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이후 업무 관련 책 이외에 제대로 독서를 한 기억이 없이 눈가면을 쓴 경주마처럼 밥벌이와 하루하루 삶에 매몰되어 살다가 10여년 전 이 책을 만나 다시 독서를 시작하며 세상을 넓고 깊게 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책은 다시 좋은 책을 연결해주는 힘이 있다.


[본문발췌]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 이철수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 - 이철수


"삶은 실수할 적마다 패를 하나씩 빼앗기는 놀이다." - 최인훈


"지금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결과" - 나폴레옹


태어나서, 초/중/고/대학교를 다니고 어른이 되면서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어준다.


사람은 물이다. 조용한데 이르면 조용히 흐르고, 돌을 만나면 피해가고,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규정된 성격이 없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 중국 옛시, 작자 미상 (봄->행복)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두려웠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항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박의 위치 판단이다" - 김훈, <자전거 여행2>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때문에 나에 대한 파악을 하기 전에 내가 갈 곳만 보려고 하죠. 혹시 그래서 실수하지 않을까 나를 먼저 분석하려고 합니다.


세월에 저항하면 주름이 생기고 세월을 받아들이면 연륜이 생긴다.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못한다" - 김훈, <칼의노래>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군이가'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나는 상대에게 누군인가'가 중요해진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 - 오스카 와일드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알랭 드 보통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린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상대적 궁핍과 궁핍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 알랭 드 보통
"거지가 질투하는 대상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좀더 형편이 나은 다른 거지다." - 버트런드 러셀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 알랭 드 보통


남자와 개의 공통점
1) 털이 많다
2) 버릇을 잘못 들여놓으면 평생 고생한다
3) 시간을 내서 놀아줘야 한다
4) 버릇을 잘못 들여놓으면 평생 고생한다
5)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삶을 낭비하지 말고 삶에 대해 감사해하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모두 사랑하라. - 마르셀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자신을 위한 독서법", 이렇게 미세하지만 중요한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는 책을 읽으면 이런 효과가 있다. 우리는 그 책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계속하면서, 작가가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 있었다면 정확히 반응했을 바로 그것들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방에 라디오를 들고 들어온 후에, 조용함이란 오직 특정한 주파수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사실은 처음부터 이 방에 우크라이나의 방송국이나 소형 콜택시 회사의 야간통신에서 나오는 소리의 물결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책은 그 자신만의 발달된 감수성으로 우리를 예민하게 하고 우리의 숨겨진 촉각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책은 그 자신만이 발달한 감수성으로 우리를 예민하게 하고 우리의 숨겨진 촉각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카프카


"인생이라는 포도를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씨까지 다 씹어먹는 사람이고 싶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노를 젓다가 / 노를 놓쳐버렸다 /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고은
목적을 향해서 뭔가를 할 때는 다른 것은 안 보인다.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돌아볼줄 아는 시선....


자연은 한 번도 예술을 동경한 적이 없다. 예술을 동경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예술적인 게 자연이니까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무욕만 한 탐욕이 없습니다.


지중해성 철학 : 현재에 집중하자. 순간을 살아라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소에서 찾아라' - 앙드레 지드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사람이란 나무와 같소. 당신도, 버찌가 열리지 않는대서 무화과나무와 싸우지는 않겠지?" - 그리스인 조르바
무화과나무한테 버찌가 안 열린다고 화내는 건 어리석다. 원래 무화과가 열리는 나무니까요. 사름은 다 다르고, 각자 그 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욕망으로 채워넣고, 제멋대로 실망하곤 다툴 필요가 없어요. 무화과나무 아래서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요.
'육신이 만족하자 영혼은 기쁨으로 전율했다.'


니코스 카찬차키스가 생각하는 행복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꽃 피어 올라오니 기쁨이고, 곧 꽃 지리니 슬픔이다. 봄은 우리 인생을 닮았다.


"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단어의 논리적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했으나 이 단어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통이라는 것은 단어의 논리적 의미를 이해하는 걸로 끝나지 않죠. 어떤 두 사람의 대화는 단어 밑에 깔리는 의미론적인 것이 해석되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곳에 답이 있는 걸 알지만 이제 여기에도 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사는 이 삶을 잘 살면 답이 나온다는 걸 이제 알아요. 다른 어떤 생에 대한 동경도 없어요. 큰 부자, 사회적 명예와 성공보다 집 앞 공원을 지나면서 풀을 보고 초록을 느끼는 내 삶, 내 인생이 좋아요.


'성취가 아닌 성취를 향한 갈망이 진짜 행복이다" -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


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 행복은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작은 데서 찾아온다.
-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소유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의 의미가 있다.
-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 무엇인가 늘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 산은 내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고 내 뜰처럼 즐길 수 있다.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는 기필을 거둡십시오. 세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오만과 아만을 버려야 합니다. -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인 농담'
기필을 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정작 봄은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네.
행복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행복은 내 눈앞에 있었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37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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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를 철학으로 이해하기.
매트릭스는 프로그램화 된 세계다. 어디선가 본 사회생활은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 자동차 할부, 주택 모기지로 이어지는 '할부'라는 프로그램에 종속된 삶이란 표현이 갑자기 떠오른다.


[본문발췌]


운명이란 현재의 눈길이 과거의 순간들에 던지는 소환장이다. 운명을 부정한 것은 운명이란 현재가 과거에 던지는 '회고적=추후적 눈길'(베르그송)일 뿐이기 때문이다. 운명을 받아들일 때 삶의 매 순간은 나의 시간들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미래를 바꾼다. 맞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말을 한 것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길을 찾도록 도울 뿐이다. 그것이 바로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이다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선택, 그것이 우리 삶의 대부분의 상황이다. 우리는 삶의 표면에서 살아간다. 삶의 심층은 우리 인식의 빛 저편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 심층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며 현재 자신의 감정, 기분, 느낌에 근거해 행위해야 한다. 아직 인식하지 못했음에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며 이미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 규칙성의 오류 = 자유의 투쟁
오류=자유=저항의 존재는 '프로그램'을 위협한다. 그래서 오라클은 미래가 열린 미래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내 관심사는 하나야. 미래. 미래는 모두가 함께 열어가야 해." 완벽한 결정론으로부터의 일탈, 그것은 존재론적 분기를 통해 나타난다. 베르그송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듯이, 결정론의 세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곳에는 선택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존재하는 세계는 지도리가 존재하는 세계, 분기점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논리적으로 여럿인 갈래들 중에서 현실적으로 하나의 갈래만이 선택되어야 한다. 그 선택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필연인가, 주체들이 의지인가? 주체들은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물을 열어야 한다.


"변함없는 보편적인 것은 딱 하나. 그것만이 진리지. 바로 인과법칙 말이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목적론 vs 인과론, 인과는 보이지 않는 심층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고, 목적은 주체의 상황에 따라 미래에서부터 현재에로 작용하는 힘이다. 서로 대조적이지만, 목적도 인과도 우리를 지배하는 외적인 힘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점심을 걸러 배가 고프기 때문에 밥을 먹어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고시를 준비한다. '때문에'는 과거로부터, '위해서'는 미래로부터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시간과 우연, 새로움의 창조. 베르그송적 주제
"모든 것은 선택이야. 그러나 선택은 예정되어 있지." 표면에서의 선택은 사실상 심층에서의 결정의 결과일 뿐이다. 희망은 소용없다.
"인간은 늘 희망에 기만당하지. 희망은 인간의 강점이자 약점이야." 기계는 법칙성에 따라 움직이고 인간은 희망에 따라 움직인다.


전통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는 벤야민에 따르면, 그것은 에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존재 근거와 존재 한계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서 원본성과 유일성 그리고 다시는 복제될 수 없는 일회성에서 아우라가 생긴다는 것이다.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 더 나아가 사물의 권위를 형성한다.


매트릭스에 갇혀 있던 삶의 세계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받영하고 있다. 토마스 앤더슨이 매트릭스 안에서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미래가 보장된 직원으로 살지만 실제의 현실에서는 단지 건전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캡슐에 갇힌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시계 바늘에 쫓기며 몸을 움직이고, 수많은 기계 사이에서 이리저리 통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매트릭스 안에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이 요원일 수 있는 것처럼, 이 현실 세계는 온갖 감시와 통제로 가득하다. "매트릭스는 바로 진실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려온 세계라네."


삶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가 중요하다.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며,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며, 우리가 죽어가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실이나 진실을 말할 때, 단편적으로 이것은 사실이고, 저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시각으로 인하여 전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다. 즉 우리의 눈으로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계를 보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진실을 마주할 수 없는 것은 두 눈에 비치는 단편적인 세계를 전체 세계처럼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바로 사랑이다. 세계 안에 있는 자가 세계를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리를 볼 수 없는 한계상황이다. 그러한 세계를 보는 것은 따라서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그러한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안에 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품는다는 것은 갈등과 반목, 그리고 질시를 관용과 화해로 용납한다는 것이며, 결국 이것은 전 세계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란 모든 것들을 품고 용납하며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야 보인다는 것이다.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부터의 탈출은 타인을 용납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결국 사랑을 품을 때에야 가능하다. 나는 오늘도 진실 앞에서 머뭇거린다.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의 가장 소박한 모습인 욕구는 인간의 삶을 추동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이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다. 그런데 욕망의 실상을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원초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욕망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할 때 쾌락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충족보다 더 큰 쾌락을 만들어냄으로써 금방 결핍의 상태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흔희 좋은 차나 좋은 배우자를 갖기를 꿈꾼다. 하지만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달성하는 순간 성취감의 쾌락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욕망하게 하는 새로운 결핍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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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파키스탄의 독립과 함께 태어난 한밤의 아이!

가족, 인생의 희로애락과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선이 있으면 악도 있다는 삶의 양면성.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본문발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대부분 우리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알 리가 없는 일들을 알아내는 재간이 어디선가 생긴 모양이고, 그래서 아주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이를테면 이른 아침의 대기 속에서 천천히 흘러내리는 듯한 그 안개도 그렇고... 아무튼 나는 거미줄에 뒤덮인 채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좋았을 낡은 양철 트렁크를 열었을 때 발견하게 되는 몇몇 실마리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한 인간이 엄청난 다수 속에서도 한 개인으로 남고 싶다면 스스로 괴상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모두의 꿈이었던 신생국 인도 전역에서 나처럼 부분적으로만 자기 부모의 자식인 아이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밤의 아이들은 시대의 아이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가 그들의 아버지였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모든 놀이에는 교훈이 따르는 법인데, 뱀과 사다리에는 다른 어떤 놀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교훈이 있다. 이 놀이는 사다리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로 그 너머에는 뱀이 기다리고 있으며 뱀 한 마리를 만날 때마다 바로 그 너머에는 뱀이 기다리고 있으며 뱀 한 마리를 만날 때마다 곧 사다리가 보상해준다는 영원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것은 당근과 채찍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이 놀이는 모든 일에 수반되는 불변의 양면성, 즉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선이 있으면 악도 있는 이원성을 암시한다. 사디리의 든든한 합리성은 뱀의 신비로운 유연성과 균형을 이르고, 계단과 코브라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립관계의 은유를 발견한다.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기억 속의 진실이죠. 기억 속에는 기억만의 특별한 현실이 있으니까요. 기억은 선택하고 생략하고 변경하고 과장하고 축소하고 미화하고 헐뜯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현실을 창조하는데, 각각의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복합적이면서도 대체로 일관성이 있는 해석을 내리는 거죠. 하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의견보다 남의 의견을 더 신뢰하는 경우는 없어요.

 

 

나는 한평생 나를 괴롭히던 존재의미의 문제 대한 해답을 울부짖는 여자들이 모인 집에서 비로소 얻게 되었다고 믿는데, 이 믿음이 옳을 경우 만약 내가 그 파멸의 궁전을 피해 무사히 도망쳤다면 그렇게 소중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나는 모든 자서전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유혹, 즉 과거는 본인의 기억과 부질없이 그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문장 속에만 존재하므로 과거에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기만 해도 그 일을 창조할 수 있다는 착각에 처음으로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 그들은 나를 짓밟을 테고, 숫자들이 하나 둘 셋, 사억 오억 육, 그렇게 행진하며 나를 말 못하는 먼지로 만들어버릴 테고, 때가 되면 내 아들이 아닌 내 아들도, 그의 아들이 아닌 아들도, 또 그의 아들이 아닌 아들도 그렇게 짓밟힐 테고, 그렇게 천 세대하고도 한 세대가 지나고 천 번하고도 한 번의 자정이 끔찍한 재능을 나눠주고 천 명 하고도 한 명의 아디들이 죽게 될 텐데, 왜냐하면 자기 시대의 주인인 동시에 재물이 되어 사생활을 포기하고 대중의 무자비한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평화롭게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것이 한밤의 아이들이 지는 특권인 동시에 저주이기 때문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7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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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은("The age of access : the new culture of hypercapitalism, where all of life is a paid-for experience", 2000)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Beyond Beef", 1992),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 1995)에 이은 종말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다. 

 

리프킨이 쓴 책 중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 읽었던 《엔트로피》 ("Entropy",1980) 였고, 2013년 경 처음 《소유의 종말》을 읽고 받은 공유 경제, 접속의 시대, 플랫폼 비즈니스가 만들어내는 제러미 리프킨의 통찰력은 충격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 물질의 공유를 통해 자원이 대폭 절약되고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공해와 쓰레기가 줄어들어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
  • 소유에 집착하는 삶!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된다. 이제는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 경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과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고 했다. 순순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 형식이고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 기업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 고객을 감동시키는 체험을 제공하면서 고객의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지상 과제였지만 이제 기업은 고객의 시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어간다.

 

 

[본문발췌]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 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 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경영을 선호한다.

 

 

접속과 네트워크라는 관념은 일찍이 근대의 여명기에 소유와 시장이라는 관념이 중요한 기능을 맡았던 것처럼 앞으로 갈수록 중요해지고 사회의 역학 구조를 새롭게 재편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 엘빈 & 하이디 토플러

시장에 먼저 제품을 내놓는 기업만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여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장 거래와 금융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쓰였던 돈은, 순수한 정보의 형태로 광속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전자 비트로 변해 가면서 빠르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급되는 돈 가운데 현찰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무게 없는 경제, 돈의 탈물질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 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결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나이키 사례 : 운동화 제조업체라기 보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공장 자산은 직원들의 상상력이다. - 프레드 무디 / 뉴욕타임스

21세기의 새로운 비즈니스는 딱딱한 물리적 자산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가치를 평가하는 가벼운 기업을 선호한다.

21세기의 경제는 정보과학과 생명과학, 즉 컴퓨터와 유전자가 함께 이끌어나갈 것이다. 둘 다 물리적 재산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되었든 두뇌가 되었든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접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보에 바탕을 둔 산업 - 금융, 오락, 통신, 비즈니스 서비스, 교육 (무형자산이 기업가치의 상당액)

생명과학 산업 (지적 재산권이나 과학적 노하우 같은 무형 자산에 대한 의존도 높음) - 농업 생물 공학, 섬유 제작, 건축 자재, 에너지, 약학

 

 

지적 자본 회계 모델 (레이프 에드빈손, 마이클 말론)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특성 : 직원들의 사기,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지도력, 혁신과 창조성을 뒷받침하는 풍토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플라톤이 말한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원형의 세계다. 개념의 세계, 픽션 세계다. 산업 시대의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데 빠져들어 있었다면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사업의 성패를 아이디어가 좌우하는 접속과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다.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확장하여 보편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산업 시대가 우리의 물질적 생활을 키워주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양식을 준다. 상품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 흘러간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다가올 접속의 시대의 특징은 개념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개념을 거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사람들도 이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물리적 구현물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점점 많이 사게 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모름지기 사물의 진가는 지닐 때보다 쓸 때 발휘되는 법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물품이 점점 정보 집약화, 쌍방향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품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물품의 가치는 물품을 구성하는 재료나 물품을 담는 통이 아니라 물품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얼마나 접속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물질적 상품은 지식-가치를 담은 통이나 운반체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 사카이야 다이치(일본경제기획청)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제품이 수명을 다하는 동안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계산을 하고 기업은 플랫폼을 싸게 공급한다.

 

 

소비자는 물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갖는 기능을 사는 것이다. - 몬산토의 로버트 샤피로

 

 

물품을 팔지 않고 서비스 접속을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자원이 대폭 절약되고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공해와 쓰레기가 줄어들어 환경 보호에도 상당히 유리한 여건이 조성된다. Revenue Sharing, 절감분 공유

 

 

독창성, 기민성, 순발력만으로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기술의 원가가 제로로 곤두박질치는 경제에서 가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머지않아 이런 급락은 거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똥값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라는 것은 처음 개발한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만 창출될 수 있다. - 비즈니스 위크 <기술의 역설>

 

 

세상만사가 서비스화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교환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에서 경험 영역에 접속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에어컨 자체를 사지 않고 에어컨 서비스를 받기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에어컨을 통해 얻는 경험에 대해서 돈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장소와 물건을 상품화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그것은 우리가 한시적으로 구입하는 활동이나 사건이 된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점점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관계relation 기술 / R-기술>

소비자 관리 : 마케팅 분야에서 R-기술을 써서 장기적 상업 관계를 상품화 하는 것

기업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에이전트가 되었다. 에이전트는 일종의 거간꾼 노릇을 한다. 글로벌 경제와 최종 사용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정보를 관리한다. 에이전트의 기능은 마케팅이다. 고객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에이전트의 역할이다.

 

 

가장 큰 자산은 고객에 접속할 수 있는 힘, 최종 사용자와 장기적으로 상업적 관계를 맺을 우 있는 능력이다. 마케팅 관점이 제조 방식보다 우위에 올라서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취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고객의 관심을 끌어 평생토록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 1단계 각성기 : 고객에게 장래의 판매를 염두에 두고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단계
  • 2단계 일체감 형성기 : 고객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친근감을 느끼고 그것을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임. 특정한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이제 그가 세상에서 자기를 차별화 시키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가 된다
  • 3단계 관계 형성기 : 쌍방향 관계로 이동
  • 4단계 공동체 형성기 : 회사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관심이 비슷한 고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
    이런 결속은 대단히 지속성이 강하다. 그것을 깨뜨리려면 경쟁사들은 친구, 동료, 가족 사이의 사회적 유대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과 물자의 상품화가 인간의 경험과 시간의 상품화로 바뀌었고, 이미 시간의 상품화는 포화의 조짐을 보인다.

우리는 상업적 영역 안에서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온갖 활동, 시간과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만들었지만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인간이 지금처럼 시간에 쫓기며 산 적도 없었다. 이것은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는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우리 주위에서 상품화되는 활동의 다양성과 속도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경제는 연결의 속도를 높이고, 지속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비스화함으로써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 의식, 형제애, 시민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케팅 전문가와 기업이 이른바 <고객 친밀감>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짜내고 깊은 <공동체적 결속>을 확립할 수 있는 수단과 장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내부에 상업적 덫을 갈지고 있는 이런 대리적 사회 영역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네트워크 경제의 탄생, 물품의 점진적인 탈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비중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물품의 순수한 서비스로의 변신, 생산 관점을 밀어내고 사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마케팅 관점,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 등은, 사람들이 서서히 시장과 재산 교환을 뒤로하고 접속의 시대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첨단 글로벌 경제에서 급격하게 벌어지는 구조 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시간 공유 공동체 (호텔/리조트 등)

일부 회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특정한 부동산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팔기 시작했다. 점수는 일종의 시간 공유 화폐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단위가 대체 가능한 화폐로 바뀌는 추세는 자원의 희소성보다는 시간에, 소유보다는 접속에 중점을 두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의미한다. 고객은 점수를 산다. 점수는 시간 단위를 나타낸다. 이 점수를 가지고 투숙, 항공 여행, 유람선, 골프장, 자동차 렌트, 그 밖의 여행, 레저, 오락 시설 일체를 이용할 수 있다. 렌트, 시간 공유 콘도 구입, 점수 구입은 모두 <시간화> 사업의 다양한 방식이다. 이제는 부동산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의 접속권을 사는 시대다. 아파트, 콘도미니엄, 빌라 같은 시설을 지정된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빠르게 부상하는 네트워크 경제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판매자-구매자 관계는 서서히 공급자-사용자 관계나 서버-클라이언트 관계로 바뀐다. 재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된다.

 

 

사람은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재산으로 확인하고 또 표현한다고 헤겔은 믿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묶어둠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투사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헤겔의 세계관에서 일은 노동 행위가 아니라 창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일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세계로부터 징발한 것이며 일을 한 사람의 인격 안으로 세계를 통합한 것이다.

"인격은 스스로에게 현실을 부여하려는, 다시 말해서 외부 세계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려는 몸부림이다 - 헤겔"

사람의 인격은 소유되는 대상 안에 늘 나타나기 때문에 재산은 인격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을 알고 확인하게 된다. 재산은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헤겔은 보지 않았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재산은 개인적 자유를 표현한다. 재산으로 자기를 감쌈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인격성을 시공간 속에서 부풀리고 자기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통신은 인간이 공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룩한 세계를 공유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디지털 통신의 모든 형태를 상품화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살아 있는 경험-문화 생활-을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를 상품화 하는 결과로 귀착된다. 공산품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지만 상업화된 전자 통신 기기와 온갖 종류의 문화 생산과 상품에 의해 점점 지배당하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경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인간 문화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며, 어떤 인간 문화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문화를 매일매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보며 알고 세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 - 리 데이어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의 핵심, 아니 생명 그자체의 핵심 - 에드워드 홀

 

 

문화는 소통 - 에드먼드 리치

 

 

다니엘 벨은 현대 문명을 분명히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경제, 정치, 문화의 세 가지 권역으로 나눈다. 

  •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
  •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
  •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 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생산하는 물건, 우리가 남을 위해 수행하는 서비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적 체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존재 전체가 상품화 되고 있다.

 

"체험 산업의 성장은 산업 혁명이 생산한 물건의 효용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소비자는 '내가 아직 안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뭔가?' 라고 묻지 않고 '내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 중에서 체험하고 싶은 것이 뭔가?' 라고 묻는다." - <제임스 오길비>

 

"새롭게 떠오르는 체험 경제에서는 상품이 아니라 '기억'을 맏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제조업체는 상품을 '체험화' 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는 '모는 체험'을, 가구업체는 '앉는 체험'을, 가전 업체는 '닦는 체험과 요리하는 체험'을, 의류 업체는 '입는 체험'을 격상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 <조셉 파인, 제임스 길모어>

 

 

접속을 통한 체험이 재산의 소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새로운 문화의 중개자는 개인과 문화 체험 사이에서 문지기 노릇을 한다.

 

유행 사냥꾼 : 트렌돌로지, 브레인 리저브, 쿨 워크스, 램버시스, 유스 인텔리전스, 뷰로 드 스타일, 이코노 컬처, 스푸트니크, 에이전트 엑스

 

 

탈근대에서 사람을 가르는 선은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다. 탈근대와 근대가 다른 원인은 시간, 문화, 실체험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탈근대와 맞물려 있는 반면, 근대의 자본주의는 토지와 자원의 상품화, 노동력의 고용, 제품 생산, 기본적 서비스 제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고정되고 인식 가능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고 그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개별적 현실들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현실을 모두 포괄하는 관점, 저 높이 우뚝 솟은 곳에서 현실을 내려다보는 관점은 존재할 수가 없다. 탈근대론자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의 구성물이다. 기호학자들은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내는 이야기,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 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세계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우발적이다. 진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시나리오로 엮여 있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창조된 세계, 합의되고 공유되는 의미와 은유로 결속된 세계다. 언어, 의미, 은유는 시간 속에서 달라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달라진다. 현실은 우리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소통을 통해 지어내는 것이다.

 

 

통신 서비스에 대한 지배가 권력의 원천이 되고 통신에 대한 접속이 자유의 조건이 된다. - 다니엘 벨 (1980)

 

 

누가 접속권을 소유하느냐가 핵심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문화는 인간 문명이 원활하게 가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또다른 가치의 산실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서 동질성을 확인한다.' - 리프턴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친밀함과 예의 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접할 때 길러진다.

 

 

<의식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국지적으로>

시민 사회 조직은 지역 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다른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문화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 시민 사회 조직운동의 성격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 마하트마 간디

다른 문화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터주면서도 자기 문화의 색깔과 개성을 고수하는 것.

 

 

요한 호이징가 -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된다. "사회는 삶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놀이를 통해 표현한다"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이 전통적으로 일을 지배해 온 전제와 규칙과 다른점

  •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vs  대부분의 일은 따분하고 지루하다.
  • 놀이는 자발적이다. vs 대부분의 일은 생존의 문제다. (선택의 제한)
    진정한 놀이는 살과 살이 맞닿는 친숙한 분위기에서 일어나며 이때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놀이의 시간적, 공간적 차원은 일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놀이는 시간을 초월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놀이 공간은 사람이 보유하거나 소유하는 영토가 아니라 일시적으로만 공유하는 무대이다. 따라서 놀이는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공간 차원에서 벌어진다. 놀이를 하는 사람은 놀이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놀이에 빠진다.
  • 놀이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즐거움과 삶의 본능을 긍정하는 것이다. vs 일의 목적은 징발하고 죽이고 가공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생산은 언제나 사물을 고갈시킨다.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사람은 놀 때 가장 인간답다' - 프리드리히 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하여>

순순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 형식이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과 어울리고 싶어서 놀이를 한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깊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집단적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남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희열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놀이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놀이도 희열도 결국은 경험의 공유이다. 숲을 혼자 거닐 때 느끼는 잔잔한 희열도 나를 둘러싼 생명과 혼연 일체가 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두려워하여 자유를 쓰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하는 것이 놀이다' - 샤르트르

인간은 순수한 놀이에 완전히 참여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자유에서 자율성을, 자율성에서 나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팔 수 있는 능력을 연상하면서 우리가 근대를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노동의 결실로 얻은 재산은 우리가 가진 자유의 징표로 여겨졌다. 우리가 소유한 것으로부터 남을 배제하는 권리는 우리의 자율성과 개인적 자유를 지키는 최선의 길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으면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성숙한 놀이는 수동적 오락과는 달리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친목, 시민 활동, 교회, 예술, 운동, 사회 정의, 환경 조직 같은 다양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그들은 성숙한 놀이의 진수를 맛본다. 그들의 사회적 교류는 사회적 신뢰의 섬을 곳곳에 만들고 풍성한 사회 자본을 끌어낸다.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 교류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해서든 고객의 관심과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이 생존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 고객을 감동시키는 체험을 제공하면서 고객의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지상 과제였지만 이제 기업은 고객의 시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29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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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잃지 않고 버티는 삶, 주체적인 삶을 사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생각이 필요한 시간.

 

 

[본문발췌]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당신이 소망하는 것인가? - 라캉

지금 내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과거 타자가 욕망했던 것, 혹은 금지일 수 있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지위,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모든 일이다. -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 이지, <속분서 성교소인>

 

 

우리의 정신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 번째는 '낙타'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일체의 사회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정신이다. 마치 낙타 주인이 등에 짐을 올리면 아무런 저항 없이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사자'로 비유되는 정신이다. 낙타와 달리 사자의 등에는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어떤 짐도 올릴 수가 없다. 짐을 올리려면 사자를 죽여야 할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일체의 억압을 부정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정신이다. 니체의 아이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솔직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해도 거기에 현혹되지 않는 자유인의 당당함!

 

 

과거나 미래는 단지 우리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면 과거란 존재할 수 없고, 기대하는 능력이 없다면 미래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삶들의 총제라고 할 수 있다.

 

 

얼음이 네모남이란 고착된 자의식을 버려야만, 그래서 그릇의 둥긂을 수용할 수 있을 때에만 소통은 가능할 것이다. 네모남을 버리려면 혹은 버렸다면, 얼음은 반드시 물로 변형되어야 하거나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얼음과 물은 상이한 두가지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가 갖는 양태(mode)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얼음과 물 사이의 변화는 실체의 변화가 아니라 양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얼음과 같은 마음이나 물과 같은 마음은 모두 우리 마음의 두 가지 양태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치열한 자기 수양에 의해 우리는 성인도 될 수 있고, 아니면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어찌 나의 것이 있을 것인가. 나와 나의 소유가 없으므로 그는 나라는 의식도 없고 소유하려는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 ...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라는 생각이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다. - <중론>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불교 고통의 메커니즘과 치료의 방법, 사성제

인간은 고통의 존재라고 선언하는 고의 진리, 고통은 집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집의 진리,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멸의 진리, 집착을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도의 진리

 

집착을 소멸시키는 팔정도 : 바른 견해, 바른 사유, 올바른 말/행동/생활/노력/집중/참선

 

 

우리의 동일성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의 환경과 우리 내면의 습관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습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삶의 환경이 타락했다면 습관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삶의 환경이 더 좋아진 것이라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더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자공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 <논어> '위령공'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수사학적 노력이 실패하면 그 주장은 채택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역린(거꾸로 배열된 비늘)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반성하고 체계화하는 일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타자를 설득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정당화된 생각만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움직이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적 정서, 즉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을 읽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는 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타당한 주장, 즉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움직이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가 그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상대방의 역린을 읽을 수 있는 수사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이다.

- 한비자, <설득의 기술>

 

 

논리적 사유란 독특한 주장을 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대는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논리적 사유의 핵심이 이유나 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는 독특한 주장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시인처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논리적 사유란 타자를 폭력이 아닌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설득하려는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논리적 사유는 타자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그리고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복제에서 빠져 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우리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어떤 사업도 협동조합주의, 상업주의, 그리고 중농주의를 반박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시대에 등장하든 간에, 모더니티는 기존의 믿음을 산산이 부수지 않고서는 그리고 '실재의 결여'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모더니티는 다른 실재들을 발명하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것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오타르가 보았던 것도 바로 이런 산업자본의 생리였다. "새로운' 상품을 내놓아 기존 상품을 낡은 것으로 만들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혹하는 메커니즘을 산업자본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자본이 기존의 가치나 통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은 드디어 '새로운' 혹은 '낡음'과 관련된 시간의식을 얻게 된 셈이다.

"어떤 작품도 일단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곤경에 빠진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 중에 있는 모더니즘이고, 이런 상태는 불변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가 단순한 이미지들로 바뀌는 곳에서는, 이 단순한 이미지들이 현실적 존재가 되고 또한 무자각적인 행동의 효과적인 동인이 된다. 스펙터클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전문 매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경향으로서(세계는 더 이상 직접 파악될 수 없다),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이었다." -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스펙터클 사회의 거주민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의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명 연장의 꿈이 오직 소비의 영역에서, 다시 말해 소비자로 하여금 주머니를 열도록 유혹하는 데 있다. -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스펙터클 사회는 인간으로부터 상품에 대한 시각적 감각을 제외한 일체의 현실 감각을 박탈해버린 거대한 매트릭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서 역설적으로 스펙터클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다. 촉각으로 접할 수 있는, 즉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현실 감각을 키워야 한다. 단지 이것만이 권력과 자본이 내건 집어등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낚시줄을 호수에 드리우지 않으면,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물론 낚시줄을 드리웠다고 해서, 항상 자신이 원하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집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지는 말자. 낚싯줄을 던지지 않는다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불확실한 결과가 충분히 예견될지라도 과감하게 낚싯줄을 던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잡으려고 했던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오만할 일도 아니고, 잡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 일다. 지금 왕충은 해묵은 동양의 인생관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인사대천명!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려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말라!

 

 

대립과 갈등이 심화될 때,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려고 드는 것이 바로 자본과 권력의 생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 자본과 권력이야말로 우리가 사랑과 공존의 지혜를 포기하도록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치'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도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만큼 우리는 비속해졌고, 갈수록 약육강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명 사랑의 길은 엄청난 고행을 예약하는 길이다.

 

 

사랑은 몸으로, 즉 실천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고난과 고통을 기꺼이 대신하려는 마음에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사랑이란 말은 하나의 미사여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언제나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니까 가난한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타협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상과 현실의 타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실이란 급류, 그러니까 모든 것을 휩쓸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압도적인 강물과 같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이런 급류 속에 있는 겁니다. 그럼 이상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나무토막 같은 겁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나무토막을 강바닥에 박고 버텨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급류의 힘이 너무 강해 질질 끌려가기 쉬울 겁니다. 그렇지만 강바닥에 박은 나무토막이 없다면, 우리는 급류의 힘에 저항할 수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한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실재적 과정을 '진리'라고 부른다. 그 충실성이 상황 속에서 생산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충실성의 지지자, 즉 진리 과정의 지지자를 '주체'라고 부른다. 따라서 주체는 결코 과정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 알랭 바디우, <윤리학>

 

이상을 지킨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것을 뒤흔들 만한 사건,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사건을 만났을 때,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충실해야 한다. 주체는 바로 이런 충실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타자의 자유를 긍정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항상 푸르게 유지될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며 나를 만나리라."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너'가 자유로운 결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까지 말이다. - 이성복 시인,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이고,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해위라는 점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의 억지 흉내일 뿐이다. 자유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놀이는 자연의 진행과정과 구분된다. ....  어른이나 책임이 있는 인간들에게 놀이는 도외시해도 무관한 기능이다. 놀이는 여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에 대한 욕구는 즐거움이 놀이하기를 원하는 한에서만 절실해진다.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놀이는 물리적 필요가 도덕적 의무로 부과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는 임무가 전혀 아니다." -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노동보다는 놀이를 통해 인간은 놀라운 집중력과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놀이 개념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가진 창조성의 비밀을 짐작하게 한다.

 

자신의 일에서 놀이가 가진 즐거움과 창조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아이 때 경험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관조적 유물론, 즉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 이해하지 않는 유물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시민 사회 속의 개개인의 관조이다. 낡은 유물론의 입장은 '시민 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장은 '인간적 사회' 또는 '사회적 인간' 이다." -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우리는 마르크스의 '새로운 유물론'이 지닌 '새로움'이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지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환경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환경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통찰했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 몽테뉴, <수상록>

 

참다운 여행은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 두 번째 배움은 여행지에서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가지 차이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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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보리숭어는 맛도 좋고 가성비 좋은 선택이다.
요 근래 삼천포에서 택배 배송으른 제철회를 자주 시켜 먹는 곳은 어종별로 썰어 먹기좋게 필렛형태로 손질해 해동지로 감싸고 진공포장으로 보내준다.

숭어와 함께 온 숭어밤은 쫄깃한 식감이 별미다.

보리숭어와 간재미를 함께 불러 밭미나리 곁들인 간재미 회무침. 막걸리와 찰떡궁합!

4월 한창인 두릅 데쳐서 된장소스와 함께 먹으면 에피타이저로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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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일과 꿈을 찾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인생의 전환점에서는 꼭 되돌아볼 일이다.

 

 

[본문발췌]

 

 

마흔, 지금까지 자신의 꿈과 목표를 다시 점검해보고 꿈과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다면 다시 좌표를 수정해야 한다.

마흔은 맹목적인 성공에만 얽매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를 지닐 수 있는 나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자신이 해야 할 진정한 일, 진정한 꿈, 진정한 열정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중년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마흔 이후의 인생2막을 다시 의욕적인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다. - 에필로그 중

 

 

논리를 통해 기존의 사실을 증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지는 못한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직관이다. - 앙리 푸앵카레

 

직관은 모든 것을 통달했을 때 비로소 나온다.

 

 

멀리 뒤돌아볼수록 더 먼 미래를 볼 수 있다. - 윈스턴 처칠

 

 

"로마의 쇠퇴는 제국의 거대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번영이 쇠퇴의 원리를 무르익게 한 것이다. 정복지역이 확대되면서 파멸의 원인도 증가했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위적인 기둥이 제거되자마자 이 거대한 건축물은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졌다" - 로마제국쇠망사

 

천 년을 이어온 로마 제국의 붕괴 원인은 다름 아닌 거대함이자 번영이요, 개방이자 관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대국을 만든 요인들이 오히려 붕괴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바로 이 순간을 잡아라. 당신이 꿈 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대담함 속에 천재성과 힘과 마술이 있다. 단지, 시도하라.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점차 뜨거워지고 일단 시작하면 일은 완성된다. - 괴테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개별 존재는 보편 존재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 - 하이데거

 

 

기술의 본질은 닦달하는 것이다 -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논구)

 

 

소은을 못 이루고 중은이나 하나니

길이길이 한가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잠시 한가함보다 나을 테지만

내 본시 집 없거늘 더 이상 어디라 가나?

고향에는 이리 좋은 호수와 산도 없는데.. - 소동파

 

 

대은은 조정과 저잣거리에 숨고

소은은 산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네

산속은 너무 쓸쓸하고

조정과 저잣거리는 너무 시끄럽다네

차라리 대은과 소은의 중간에 은거하여

관직에 은거하는 것이 적당하다

관직에서 물러난 듯 그 자리를 차지한 듯

바쁘지도 않고 한가롭지도 않네

마음과 힘을 기울이지도 않고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네

...

오직 이렇게 중은하는 선비는

몸이 복되고 편안하다네

빈궁과 달통, 풍부와 간소

이 네 가지 중간에서 산다네 - 백거이

 

대은(大隱) : 조정과 시가지에 사는 것

중은 : 한직에 있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정신적으로 은거하는 것

소은 : 벼슬을 버리고 산림에 묻혀 은거하는 것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욕망보다 조직을 생각한다. (공동체를 구하는 청권의 윤리)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 계획을 즉시 포기하는 게 바로 승자의 길이다. (백은선사)

 

 

초기에 지속적으로 거부당하는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고통을 견디는 자가 군계일학이 된다.

 

 

####### 문학의 향연

@ 서양 문학

 -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황문수 옮김, 범우사

 - 쇼펜하우어 문장론,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지훈

 -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 빅토르 위고 지음, 정장진 옮김, 작가정신

 - 참회록,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영범 옮김, 지만지

 - 아틀라스 1~5, 에인 랜드 지음, 정명진/신예리/조은묵 옮김, 민음사

 - 무쇠 한스 이야기, 로버트 블라이, 이재희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들

 - 리어왕, 세익스피어 지음

 - 카라마초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대우 옮김, 열린책들

 - 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지음, 강미숙 옮김, 창비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레베카 1,2 ,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동서문화사

 - 아미엘의 일기,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지음, 김욱 옮김, 바움

 - 나는 걷는다 1~3, 베르베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

 - 나체즈 족,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지음, 문미영 옮김, 지만지

 - 괴테 시와 진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환덕 옮김, 종합출판범우

 -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민음사

 -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청미래

 -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현대지성사

 -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지음, 김난령 옮김, 시공주니어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이덕형 롬김, 문예출판사 (0)

 -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 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 블레이크 시선,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서강목 옮김, 지만지

 

@ 동양 문학

 - 삼국지, 나광중 지음, 이문열 옮김, 민음사

 - 소동파 시선, 소동파 지음, 류종목 옮김, 지만지

 - 백거이 한적시선, 백거이 지음, 김경동 이의강 외 역주, 성균관대출판부

 -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

 - 자를 테면 자르시오, 한유 지음, 고광민 옮김, 태학사

 - 한유문집 1, 한유 , 이주해 옮김, 문학과지성사

 - 내가 사랑하는 삶, 장조, 주석수 지음, 정민 옮김, 태학사

 - 이하 시선, 이하 지음, 이규일 옮김, 지만지

 - 임옥인 소설 선집, 임옥인 지음, 현대문학

 - 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 정약용 지음, 창비

 -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지음, 나남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지음, 문학과지성사

 - 혼불 1~10, 최명희 지음, 매안출판사

 -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이순원 지음, 실천문학사

 - 선택, 이문역 지음, 민음사

 -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정민 지음, 태학사

 - 김득신의 문학론과 문학세계, 신범식, 박문사

 - 을병연행록 1, 2, 홍대용 지음, 정훈식 옮김, 경진

 

######### 역사의 향연

@ 서양 역사

 - 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 페르시아 전쟁사, 헤로도토스 지음, 우위편 편역, 강은영 옮김, 시그마북스

 - 증여론, 마르셀 모스, 이상률 옮김, 류정아 해제, 한길사

 -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강석승 옮김, 동서문화사

 -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조지프 A. 아미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2006

 -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허버트 허시 지음, 강성현 옮김, 책세상

 - 선묵의 역사,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지음, 김복미 옮김, 서해문집

 - 제국의 미래,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 동양 역사

 - 한서열전, 반고 지음, 안대희 편역, 까치

 - 사기,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 철학의 향연

@ 서양 철학

 -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홍석영 옮김, 풀빛

 - 참회록,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원창엽 옮김, 홍신문화사

 -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쇼펜하우어 지음, 함현규 옮김, 빛과향기

 -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

 - 인간이란 무엇인가, 프랭클 지음, 김재현 역, 서문당

 - 고백록 1, 2, 장 자크 루소 지음, 이용철 옮김, 나난출판

 -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재준 옮김, 책세상

 -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아르 지음, 문예출판사

 -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민음사

 -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매클루언 지음, 태런스 고든 편역, 김상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 꿀벌의 우화,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문예출판사

 - 존재와 무,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소성 옮김, 동서문화사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화운수 옮김, 문예출판사

 

@ 동양 철학

 - 정관정요,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0)

 - 후흑학, 리 쭝우 지음, 신동준 옮김, 인간사랑

 - 주술의 사상, 시라카와 시즈카, 우메하라 다케시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 논어,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 주역계사 강의, 남회근, 신원봉 옮김, 부키

 - 자성록 언행록 성학십도, 이황 지음, 고산 옮김, 동서문화사

 - 대학 / 중용, 주희 엮음, 김미영 옮김, 홍익출판사

 - 도덕경, 노자 지음, 오강남 옮김, 현암사

 - 주역 강의, 서대원 지음, 을유문화사

 - 맹자, 맹자 지음,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 근현대 교양의 향연

@ 인문 일반

 - 위대한 콤플렉스, 이규동 지음, 하나의학사

 - 여성의 상태, 나탈리 에니크 지음, 서민원 옮김, 동문선

 -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김영사

 -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카키스 지음, 안정호 옮김, 열린책들

 

@ 인문심리

 - 직관의 두 얼굴, 데이비드 마이어스 지음, 이주영 옮김, 궁리

 -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대니얼 레빈슨 지음, 김애순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대니얼 레빈슨 지음, 김애순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 존재의 심리학, 아브라함 H. 매슬로 지음, 정태연, 노현정 옮김, 문예출판사

 - 통찰과 포용,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송기동 옮김, 북스넛

 - 정판교의 바보경, 정판교 지음, 스성 편저, 한정은 옮김, 파라북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21세기북스

 - 승자의 언어, 올프 미카엘 하얀 지음, 김시형 옮김, 흐노스미디어

 

@ 경제 경영

 - 10년 후 미래, 대니얼 앨트먼 지음, 고영태 옮김, 청림

 -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민음사

 - 로스차일드, 데릭 윌슨 지음, 이희영, 신상선 옮김, 동서문화사

 - 부유의 노예, 로버트 라이시 지음, 오성호 옮김, 김영사

 - 와이어드, 데브 팻나이크 지음, 주철범 옮김, 이상미디어

 - 리틀 빅 씽, 톰 피터스 지음, 최은수, 황미리 공역, 더난출판사

 

@ 자기 계발

 - 나이 멘토 링컨, 데일 카네기 지음, 이인석 옮김, 리베로

 -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요소 아버지, 스테판 폴더 지음, 송종용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들

 -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 예담

 -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청림2001

 -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 MR. 리바이, 카챠 두벡 지음, 김현정 옮김,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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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전문가는 같은 현상, 일을 보더라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일반인들과 다른 해석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본문발췌]

 

 

이겼을 때 오만하지 말고 졌을 때 기죽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함을 배웠다. 내 머리에 의지하지 말고 동료나 후배들의 머리에 의지해야만 생업을 이어갈 수 있음을 배웠다. 옳은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언가를 선택한 후 옳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인생임을 배웠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함을 배웠다. - 박웅현

 

 

디자이너에게 창작은 시각적인 것을 만드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 됩니다. 보기 좋고 수려한 것을 만들지만, 의미를 담아야 하고 맥락이 풍부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시각적인 것을 만든다고 할 때, 광고는 내용과 의미를 만듭니다. 서로 다른 분야와 영역은 다르지만, 광고의 창작과 디자인의 창작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여기에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바일 것입니다. - 오영식

 

 

단지 공부를 잘했다, 못했다는 그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것에 흥미를 느꼈는지가 더 큰 영향을 준다.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르게 기억하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과 흥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처한 유년 시절의 환경,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성장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은 그의 미래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저는 '필연'이라는 말보다 '우연'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요. 어떤 직업을 갖게 될 때 필연적이라기보다 우연적인 경우도 꽤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요. 지금의 내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나의 의지를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는 태도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만큼, 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의지를 발휘해 자시느이 재능을 펼친다면 누구나 두 분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신

 

 

광고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진실이다. - 윌리엄 번벅

 

 

심미적인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름다움이란 느낌의 언어이고 정보는 많고 시간은 없는 사회에서는 정보보다 느낌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 마티 뉴마이어

 

 

"창의력이란 내가 잘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 스티브 잡스

 

 

나다움이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과 성찰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비범한 걸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이 섞여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 박웅현

 

 

관찰, 평범한 것에서 비범함을 보는 능력

 

 

우리는 걷는 동안 전화를 하고, 저녁 반찬을 고민하고, 옆 사람 얘기를 듣고, 머릿속에서 할 일들을 점검하다가 세상이 마련해둔 볼거리들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풍경 곳곳에 숨겨진 놀라운 요소들을 발견할 가능성을 놓치는 것이다.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똑같은 걸 보면서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이해하는 것도 곧 능력이지요. 특정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결코 보지 못하는 게 보이고, 그런 이해로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선 해결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컬렉션이든 독서든, 아니면 경험이든, 이 세계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은 반드시 필요한 일로 보입니다. - 김신

 

 

창의적인 업적을 남기기 위해 신동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자신의 주변에 대한 범상치 않은 호기심은 필수적이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광고는 근본적으로 설득이다. 설득이 되게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 윌리엄 번벅

 

 

디자인은 창의적 표현과 이성적 목적의 유용한 조합이다. - 스티븐 베일리

 

 

예술은 표현이고, 디자인은 배려라고 믿거든요. 모든 디자인은 배려입니다. - 박웅현

 

배려는 곧 어떤 목적에 부응해야 하는 광고와 디자인의 숙명처럼 느껴져요. 반면에 예술은, 특히 현대미술은 특별한 목적을 갖기보다는 순수한 자기표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광고와 디자인에서 필요로 하는 예술성은 작가의 예술과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하겠지요. 자신의 독창성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먼저 고려하는 태도가 확실히 그 둘을 다른 장르로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 김신

 

 

디자이너의 역할은 정확한 진단(문제 분석)과 적절한 처방(디자인 제안)을 책임지는 의사와 비슷하다. - 노먼 포터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 내가 하고 싶지 않다면 남에게도 시켜서다는 안 된다. - 《논어》 「위령공」편

 

 

화이부동, 똑같지는 않지만 조화롭게 사는 것.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화합하기는 하나 남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고, 소인은 남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 같아 보이지만 화합하지는 못한다. - 논어 자로편 제23장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개인적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사람은 생물학적 성에 따라 분류되어 있어도 사회적 성 역할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사회적 역할에 따라 개인의 역량이나 가능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한다고 봐요. - 오영식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 곽재구

 

 

직장인이 받는 보수 중에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비용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재능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 케미를 맞추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연륜과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 분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 김신

 

 

"제아무리 고상한 창조적 충동의 실행으로서 시작된 경우라도 영락없이 지루하게 단조로워지고, 같은 것을 지겹게 되풀이하는 회색 노고가 되며, 예측하지 못한 것 또는 인간이 안으로부터 행하는 게 아닌 밖으로부터 낯설게 들이닥치는 것의 무게를 받아내야 한다." - 카를 라너

 

 

창의성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우연하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문화적인 배경 사이의 상호관계에의해 형성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 - 박웅현

 

 

재능과 교양,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사물의 본질에 이르지 못한다. -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

 

 

오늘을 진정성 있게 살았다면, 내일 후회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 주제 사라마구

 

 

운은 누구한테나 와요. 누구한테나 오는데 준비된 사람은 낚아챌 수가 있고요.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운인지도 모르고 흘러가버리죠. 운이 없는 인생은 없을 거예요. - 박웅현

 

'카이로스'라는 기회의 신이 있는데,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왔을 때 잡아야 하는데, 가고 나면 잡을 수가 없다는 거죠. - 오영식 

 

 

진정성이라는 건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한다. 사회적 가치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행동은 반대일 수 있는데, 과거와 달리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게 금방 탄로가 난다는 거지요. 사회가 투명해져서 더욱 진정성 있는 태도와 행동이 빛을 발할 것이라는 말씀이 요즘 뉴스를 봤을 때 정말 와닿습니다. 그리고 생계에 최선을 다할 때 진정성이 발휘된다는 말씀 역시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 김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밀집 현상이 생기고 환경적인 문제도 뒤따르고, 이런 것들이 다 맞물려 있는거죠. 그래서 저는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자본주의를 인간이 멈추게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이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해석이 되었더라고요. 돌아보면 이렇게 급격하게 망가지기 시작한 게 40~50년 전부터인 것 같아요. 사회주의는 힘을 잃었고,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욕망을 점점 키우면서 여기까지 굴러왔는데, 그걸 멈추게 하려고 자연이 브레이크를 건 거죠. 생각해봤더니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내년 목표를 세울 때 단 한 번도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몇 퍼센트로 잡을 것이냐 하는 것만 다를 뿐, 매년 성장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당연했거든요. - 박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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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를 살고 있지만 속도 보다는 넓은 시야와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행동은 다소 줄이되 반대로 생각은 늘려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속도를 줄여야 한다. 또한 단순한 행동과 발전을 혼동해서는 안 되며,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결정을 단숨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크린에이저의 독특한 10가지 사고법

  1. 스크리에이저는 멀티태스킹, 병렬처리, 그리고 개인화된 경험을 선호하고, 비선형적 방식으로 문자를 읽으며, 문자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한다.
  2.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보관된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필요한 정보는 구글에서 얻는다.
  3. 정보를 창조하고 개인화하고 배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한다.
  4.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약속을 피하기 위해 종종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
  5. 가상화virtualization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없애주고 있으며, 사람보다 기계를 다루는 것을 더 선호하는 세대를 만들어낸다.
  6. 리셋 세대reset generation는 뭔가 잘못되더라도 항상 버튼만 누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디지털 세대는 고도로 감각적인sensory-laden 환경,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지속적인 칭찬과 보상을 요구한다.
  8. 스크린에이저는 '현재'를 살고 있으며, 그들의 윗 세대보다 글자와 숫자 개념은 약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9. 스크린에이저는 집중력과 이해력은 낮더라도 다양한 정보 흐름에 고도로 민감하다.
  10. 스크린에이저는 두뇌 회전이 빠른 반면 종종 포괄적인 맥락과 문화를 무시한다.

 

 

머리는 채워야 할 그릇이 아니라 태워야 할 불이다. - 플루타르크

 

 

직관적 사고는 성스러운 선물이며, 이성적 사고는 성실한 종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늘날 우리는 성실한 종을 존중하고 성스러운 선물은 잊어버린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시험에 통과하는 방법만 가르치고 일반적인 사고법은 가르치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다.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새로운 발견, 통찰, 발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상 누구나 옳은 일이 아닌 잘못된 일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속도를 강요하는 트렌드가 조성되고 디지털 시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경우, 어린아이 같은 실험과 순진한 사고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지나치게 전문화되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때때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새롭거나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의 목적은 경이로움과 자연스런 호기심을 불어넣고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것은 또한 인간적인 사고 능력을 개발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다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육 속도를 약간 늦추고 본능적 효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사실'은 더 적어도 되지만 맥락은 더 많아야 한다. 그리고 단기적인 측정 방법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해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들은 시간이나 실용적 사고, 또한 반대 의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꿈꿔야 한다. 우리가 이런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빠르게 대답을 찾을 수는 있지만 깊고 의미 있는 질문은 하지 못하는 세대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불굴의 투지, 시간과 더불어 지속적인 호기심은 상상력과 독창성의 핵심 요소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의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10가지 방법

  1.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놀이보다는 자유놀이에 집중하라.
  2. 제한된 범위 내에서 측정된 결과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라.
  3. 교사와 책 대신 정보통신 기술에 집착하는 건 금물이다.
  4. 기업들이 요구하는 독창적이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를 기르기위해 창조적이면서 합리적인 주제를 강조하라.
  5.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숙제를 줄이는 대신 상상력이 깃든 자유놀이를 하라.
  6. 바쁜 부모들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7. 부모들에게 더 많은 한도르르 정하고 가상의 교류를 줄이도록 권장하라.
  8. 아이들을 집에만 가둬놓은 채 육체적인 활동을 제한하는 건광과 안전 강박증을 버려라.
  9. 모든 읽기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미디어에 신경 써라.
  10. 휴대전화를 포함한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는 정보와 사고방식이 부모와 교사가 주는 교훈과 가치를 희석시키지 못하게 막아라.

 

장기적 사고 개선 전문 사이트 : Longbets.com , EarthWeb.com 

 

 

인간의 사고와 기계와 다른 점 10가지

  1. 인간의 지능은 경험이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감각적 인식과 그에 대한 반응을 기초로 한다.
  2. 기계는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기계는 자각 능력이 없다
  3. 인간은 일반적인 지능을 소유하지만 기계는 특정 업무를 하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4. 기계는 진짜 감각이 부족하다. 기계는 날씨가 춥다는 걸 '알지만' 추위를 '느낄 수는' 없다.
  5. 기계는 감정이나 도덕성이 없으며, 사랑이나 기쁨이나 증오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6. 디지털 기기는 직관이 없고 창조나 상상도 못한다.
  7. 사람들은 현재 정신적 프라이버시를 갖고 있지만 기계의 작동방식은 투명하다.
  8. 인간의 두뇌로는 아직까지 불가능하지만 기계로는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다.
  9. 기계는 무의식적 사고를 못하지만, 인간은 의식적 사고보다 무의식적 사고를 토대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10. 지난 수천 년 동안 진화해온 인간의 두뇌는 고도로 복원력이 강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6세가 되면 두뇌 무게는 성인 두뇌 무게의 95퍼센트까지 자라며, 22세에서 27세까지 계속 발달하다가 이후에는 더디게나마 쇠퇴하기 시작한다. 일반 상식과 전문지식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지만, 독창성은 20대에 이르렀을 때 정점에 달하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생각(지혜가 아니라)을 원한다면 30세 미만의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생각이나 신선한 생각 형성에 양은 곧 질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가능한 한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정보와 경험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발견은 준비된 생각을 만나는 우연한 사고 - 알베르트 센트죄르지

관찰력, 호기심과 우연은 독창적 사고, 새로운 발견의 중요 요소이다.

 

 

수렴적 사고, 분명하게 연결된 논리적 문제들에 맞는 한 가지 논리적이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 내는 것. 직선적 사고의 성향, 기존에 알려진 대답이나 해결책과 다시 연결됨. 정담과 오답이 분명한 세계에서 선호됨

 

확산적 사고, 새롭거나 모호하거나 허술하게 연결된 문제들에 맞는 다양하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사고. 깊은 사고로서 독창성, 시스템적 사고, 유연성, 발명, 그리고 생각이 혼재된 세계에서 선호

 

 

미래에는 데이터를 습득, 소화, 반복할 수 있는 논리적 인간이 아닌 변칙을 간파하고, 독창적 질문을 던지고, 신선한 생각을 꿈꿀 수 있는 깊은 사상가와 혁신적 조직의 몫이 될 것이다. 기계가 인간에 버금가는 천재성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형식적 논리 규정이나 역사적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일에는 매우 똑똑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논리와 분석, 전문 지식이 필요할 때 비용이 덜 드는 국가나 기게들에게 아웃소싱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창조성이라 부르는 것의 기본이 되는 신경 처리 과정은 합리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서 두뇌가 어떻게 창조성을 생성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이 합리적인 과정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창조성은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올리버색스 (뮤지코필리아)

 

 

음악은 예술과 과학, 논리와 감정, 물리학과 심리학의 놀라운 조합이다 - 필립 볼(음악적 본능)

 

 

생각을 창조하는 10가지 방법

  1. 기억에 감사한다. 모든 경험을 기억한 다음에 잠재의식적으로 기억들을 함께 연결해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한다.
  2. 정신적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라. 두뇌는 새로운 생각을 거부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에 쉬거나, 기다리거나, 판단을 유보하거나,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3. 유머는 관습적 사고를 깨고 두뇌가 과거 습관에 얽매이지 않게 막아 준다.
  4.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혼합해서 해야 한다. 우뇌와 좌뇌는 각각 '가정'과 '현실'에 관련된 기능을 한다.
  5. 실수를 저질러라. 계속해서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수를 통해 뜻밖의 발견을 한다.
  6. 잠을 충분히 자라. 잠을 잘 때 감정, 기억, 행동, 문제를 처리하며 생각이 형성된다.
  7. 백일몽을 꿔라.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일부러 비생산적이 돼라.
  8. 간단한 문제를 풀려면 집다느이 지혜에 의존하되, 고도로 독창적인 생각을 얻으려면 개인의 창의력에 의존해라.
  9. 음악은 풍부한 감정과 기억을 갖게 해주며, 연령에 상관없이 두뇌가 새로운 생각을 개발할 수 있게 도와준다.
  10. 작심하고 연습하면 어떤 기술이라도 숙달할 수 있지만, 천재성은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느린 것은 아름답다. - 칼 오너리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때 선호하는 10가지 방법

  1. 마음을 비워라. 깊은 사고의 핵심은 정돈된 마음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없애버려야 한다.
  2. 물을 휘저으며 있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효과를 희석시키는 데 유용하다.
  3. 걷기나 뛰기 또는 다양한 형태의 운송수단(특히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기차와 비행기)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도 좋다.
  4. 전망 좋은 (멀리 내다보이는) 방을 구하라. 높은 천장과 넓은 시야는 사고를 자극한다.
  5. 실내에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낼 경우 시야가 좁아질 수 있으니 가끔 밖으로 나가라. 정원 손질은 특히 좋은 스크린 문화 해독제다.
  6. 마음을 편안히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 비몽사몽 중에 특히 생산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하게 된다.
  7. 중요한 일을 하거나 깊은 사고를 원한다면 스크린이 아닌 종이를 사용하라.
  8.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어라(나는 홍콩과 런던 사이를 오가는 VS201편 2A 좌석을 좋아한다)
  9. 점심식사를 하면서 좋은 포도주 한 병을 마셔라.
  10. 다른 사람, 특히 모르는 사람과 자주 대화를 나눠라. 대화는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다.

 

 

대기업에서는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깊은 사고를 하는 하는 사람은 기업 입장에서 지나치게 파괴적이기 때문에 인사과에 의해 이미 내쳐진 상태라는 것이다. 정말 사고다운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일하거나 기업인일 경우 조그만 신생기업에서 일한다. 기업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

 

 

사물과 환경을 이용해서 사고를 심화시키는 10가지 방법

  1. 조망 효과 : 외부 공간이건 산 정상이건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건 세상을 조망해서 바라보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2. 일이 깊은 사고를 하는 데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운동이나 산책이나 문학 같은 외부의 영향은 일하면서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3. 바다나 정원 같은 자연환경은 깊이 있는 사고를 하도록 자극한다. 그런 환경은 우리를 더 느긋하게 만들며, 우리에게 더 큰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4. 벽을 제거하고, 거리를 좁히고, 칸막이를 없애는 등과 같은 사무실 레이아웃 변화는 종종 우연이나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만남, 혼란스런 책상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다.
  5. 재택근무를 하면 효율적이고 사무실에 필요한 종이와 공간을 줄여주지만 동시에 고립감을 키우고 사람들과 생각 형성에 필요한 우연한 만남이 줄어들 수 있다.
  6. 밝게 색칠한 벽과 유색 볼펜들은 생각을 자극하기보다는 유치한 문화를 드러낼지 모른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문화'는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새로운 생각을 할 시간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7. 짧은 만남과 우연은 깊은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한쪽으로만 무리하게 집중할 경우 다른 쪽에서 오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
  8. 가정, 정원, 현관, 혹은 식탁에서의 대화는 깊은 사고를 하도록 자극하지만, 디지털 기기의 사용 확대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9. 집도 직장도 아닌 제 3의 장소는 그것이 비록 불시에 기기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해도 일상적 환경을 벗어나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10. 깊게 생각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겉보기에 일상적이거나 반복적인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 즉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장소로 가거나, 지금까지 했던 일과 다른 뭔가를 해봐라.

 

 

깊은 사고에 도움이 되는 10가지 방법

  1.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즐기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 버트런트 러셀"
    생각이 가져다줄 영향력(가치)와 난이도(실용성)에 따라 생각들을 분류하는 매트릭스. 가로축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영향의 정도(맨 왼쪽이 가장 높음), 세로축은 위에서 아래로 실용성이나 난이도 또는 실행 비용(맨 위쪽이 가장 높음) 
  2. 지적으로 난잡해져라. 왼쪽으로 생각하고 오른쪽으로 생각하고 낮게 생각하고 높게 생각하라.
    오, 생각해봐야 생각해낼 수 있는 게 생각이다. - 닥터 수스
  3. 생각 일기를 적어라.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건 나쁜 생각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 이자벨 콜게이트
  4. 개방적 사고를 유지하라.
    모든 산업에는 무한한 기회가 존재한다. 개방적 사고를 하는 곳에는 항상 선구자가 등장할 것이다. - 찰스 케터링
  5. 욕실 공간을 활용하라
  6. 침착하게 굴어라.
    가장 강력한 두 전사는 인내와 시간이다 - 레오 톨스토이
  7. 억제하지 마라.
    넥타이는 명료한 사고를 교살한다 - 린위탕
  8. 실패를 수용하라.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효과가 없었던 1만 가지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 토머스 에디슨
  9. 문제를 공유하라.
    모든 눈이 많으면 모든 버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에릭 레이먼드
  10. 일하러 가지 마라.
    뛰어난 상상력은 흐르지도 얼지도 않는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예리하면서도 빗나간 생각이 위대한 가치를 지닌 진실을 만들 수 있는 알찬 질문을 유도할지 모른다. - 아이작 아시모프

 

 

인생의 비밀은 한평생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당신이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헨리 무어

 

 

사람들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직관을 무시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직관은 실제로 우리의 잠재적 사고의 확장이다. 갑자기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직관을 활용하면 나도 모르게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곳에 가 있을 수 있다. 직관을 활용하라.

 

 

깊은 사고는 변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깊은 사고는 개인에게 만족을 주고 스스로를 인간답게 느끼도록 해준다.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깊은 사고다.

 

 

우리는 행동은 줄이되 생각은 늘려야 한다.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생각보다는 직관적이고 창조적 생각에 더 많은 가치를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이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에 맞서 싸워라.

사용의 편리함 어떤 창조적 분야에서나 맞서 싸워야 할 질병이다 - 화이트스트라입스 잭 화이트

 

 

컴퓨터의 본래 개발 목적은 대량의 정보를 처리해서 인간이 깊은 사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대체하거나 생각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이메일과 휴대전화는 실제 대화와 접촉을 풍부하게 해주는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우리는 모든 대화나 접촉을 휴대전화로 대체하고 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깊은 사고를 할수 있다. 오직 사람만이 호기심과 상상력을 갖고 있고, 똑똑한 기계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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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 경험에 대한 조언, 예측에 집착한다.

이런 준비에 너무 치중하면 새로운 것과의 만남, 신선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길을 잃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고 했다. 길을 잃음으로 고통과 불편을 겪을 수 있으나 새로운 변화와 만남이 시작하기도 한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고요 속에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 놓으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며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본문발췌]

 

 

정보가 부족해서 타락할 일은 없다. 이해가 모자라서 타락할 뿐이다. ... 결핍된 것은 믿음이 아닌 경이에의 의지다. ... 신비의 존재에 대한 응답의 하나는 외경이다. - 아브라함 헤셀

우리 너머의 아름다움에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삶에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 속에서 우리의 길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들음을 통해 우리보다 큰 존재들과의 관계와 경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보다 큰 존재와의 우정은 근원적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이 존재의 작업work of being이다. 경험과 존재 사이의 우정은 삶에 필요한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은 인간됨을 위한 작업work of being human이다. 타인들과의 우정은 보살핌의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작업work of love이다. 

 

 

나를 포함한 생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이 생명들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 그물망 속에서 우리와 생명들과의 우정을 다지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삶이 충만해지는 길이다.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우정을 향한 첫걸음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들어보기를. 깊은 들음에 전념해보기를 바란다.

 

 

숨을 들이쉬는 순간마다 세계를 받아들여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일이 가능할까? 숨을 내쉬는 순간마다 우리를 얽매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호흡을 통해 자신을 채우고 비우면서 두 호흡이 주는 선물을 찾고 있는가? 이것이 아마도 존재의 작업일 것이다.

 

 

요즘 집 근처 카페에 가면, 나를 아는 젊은 점원들이 주차장에서 내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마실 핫초콜릿을 만든다. 사람들의 마실 것을 꿰고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친절한 형태의 들음이다. 들음을 위해 우리를 둘러싼 존재들의 필요를 존중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상 속의 위엄이다.

 

 

그냥 걸음을 멈추고 하루 일과를 계속해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새의 노래를 따라 한두 블록 거리를 헤매도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 새를 따라갈 때 또 다른 삶을 발견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실제로 그것을 얻는다. 이처럼 여정의 모든 지점이 그 자체로 목적지다. 어느 하나의 지점이 다른 지점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무엇을 따르고 어디서 멈춰야 할지는 오로지 가슴만이 알고 있다.

 

 

직관을 통한 들음이나 믿음의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하지만 "아니요"라고 하기보다 "네"라고 답할 수 있는 차분한 용기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용기를 얻으려면, 미래가 우리에게 닿을 수 있도록 우리의 견해와 정체성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시각들이 우리에게 닿아 우리를 넓고 깊게 재정비해줄 수 있도록 꽉 움켜쥐고 있던 세계관을 느슨하게 풀어주어야 한다. 삶을 받아들이는 가장 용감한 방법은 "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력에 영향받는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해도 중력은 그대로이다. 모든 상황 저변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중력처럼 변하는 않는 의미를 경험한다. 내면의 소음을 잠재우고 마음을 여는 것도 깊은 들음의 방법이다. 살아내려면 반드시 이렇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으로만 존재를 제한하면 우리 모두를 연결 짓는 신비로운 방식을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세계를 축소시킨 탓에 대대로 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개의 부족과 국가들은 저마다 다른 부족과 국가를 제압했다. 그들만의 제한적인 시각을 지키려했기 때문이다. 들음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평화는 들음에서 시작된다.

 

 

들을 줄 아는 폭넓은 삶에 겸허히 다가가려면 함께할 때 더욱 많이 들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눈을 뜨고 개개인이 아는 것과 궁금해하는 것들에 열성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생명과 서로에 대한 이런 관심은 존중의 토대가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아직 모르는 것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 똑똑함이나 어리석음과는 관계가 없음을 깨달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사슴이 숲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판단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뒤로 물러나게 한다. 삶의 한가운데서 부어오른 손을 펴고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더욱 깊이 듣게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따. 삶의 수많은 가능성들은 우리가 이렇게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멈춰야 침묵의 중심점에서 그 가능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중심점에 이르면, 태어나면서부터 받아온 지루한 가르침들에 억눌리지 않고 삶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받음과 취함 -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과 가져오는 것 - 의 차이는 아주 중요하다. 누군가 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확실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취하는 데 익숙해져 쌓아두기만 하면, 들음을 멈추게 된다. 둘 사이의 불균형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킨다. 우리는 언제나 받음과 취함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저 취하고 습득하기만 하지 말고 받음의 역량을 키워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력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장고'보다는 '도관導管'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열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받음의 축복이다. "그대는 하늘을 향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는가?"라는 노자의 물음은 자신이 만들어낸 거처로 세계를 규정하지 말고 별빛을 받아들이라는 권유다. 머리와 가슴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생명의 흐름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햇살과 비, 공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일이다.

 

 

어느 하나의 시각만으로 전체 세계를 볼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펼쳐지는 실재를 향해 조금씩 이해를 쌓아갈 뿐이다.

 

 

길을 잃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길을 잃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 칼 융의 말처럼 에고가 내 집의 주인이 아님을 자각하는 순간 - 여행은 시작된다." - 헬렌 루크

 

지도를 잃어버리는 순간 비로소 길을 알게 된다. 대지의 재현물이 아닌 대지 자체를 직접 밟으면서 스스로 겸허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겸허해지면 열심히 세운 하찮은 계획을 잃어버려도, 관심의 진정한 힘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해안을 따라가며 그리워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대신 사랑 자체의 붉은 물결 속에서 헤엄치게 된다.

 

답이라고 여기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여행은 진실로 시작된다. 상실을 겪어내고 자신의 통제력을 잃어본 사람은 누구나 모든 해답 뒤에 더욱 커다란 질문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든 도달 너머에 예상치 못한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적인 차원에서 볼 때, 길을 잃는 것은 필요한 혼란일 수 있다. 안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모든 미지의 것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세계 속으로 밀려들어 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을 잃는 것은 더욱 깊은 길로 나아가는 서막과 같다.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름을 인정하고 나면 변화의 기회가 무르익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로소 구체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자신의 맥락이 의미를 잃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자신이 야심차게 짜놓은 구역 안에 스스로 갇혀버렸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지도를 버리고 발에 와닿는 땅의 감촉과 두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시 직접 체험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험하다 보면, 정해진 양식을 부수고 경이감을 다시 삶의 인도자로 삼을 수 있다.

 

어떻게 계획을 세워도, 우리 앞에 의무처럼 던져진 목적을 향해 터널을 뚫고 나아가다 보면 삶의 많은 것들이 주는 감동을 놓치게 된다.

 

 

현자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스펀지 같은 사람, 깔데기 같은 사람, 여과기 같은 사람, 체 같은 사람이다. '스펀지' 유형은 모든 것을 흡수하고, '깔때기'는 한쪽으로 받아들여 다른쪽으로 내보낸다. '여과기' 유형은 와인을 내보내고 찌꺼기만 간직한다. '체' 유형은 거친 겨를 제거하고 고운 가루만 모은다. - <피르케이 아보트> 5장 18절에서

 

 

할 말만 하는 간결함이 바로 고대인들이 철학을 하는 태도 -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중 소크라테스의 말 

 

 

지나치게 강력한 중력이 억압적이고 치명적인 결고를 불러오듯 중력의 소멸도 우리를 자유롭게 해체시킬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무게를 이겨내는 방법은 세상 속에 머무는 것뿐이다. 빛과 어둠의 유대 속에서도 또 다른 역설이 작용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너무 절실하게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어둠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그림자가 없으면 거리를 지각할 수도 없다. 거리를 지각하지 못하면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것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길을 찾아갈 때는 어둠을 피해가지 말고, 어둠과 함께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순수함을 능가할 수 없다. 이런 깨달음은 울를 겸허하게 만든다.

 

 

깊은 들음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넘어서 어떤 순간이든 드러난 것을 몸과 존재,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수전 맥헨리

 

 

깊이 들으려면 세상과의 내적인 논쟁을 내려놓아야 한다. 건전한 들음을 위해서는 먼저 추측부터 지워버려야 한다. 사실 자신의 완고한 확신을 넘어 조금이라도 바깥세상을 보려면, 준비해 두었던 모든 결론들을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속으로 상대의 말을 자르거나, 세상의 반박이나 변론에 맞서기 위해서 내 견해의 저장고를 뒤지지 않도록 마음을 닦아야 한다. 

 

 

들음은 반응이나 반작용이 아니라, 연못이 작은 물줄기들로 채워지듯 열린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들음의 깊이는 듣는 수단에 따라 달라진다. 머리로 들으면 삶을 더욱 많이 이해하게 되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삶을 더욱 많이 느낀다. 온 존재와 영혼으로 들으면 스스로 변화해서 삶 자체와 어우러진다. 삶은 순간들 속에서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순간들을 마주하고 귀 기울이는 방식에 따라 변화의 길이 다르게 펼쳐진다. 

 

 

너무 여러 가지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강을 품고 있던 흙무더기가 강물에 씻겨 자유로워지듯, 잃음은 떠남이자 내려놓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경험의 강물은 삶의 작은 그릇을 문질러 닦아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나 일이 명확하지 않을 때, 전후좌우 위와 아래, 옳고 그름이 애매할 때 불편해한다. 그러나 깊은 진실이 다가오는 데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 일은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름의 긴장을 견뎌내는 것과 관련 있으며, 삶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성급하게 명명하거나 정의 내리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아주 중요하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진실에 다가가려면 개인적인 견해나 믿음을 섣부르게 갖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전체성이 우리를 에워싸고 역설적인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시간을 넉넉히 둘 줄도 알아야 한다.

 

 

만나는 모든 것들에 공감하면 우리 스스로 더욱 많이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존재들이 보고 느끼는 것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을 연습하는 짓은 그만두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실천하기 어렵고,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으로 경험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모든 것을 준비한다. 생존에는 매우 도움이 되지만 이런 준비에 너무 치중하면 어떤 새로운 것도 접촉하지 못한다. 언제나 다가올 일들을 예측하다 보면 미리 준비한 반응에 의존하고 만다. 예측이 지나치면 맞기도 전에 "아야"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면 결국 신선한 충격을 경험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지나친 경계로 인해 마음의 그물망과 정신의 골키퍼가 생겨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가오던 모든 것들이 방향을 바꿔버린다.

 

 

사실 살아 있음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의 본래 색깔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까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전체와의 관계 속에 머물러 우리의 영혼을 생기 있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계절의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절이다. 행복이든 고통에 시달리든 우리는 언제나 세상의 폭풍우를 물리치고 모든 것을 관통하여 흐르는 음악을 듣는다. 경험은 호된 스승과 같다. 생명력의 예기치 못한 재발견 속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 이 생명력은 우리의 재능과 장애물 사이의 마찰에서 생겨난다. 깊은 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할수록 삶의 모든 요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이런 대화는 피어남으로 어둠을 풀고, 사랑으로 외로움을 푸는 경외의 작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경험으로 인해 삶의 그물망 속에 계속 엉켜들어도, 모든 것과의 관계를 풀고 우리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작업에는 언제나 온 마음을 바쳐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분리와 통합을 경험한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것이 불러오는 상황도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언제나 진심을 다해야 한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들어주는 것이다. - 폴 틸리히

 

 

배려가 친밀감을 낳는다는 것은 삶의 이치다. 타인을 도우면 모든 것의 가슴에 닿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런 부는 오로지 커지기만 한다. 물론 우리가 도움을 준 이들이 떠나거나 죽어버릴 수도 있다. 혹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해서 타인들의 사랑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친절이 낳은 친밀감은 몸속에서 빛으로 변해, 결국엔 우리 마음의 등불이 된다.

 

 

현대의 문화는 우리에게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통도 없고 상실로부터도 자유로운 삶을 고집스럽게 신성시하면, 결국은 주어진 고통과 상실에 난타당하고 삶의 목적도 잃어버리기 쉽다. 아무리 원해도 언제나 확장된 상태로 숨을 들이쉬기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다. 확장과 수축, 들숨과 날숨을 모두 경험해야 살 수 있다. 마음, 정신, 영혼도 모든 경험에 열리고 닫혀봐야, 경험이 우리를 관통할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 상실, 장애물은 우리를 열었다 닫아주는 역동적인 삶의 힘이다. 이것들과의 평생에 걸친 대화를 이해하고 못하고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통이나 상실을 불러들일 필요는 분명히 없다. 하지만 어떤 날씨든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몫의 고통이나 상실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고통이나 상실을 신성시할 필요도 없다. 고통과 경이감의 교차 속에서 경험의 풍파를 통해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바로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부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누구도 이 여정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우리는 고통과 상실, 장애물, 사랑과 경이감, 진실과의 평생에 걸친 대화를 통해 확장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살아 있음의 본질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경험을 받아들이면 종종 그 기저에서 비옥하고 촉촉한 대지 같은 모든 이들의 경험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느껴가는 일은 쉼 없는 들음과 같으며, 이런 들음은 서로의 살아 있음을 표현하게 만드는 힘들고도 장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불평하는 제자에게 스승이 준 답의 의미는 그저 사는 것 외에 삶을 위한 학습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꿈과 계획, 전략들은 우리가 이미 몸담고 있는 찬란한 실재에 일는 우회로일 뿐이다. 지금까지 길을 가는 동안 이미 듣거나 듣지 못한 말,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주의를 기울였을 때 시간이 속도를 늦추는 방식, 자연 속에서 나래를 펴는 침묵, 우리 영혼의 소명과 경험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체성 등을 듣는 여러 가지 들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각의 들음은 기술이라기보다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능력에 가깝다.

 

 

고요한 스승과 같은 들음은 우리가 과장하거나 소란을 부리면 뒤로 물러나버린다. 개개의 들음마다 용기의 또 다른 측면을 적용해야 한다. 깊이 들을 때마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과 우리의 경계를 버리고 매 순간을 진실로 살아내리라 다짐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인들도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세상이 그들을 움직이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을 안다면, 타인들도 많이 고통받았지만 어떤 이들은 점점 어두워진 반면 어떤 이들은 축복 속으로 들어갔음을 안다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수많은 이들이 가장 사적인 절망의 순간 신에게 큰 소리라 간청했음을 안다면, 침묵과 물속의 지혜가 그들 모두를 받아들였음을 안다면, 사랑이라는 불꽃이 딱딱한 남자는 부드럽게 만들고 단호한 여자는 더 생각해보게 만듦을 안다면, 봄이 아무리 찬란해도 사랑을 주지 않으면 꽃들이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별 하나의 긴 호흡이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안다면, 한 조각의 꿈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는지를 안다면, 물질적인 힘에 압도당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안다면, 도움이 될 것들이 몰려와도 오해를 하면 기회를 그냥 꿀꺽 삼켜버릴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런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공통적인 것인지를 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안다면,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사람이 두 눈을 감듯 우리가 알던 것들을 버리고 그저 살아내야 한다. 누구도 아직 살아낸 적이 없는 삶을 살 듯.

 

 

더욱 많이 보면 지혜가 확장되고 깊어지며, 더욱 많이 느끼면 연민의 마음이 확장되고 깊어진다. - 프라사드 카이파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삶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신이 냇물 속의 작은 물고기임을 깨닫고 흐름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의 고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이 심오한 기회를 잡는다고, 일이 생각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 실망과 슬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지와 다르게 전개되는 삶에 분노와 화를 간직하고 있으면, 불가해한 전체 속에서 겸허하게 한 부분을 차지하는 축복을 놓치게 된다. 양심적으로 투자했는데도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거나 물려받기로 한 트럭이 허리케인으로 망가지거나, 우리 대신 다른 사람이 승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똑같이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계속 화와 분노에 젖어 있으면 고착되고 만다.

 

 

고요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을 창조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 우리와 함께하면서 편안히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반김과 보살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의 핵심은 충분함을 아는 데 있다. 1평방인치의 가슴속에 행복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행복감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전부 채울 수 있다. - 겐세이

 

 

양자 물리학의 한 가지 가르침은 안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모든 것이 단단하거나 분리되어 있는 대신 유동적으로 통합되어 있고 입자가 아닌 파동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심리적, 영적인 단위도 마찬가지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충분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정체성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생명의 파동임을 알게 된다. 모든 생명력의 근원인 자연과 영혼의 본질적인 파동이 모두를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통일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지만, 이것을 느끼면 생명과의 유대감 속에서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식물이 빛을 받아들여 당을 만들어내듯 인간은 경험을 통해 의미를 발견한다. 우리가 아는 한 지구상의 생명체들 중에서 이런 내적인 감수성을 지닌 존재는 없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역동적으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생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생명을 받아들여 생명이 우리를 형성하게 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삼라만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에 가슴으로 힘을 얻을 때는 경험 자체를 느낀다. 물론 둘 다 가치가 있다. 정신으로 이해하면 경험을 통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가슴으로 느끼면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충만한 삶이 보답으로 주어진다. 그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해는 지각이라는 개념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언제나 변화하는 생명 전체와 더욱 밀접하게 조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나 어떤 물건을 이해했다고 할 경우, 이런 이해는 흔히 거짓된 위안을 안겨주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를 제한한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붙잡기 어려운 것이어도 살아 있는 것에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맡기면, 이해는 우리가 가꿔나가야 할 관계가 된다. 우리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세계와 가슴 사이의 춤이 된다.

 

 

멀리 떨어져 있던 작은 것들도 가까이서 보면 모두가 또 다른 완전한 세계다. 그 세계에 들어가보면, 이 본질적인 세계에 우리도 속해 있음을 발견한다.

 

 

통증과 두려움은 때로 도움이 될 모든 것들을 구름처럼 가려버린다. 이로 인해 우리는 몸과 환경, 심지어는 우리의 삶을 떠나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극복해낼 수 있다. 두려워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고, 혼란스러운 것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혼란을 풀어버릴 수 없다. 언젠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보내게 하는 것은 고요의 지점이다. 그리고 삶은 이 고요의 지점에서부터 펼쳐진다. 들숨과 날숨처럼 견딤과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둘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둘이 함께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고 삶의 정점으로 인도해주는 능력들을 익히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의 작업이다. 둘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엮어 삶의 본질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당겨 준다. 외적으로는 견딤endure이지만, 내적으로는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endear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 살다 보면 둘 사이의 경계선은 불분명하게 없어진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모든 것을 사랑함으로써 분명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삶에는 폭풍우와 고요한 상태가 모두 존재하며, 폭풍우를 건너뛰지 않고 고요한 상태로 폭풍우를 견뎌내는 것이 삶의 과제다. 그리고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점은 폭풍우 속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진정한 자리는 바로 중심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풍우 속에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리 힘들게 느껴져도 폭풍우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희망은 확실히 낙관주의와는 다르다. 희망은 무언가 결국 잘되리라는 신념이 아니라, 어떻게 되든 결국에는 의미가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모를 때 진정한 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모를 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혼란을 겪어보지 않은 마음은 할 일이 없다. 흐름에 방해를 받아본 냇물만이 노래를 부를 줄 안다. - 웬델 베리

 

 

삶의 속도를 늦춰야만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다. 다급함, 걱정, 두려움, 후회 등 모든 것을 비워야만 시간을 초월한 존재의 연못이 우리를 반겨준다. 모든 것을 겪고 나면 정직하게 표현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런 삶은 언제나 들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때 들음은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명명하고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다. 이런 훈련들이 우리를 언제나 진실하게 만들어준다.

 

 

100개의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아질 때까지 멈추고 비워라. 그런 상태에 이르면 집착도 부정도 사라질지니. - 도겐

 

 

지혜의 핵심은 아마도 들음이 열어주는 공간과 서로를 깊이 받아들이는데 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깨어남과 사랑과 청소는 모두 영원히 계속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계속 만들어내는 온갖 소음들과 산만함들을 청소하는 방식의 하나가 바로 마음으로 듣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서, 자신의 걱정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넘어서 깊이 들을 때 비로소 마음속에서 이방인이 사라진다고 확신한다. 진실로 들으면 사랑의 빗질 속에서 서서히 서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헌신할 때마다 이 세상에서 삶의 소중한 시간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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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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