을 혼합한 몰탈 교반이 쉽지 않다.

보통 18리터 기준 방수액에 레미탈 40킬로 2포대, 물 18리터를 교반하는 데, 큰 교반기가 없이 넓은 면적을 작업하기에 어려움이 있음.
시트
복합방수
바탕면이 고르지 않더라도 시트를 씌우고 도막방수액을 발라 작업할 수 있다. 시트를 잘 접착하는 데 스킬이 필요하다. 초보자가 잘못 시공하면 중간 시트가 뜨거나 물이 새 들어가는 경우 대참사가 올 수 있다.
칼라강판 또는 지붕 시공 칼라강판이나 지붕을 아예 지붕을 씌우는데 최근 시골집에 많이 시공하는 방식이다. 비용이 가장 비싸고, 상황에 따라 옥상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어떤 재료,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옥상 바탕면 정리는 필수다. 그리고 바닥 상황에 따라 가장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바탕면 정리작업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시골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방수액 관련 주문을 뺀 바탕면 정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주문했다.

 

  1. 4인치 그라인더 (보쉬 GWS750-100)
  2. 그라인더 집진흡입커버 (계양 KDH-125A)
  3. 다이아몬드컵 4인치 그라인더 날 (콘크리트 평탄작업용)
  4. 업소용 청소기 (유니맥스 1690S)

 

자, 이제 옥상방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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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인생의 지혜, 행복의 조건, 삶의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류시화 시인이 엮다.


[본문발췌]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안에 있다.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 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어떤 생각을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잎이 펼쳐지다가 마침내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내가 기가 죽을 때는, 내 자신이 가난함을 느낄 때는, 나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마음이 맑고 투명해야 평온과 안정을 갖는다.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야말로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꺽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라. 아름다움이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그만이 지닌 특성의 아름다움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물이 한 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수행자에게 가난이란 맑음 그 자체다. 모자라고 텅 빈 그 속에서 넉넉한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무릇 수행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이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욕지족,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면, 그 피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내 삶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저마다 이 세상에 자기 짐을 지고 나온다. 그 짐마다 무게가 다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남들이 넘겨볼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있다고 달아나서는 안된다. 그 어려움을 통해 그걸 딛고 일어서라는 새로운 창의력, 의지력을 키우라는 우주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차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야 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 움직인다. 하나의 극에서 다른 극으로 움직이면서 변화한다. 이런 변화와 움직임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삶을 이룰 수 있다.


묵은 버릇을 떨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때 새 움이 튼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적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 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 새날을 등지면 안된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 문도 활짝 열린다.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 해야 한다.


인간은 흔히 무엇이든 넘치도록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텅 비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텅 비어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우리는 비울 줄을 모르고 가진 것에 집착한다. 텅 비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
텅 비었을 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생명이 지닌 밝고 아름답고 선한 가능성을 일깨우지 않고 자기 한 몸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풀을 뜯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다르지 않다.


사람의 손이 빚어낸 문명은 직선이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이다. 인생의 길도 곡선이다. 끝이 빤히 내다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모르기 때문에 살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곡선의 묘미이다.
직선은 조급, 냉혹, 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 인정, 운치가 속성이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 역시 곡선의 묘미이다.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어정거리고 길 잃고 헤매면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충실히 깨닫고 사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차지하는 것과 보고 즐기는 것은 그 틀이 다르다. (그냥 바라보는 기쁨)


자기 체험이 없는 말에 울림이 없듯이 그 어떤 가르침도 삶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여행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의 속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가치 있는 삶이란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삶이다.


자기 자신답게 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다.


인간은 늘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서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그런 물음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기를, 곧장 달려가기보다는 구불구불 돌아가기를 좋아한다.
문명은 직선이고 자연은 곡선이다. 곡선에는 조화와 균형, 삶의 비밀이 담겨 있다. 이것을 익히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영혼의 밭을 가는 사람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98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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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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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우스에서 사시사철 과일을 수확하는데 봄 노지에서는 딸기 다음으로 오디, 복분자, 블루베리.
특히 토종 오디는 알이 작지만 당도와 식감이 더 좋다.

베리라는 이름이 붙지만 딸기와 복분자는 장미과 식물이고, 블루베리는 월귤나무의 일종이란다.

오디는 뽕나무 열매다.

비슷한 시기 먹을 수 있는 새콤달콤, 떫은맛이 오묘한 조화 보리수열매까지!

참외, 수박, 토마토 등 여름과일이 본격 나오기전 5~6월의 제철 과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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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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