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가운데 희로애락과 사람간의 갈등의 중심에는 감정이 있다.

 

감정의 노예로 살것인가? 감정의 목적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감정을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통제할 것인가?

 

무엇보다 타인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실수에 관대한 사람이 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이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본문발췌]

 

 

감정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신이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의 시야는 특정한 관점에 묶여 있으며 당신의 관점은 당신이 믿는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낀다면, 결국 관점이 감정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은 나의 관점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감정 수업 핵심 문장

  • 내 감정의 주인 바로 나!

  • 감정은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 모든 감정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 생각과 관점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 감정은 통제 가능하다.

  • 타인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지 말자.

 

자신의 감정을 자각한 후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역설적이지만 어떤 감정이라도 편안하게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러면 자신이 느낀 감정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자신을 책망하거나 꾸짖는 일은 소용이 없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단지 감춰질 뿐이다.

 

 

아들러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라했다. 혼자 힘으로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일부인 감정의 목적을 깨닫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불쾌한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목적을 계속 추구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곰곰이 생각하면 좋겠다. '이 감정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가? 이 목적이 내게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까?'라고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새로운 감정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감정 선택의 8가지 원칙

  • 생활양식 탐구하기: 내 생활양식이 어떤지 알고,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자.

  •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부정적 감정은 '나쁜' 감정이 아니다. 어떤 감정이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고, 나를 인정하면 새로운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수월해진다.

  •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을 아무리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 과거에 지배당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충실하자. 나에게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기: 생각이 감정을 좌우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고,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자.

  • 감정의 목적 인식하기: 모든 감정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그 목적을 계속 추구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원하는 감정을 선택하려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자신의 비합리적인 믿음을 논박하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아보자.

  • 언어 습관 바꾸기: 수동적인 말을 사용하면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단정적인 말을 사용하면 편견에 빠지기 쉽다. 수동적, 단정적인 말을 피하고, 능동적인 말로 내 감정에 책임지자.

  • 감정을 바꾸는 구체적인 계획 세우: 어떤 감정을 바꾸거나 갖고 싶은지 정리하고, 이를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보자.

 

 

감정의 목적

감정

목적

설명

anger

통제

승리

앙갚음

권리보호

통제력을 되찾고 싶거나, 논쟁 따위에서 승리하고 싶거나, 상대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때 억지로 그거슬 얻기 위해 화를 낸다. 권리를 보호하고 싶을 때도 화를 낸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물러서게' 하고 싶을 때 주로 화를 낸다. 자신에게 화를 낼 때는 스스로를 처벌하거나 억지로 어떤 일을 해야 할 때이다.

언짢음

annoyance

동의하지 않음

방해 제지

조치를 취함

언짢음은 분노가 다소 완화된 표현이다. 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방해하는 행동을 할 때 언짢음을 표시한다. 상대에게 반대의 뜻을 표하거나, 방해를 물리치거나, 혹은 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모두 통제력을 갖겠다는 의미이지만, 억지로 순종을 강요하는 분노보다는 약한 감정 표현이다.

냉담함

apathy

은근한 거부감

냉담함은 종종 잘못 이해된다. 이 감정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냉담함은 거침없이 혐오감을 표시할 만큼 대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은근히 거부감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지루함

boredom

누군가 자신을 즐겁게 해주기 바라는 마음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시

지루함은 즐거움을 느낄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현재 상황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없을 때 누군가 자신을 즐겁게 해주기를 바라며 지루함을 느낀다.

혼란

confusion

이해력 부족

우유부단

다른 사람의 기대감 회피

혼란스러움은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 주로 결정을 피하고 다른 사람의 기대치에 맞추기를 거부할 때 이런 감정을 보인다. 열심히 어떤 것을 설명해줘도 '아직 혼란스러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상대는 화가 나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결국 혼란스러운 감정의 목적은 임무를 회피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상대로 하여금 좌절하게 만든다.

절망

despair

자포자기에 대한 면죄부

절망감은 이미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낙담한 사람이 한층 좌절하면 절망감을 느끼는데, 이는 스스로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 심리 상태이다.

낙담

discouragement

늑장을 부리거나 자포자기해도 좋다고 변명하는 구실

늑장을 부리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행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낙담한다. 쉽게 낙담하는 사람은 매우 경쟁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지위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데, 한편으로는용기가 부족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며, 안전한 보장을 원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우울증

depression

분노 표출

통제

시간 벌기

도움 요청

슬픔의 표현

'우울한' 감정은 우울증에 걸린 심리 상태와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우울한 기분에 빠지지만, 우울증은 좀 더 복잡한 심리적, 신체적 현상이다. 여기서는 우울한 감정의 목적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우울한 감정은 슬픔의 표현이다. 우울한 감정은 소리 없이 울화통을 터뜨리는 심리 상태일 수 있는데, 그 표적이 된 당사자는 죄책감까지 느낄 수 있다. 우울한 사람은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 든다. 우울한 감정을 통해 시간을 벌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을 표명할 때도 쓰인다. 하지만 몹시 슬픈 일을 겪었을 때는 우울한 감정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망

disappointment

불만족의 표현

동의하지 않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만족스럽지 못한 심정을 표현한다. 때로는 실망감이 언짢음과 결합하여 반대의 뜻을 표시한다.

당황

embarrassment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우월감 표시

앞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뜻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당황하는 이유는, 그 당황한 모습으로 상대의 용서를 구하기 위함이다. 거꾸로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당황할 때는 그 사람이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우월감의 표출이다. 또는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령, "네가 그렇게 하면 내가 곤혹스러울 거야."라는 말로 상대의 행동을 미리 통제하려 한다.

공포와 불안

fear and axiety

자기보호

흥분

조치를 취함

공포와 불안은 둘 다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추고, 그에 대응하는 행동을 하도록 돕는다. 즉, 자신을 보호하는 감정이다. 하지만 감정이 심하게 고조되면 일 처리를 그르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실패 자체보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민

pity

회피

우월감 표시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깎아 내리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나같이 불쌍한 사람한테 누가 기대하겠어?" 

한편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우월감의 표시이다. 그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거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참고로 공감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진심으로 배려하는 태도로, 연민과 확연히 다르다.

걱정

worry

관심의 표현

두려움의 표현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일에 대한 관심이나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때로 걱정은 '주술적인 사고방식'을 내포한다. 마치 어떤 일을 충분히 걱정하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면 그 일이 닥칠 것이라고 믿는 식이다.

상처

hurt

당한 만큼 갚아 준다는 생각

우선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비난하다가 갑자기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후에 받은 만큼 되돌려주겠다며 화를 낸다. 즉, 상처는 자기가 자기에게 주는 것이다.

죄책감

guilty

자기 처벌

의무 방기

자기 변명

우월감 표시

분노를 느껴야 할 때

선의를 가장할 때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즉, 죄책감은 자기 자신을 처벌하는 감정이다.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은 채 해야 할 일(의무)를 방기하고 싶을 때도 죄책감을 빌미로 삼는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지만 하지 않을 때, 그저 죄책감을 느낌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없애고자 한다.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죄책감을 이용해 자신을 변명한다. 잘못된 행동을 고치거나 변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 대신 죄책감으로 사태를 무마하려고 한다.

때로는 죄책감이 우월감을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적어도 잘 못했다는 점은 알 정도로 경우가 바른' 사람임을 자부하는 식이다. 따라서 잘못하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런 사람은 잘못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자신만큼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분노의 감정을 피하고자 싶을 때도 죄책감을 이용한다. 화가 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죄책감을 느끼고, 화가 난 상대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괴로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자신이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죄책감을 느낀다면 곧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변화할 수만 있다면 죄책감은 건강한 감정이다.

슬픔

sadness

실망의 표현

다른 사람에게 책임 떠넘기기

공감 표시

자기 자신, 타인, 혹은 상황에 실망했을 때 슬픔을 느낀다. 이때 슬픔과 자기 연민이 결합하여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수단이 된다.

슬픔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느끼는 슬픔은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감정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공감과 연민은 다르다. 연민은 상대가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지만, 공감은 그가 고난을 헤쳐나갈 힘이 있음을 인정한다.

 

 

우울증 극복을 위한 5가지 마음가짐

  • 우울한 내 마음 인정하기

  • 부정적인 사고방식 고치기, 육체적인 병인이 없는 우울증은 대개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어떤 사고방식과 믿음에 우울증이 도사리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일단 자신의 비합리적인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것이 당신의 행동 방식을 지배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기

  • 자신에 대한 기대치 낮추기,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낮추되, 긍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살피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 강박적인 의무감 벗어던지기

 

 

불안을 대하는 지혜로운 방법

  • 외부의 어떤 힘이 자신을 불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책임이 있다. 불안한 이유가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감정을 바꿀 수 있다.

  • 불안은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된다. 현실에 충실할 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불안이나 공포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당신의 능력과 장점을 되새기고, 감정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의식하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현실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원하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물어보자. 

  • 불안감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다.

  • 불안하지 않은 척 연기한다.

  • 현실에 집중한다.

 

 

"무엇이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기쁨은 외부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다. 기쁨은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과 태도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목적과 믿음, 생각에 따라 감정이 좌우되며, 따라서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의 진짜 뜻은, 스스로의 행복감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기쁨을 많이 느낀다.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되, 삶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작가인 토마스 라 맨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게 바로 인생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기쁜 사람처럼 행동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부정적인 생각과 고집을 버리도록 하자. 스스로가 좀 못나고 우스꽝스럽게 보여도 불편하게 보지 말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깊이 좌절하기보다 약간 실망하는 정도에 그친다. 남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우선 자신이 얼마나 거기에 책임이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삶이 항상 내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하는 대신, 좀 더 폭넓은 시야와 넓은 마음으로 어떤 일이건 그대로 받아들 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당신의 마음과 관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기쁨도 '창조'할 수 있다. 불안하고 우울하게 살아가느냐, 아니면 즐겁게 신나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들

  • 일상생활의 사건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수 없이 많다. 교통 체증, 적대적인 사람들, 과중한 요구와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는 모두 스트레스를 일으킬 수 있다. 배우자나 아이들, 친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사항도 스트레스의 잠재 요인이다.

    • 정신과 의사 토마스 H. 홈스와 리처드 라헤가 제시한 강한 스트레스 요인 10가지: 배우자의 죽음, 이혼, 별거, 법적 구속, 가족의 죽음, 질병이나 부상, 결혼, 해고, 부부 화해, 은퇴

  • 화학 물질 및 환경: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화학 물질로는 알코올과 카페인, 니코틴, 기타 약물 등이 있다. 소음, 비좁은 작업장, 담배 연기, 잡동사니, 마구 어질러진 공간, 극심한 추위와 더위 등은 스트레스를 늘리는 환경에 속한다. 

  • 긍정적인 사건: 보통 긍정적인 사건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부정적인 사건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일이나 결혼식, 출산, 휴가 등 긍정적인 사건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흥미롭게도 똑같은 사건이 스트레스를 줄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늘리기도 한다는 얘기다.

  • 사적 논리

    • 우리의 지각은 사건과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지각은 우리의 '사적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상식적인 논리와 달리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이며 개인적이다. 사적 논리에 의존하면, 일반적인 견해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상황과 사건을 해석하게 되고 그에 대한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 예를 들어, 좋은 친구가 10명쯤은 있어야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적 논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친구가 10명이 안 되면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한두 명 정도면 충분하다는 사적 논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친구가 10명이 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다.

    • 사적 논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만약 두 사람의 사적 논리가 충돌한다면 관계는 악화될 것이고 이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 대인관계:  아들러는 삶의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직장에서의 일이든 친구들과의 교류든 가정을 꾸리는 일이든 타인과의 교류 없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좋지 않다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일과 가정, 교우 관계 등에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

  •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혹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여긴다. 물로 이와 같은 외부 사건은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핵심은 이런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경험에 대한 해석과 믿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 스트레스 요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자.

  •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하자.

  •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자. 현재의 직업이나 가정환경에 불만족스러움을 느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스트레스 요인을 바꾸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용기와 도전하는 태도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자기 자신을 믿을 때 도전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커다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실수와 실패를 할 가능성 따위는 결코 당신의 의지를 좌절시키지 못한다. 실수와 실패는 새로운 배움의 기회이지 포기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자기 존중은 성공이 아니라 노력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노력 자체에서 성과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조그만 성과와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다.

  •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해결책은 있다.

  • 과거의 성공을 돌이키고, 현재에 집중하자. 어려움에 직면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과거에 성공했던 일을 회상해보자. 그러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다시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한편 어떤 상황에서도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만 늘어날 뿐이다. 당신의 관점에의 해 해석된 현실이 아니라,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상황을 좀 더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스트레스는 없어지거나 줄어든다.

 

 

자기 긍정(self-affirmation)은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자기를 긍정하면 낡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자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삶을 더욱 열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기 긍정은 스트레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완벽함을 요구하거나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대신,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게 돕는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가혹한 부담을 질 필요가 어디 있는가? 당신에겐 다른 사람의 비판에 신경 쓰지 않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 남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눈치 볼 필요는 없다.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면 그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겠는가? 상황을 좀 더 정직하게 해석할 수 있는 한편, 자신을 변명해야 할 필요성은 덜 느끼게 된다. 새삼 용기가 솟고 기분도 산뜻해진다.

 

 

완벽주의 성향과 변명을 일삼는 태도를 버릴 수 있다면,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당신 자신, 가치, 능력을 조건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들러가 얘기했듯, 장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잘못을 지적받는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부모님은 당신의 단점만 꼬집고, 선생님들도 잘못과 실수를 지적하는 데 골몰하는 환경 말이다. 이런 환경에선 자기의 단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는 있지만,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이 되기 쉽다. 당신이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재능과 소질은 당신만의 독특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본인의 장점을 알고 그것을 적절히 발휘하면 삶이 윤택해지고 마음은 행복해지며,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행동이 당신의 감정에 미친 결과를 중점적으로 말해야 한다.

 

 

사려 깊은 경청의 공식

  •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대방이 말을 마치면 그때 당신이 들은 얘기를 요약해서 말하면 된다. 상대방이 어떤 기분이고 그런 감정을 느낀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해석'하려고 하지는 말고, 단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다음과 같은 말로 대호를 이끌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너는...", "네 기분이 지금...", "내가 듣기로는...", "내가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네가 지금..."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

  • 인생, 사람, 관계에 대한 인지 방식의 차이

    • 똑같은 경험이라도 각자가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인지 방식은 꽤 까다로운 문제이다. 대체로 오감을 통해 주위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다. 오감은 '사물의 상태'를 알려주고, 인지 방식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 인식하고자 하는 대상이 장미나 바위, 혹은 고양이라면 문제는 간단하고 의미도 단순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일 때, 사정은 훨씬 복잡해진다. 온갖 미묘한 의미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는 그의 말일 수도 있지만 몸짓일 수도 있다. 목소리나 행동거지도 단서가 된다. 그런데  모든 단서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 사이에 오해하는 일이 잦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인지 방식은 자신의 믿음과 태도에 좌우되며, 이 믿음과 태도는 자신의 경험에 달려 있다. 따라서 상대가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와 다르게 단서를 해석할 수 있다. 

    • 자신의 인지 방식이 어떤지 알게 되면, 그것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 깨달을 수 있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무의미할 수 있으며, 그 반대 경우도 성립한다.

    • 오해는 보통 "그런 생각이 어디서 나온 거냐?"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떻게 그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하지 못했겠다."라는 반응으로 표현된다. 즉 "나처럼 좀 더 논리적으로 생각하라!"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해는 논리력의 차이가 아닌 인지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 인지 방식의 차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상대방의 생각을 통제하고 판단하려는 습관

    •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대화하려는 노력 없이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갈등을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에 무조건 동의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거기에는 상대방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상대방을 통제하려 들고 그가 바뀌기만을 고집한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내 감정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 태도

    • 자기 감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갈등 해결의 핵심이다.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사랑과 인정, 존중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주범이다.

되도록 당신과 상대방의 공통점과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합의점을 찾을수록 서로의 이해가 깊어지고 서로 협력할 만한 영역도 커진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당신과 상대방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서로 존중한다고 느끼고 가치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 두 사람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다.

상대 의견에 대한 반발심을 없애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맞아요, 하지만..."이란 말은 가장 좋지 않은 화법이다. 상대의 공통점에 집중하고, 열린 태도로 의사소통에 임한다. 그래야 상대의 의견 중 동의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인생을 더 즐겁게 살아간다. 항상 최선의 결과를 예상하고 그것을 얻어낸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비관적인 사람들보다 쉽게 극복한다. 그것은 최선의 결과가 나오리라 확신하는 한편, 실망스런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낙천적인 사람들은 유쾌한 경험을 강렬하게 느끼고 불쾌한 경험은 흐릿하게 느끼는 반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그 반대이다. 낙천주의자들은 잘되 일을 주목하는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잘못된 점에 집중한다. 낙천적인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금방 지운다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오랫동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항상 옳은 말만 하는 비관론자가 되기보다 가끔 실수를 하는 낙관론자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이른바 낙천주의자들의 철학이다.

 

 

감정의 추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특정한 신호를 뜻한다. 감정의 추는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즉시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와 부정적인 감정을 제어하고 기분을 향상시킬 수 있다.

 

 

ACE, 감정 조절의 유용한 도구

  • A: 인정 (Accept yourself and your feelings.)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라.

    • 부정적인 감정을 바꾸려면 자신이 느낀 감저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자기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바꾸지도 못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조금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삶의 진실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바꾸려다 보면, 가끔 실수할 때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사실이 당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점까지 감내해야 한다. 만약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그대로 인정한다.

  • C: 선택 (Choose new purpose, beliefs and feelings.) 새로운 목적과 믿음, 감정을 선택하라.

    • 모든 감정에는 고유한 목적이 있다. 210쪽 <감정의 목적>을 참고해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늘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다. 그 목적이 당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을지 판단해야 한다. 당신은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 감정은 믿음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불쾌한 사거늘 겪더라도 '이 사건을 다르게 보는 관점이 무엇인가'라고 되뇌며 다양한 관점을 찾는 훈련을 해보자. 끔찍하다는 느낌을 갖기보다는, 조금 운이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인생의 새로운 기회로 여기면 부정적인 감정을 바꿀 수 있다.

  • E: 실행 (Excute your new choices.) 새로운 선택을 위한 행도을 실행하라.

    • 변화하려면 실천해야 한다. 단지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각한 내용을 실행해야 한다. 새로 정립한 목적, 믿음, 감정에 따라 행동하자.

 

 

실수에 관대한 사람이 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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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과 삶의 틀에서 잠깐 물러나 보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본문발췌]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문>

 

 

자연은 거칠고 인간에게 적대적임에 반해서 문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노력과 시간을 벌면서 행동하게 해준다. 문명은 노동의 굴레에서 육체를 해방시켜 관조의 길을 열어준다. <신안 상품을 구입하는 방법>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대상이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게 좋다. 어떤 문제를 놓고 아무리 곰곰이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현재 그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이상을 결코 알아내지 못한다.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국가의 돈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낭비가 법률에 따라 행해지는 한. <재산 목록을 작성하는 방법>

 

 

처음에 매스 미디어는 우리로 하여금 가사 세계를 현실로 믿게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현실을 가상으로 여기게 한다. TV 화면이 현실을 많이 보여 주면 보여 줄수록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영화처럼 되어 간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우리는 몇몇 철학자의 주장과 비슷한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에는 오로지 우리만이 존재하며 우리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신이나 악마가 우리의 눈앞에 투사한 영화일 뿐이라고. <유명인을 만났을 때 반응하는 방법>

 

 

<어떤 소프트웨어의 종교를 알아보는 방법>

  • 새로운 종교 전쟁이 우리의 현대 세계를 은밀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확신해 왔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이내 좌중의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 점에서는 당신도 예외일 수 없다. 한편에는 매킨토시 지지자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MS-DOS로 운용되는 PC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매킨토시(이하에서는 맥으로 줄여 부르기로 한다)는 가톨릭이고 도스는 프로테스탄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고 어리둥절해 할 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더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 맥은 예수회의 <연구방법ratio studiorum>이 깃들여 있는 반개혁적인 가톨릭이다. 맥은 까다롭지 않고 사근사근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신자가 따라야 할 절차를 차례차례 일러줌으로써 신자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하늘의 왕국, 아니 문서 인쇄라는 마지막 순간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가톨릭의 교리 문답이 그러하듯이 계시의 핵심이 간결하고 알기 쉬운 표현으로, 그리고 화려한 아이콘으로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 그에 반해서 도스는 프로테스탄트, 더 정확히 말해서 칼뱅과 프로테스탄트이다. 즉 성서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고민스러운 판단을 요구하고 세심한 해독을 강제하며, 누구나 다 구원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일깨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일련의 개인적인 해석 행위가 없으면 컴퓨터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없다. 사용자는 쾌남아들의 자유 분방한 공동체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자기 내면의 강박 관념에 갇힌다.
  • 위와 같은 견해에 대해 혹자는 이런 식으로 반박할 것이다. 윈도우즈가 나옴으로써 도스의 세계를 맥의 반개혁적인 관용에 접근시켰다고. 맞는 말이다. 윈도우즈는 영국 국교식의 분립이며, 대성당 안에서 화려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도스로 되돌아갈 가능성. 그럼으로써 기이한 판단에 근거하여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식으로 가면 언젠가는 여자와 동성애자들도 사제직에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누가 봐도 앵글로 가톨릭적인 윈도우즈 95가 나옴으로써 오늘날의 신학적인 판도가 한결 더 복잡해 졌음은 물론이다).
  • 당연한 얘기지만, 맥의 가톨릭적인 성격과 도스의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은 사용자들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내가 알아낸 바로는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지고 사는 듯한 엄격한 시인이며 스펙터클 사회의 공공연한 반대자인 프랑코 포르티니도 맥의 신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둘 중의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든 결국 사용자의 내면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야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도스의 신자이면서 동시에 전통주의적인 가톨릭일 수 있는 것일까? 만일 셀린(프랑스의 작가, 1894-1961, 대표작으로 소설 ‘밤의 끝으로 가는 여행’, 1932이 있다)이 오늘날에 글을 썼다면 그는 워드로 썼을까, 아니면 워드퍼펙트나 워드스타를 썼을까? 또 만일 데카르트가 다시 태어났다면, 그는 자기의 경쟁자였던 파스칼의 이름을 딴 프로그래밍 언어 즉 파스칼 언어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을까?
  • 그리고 컴퓨터 운용 환경이 어떤 것이든 우리 시스템의 운명을 은밀하게 결정하는 기계 언어, 그것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구약과 탈무드와 카발라 같은 것이 아닐까? 아 여기에도 유대인의 로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지 않으려면 무언가에 소속되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에 따르면, 현현(顯現)이란 추억으로 간직될 만한 어떤 것이 말이나 몸짓이나 생각 속에 갑작스럽게 발현하는 정신적인 현상이다. 어떤 대화, 저녁 안개를 뚫고 홀연히 나타나는 시계탑, 썩은 양배추 냄새, 갑자기 두드러져 보이는 어떤 하찮은 물건, 조이스는 안개 낀 더블린에서 그런 현현들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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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는 유일한 자연 속 존재, 인간!

 

 

[본문발췌]

 

 

이 책의 유학자들은 동물 관찰기를 통해서 생명이라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알려준다. 기계가 작동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바로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연료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바로 육체가 에너지로 삼는 '먹을 것'과 마음이 에너지로 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다. 육체가 먹을 것으로 작동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으로 작동된다는 생각은 조금 낯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확률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이성적 사고 보다는 좋고 싫은 감정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최근의 뇌과학 연구를 참고한다면 이러한 생각이 크게 낯설지 않다.

 

 

만약에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함부로 정당성을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정당성을 가지는 길이다.

 

 

'동물 같다'는 말에는 '하등하다'는 뜻과 '자연스럽다'라는 뜻이 동시에 배어 있다. 동물은 먹고 자는 일의 즐거움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왠지 하등하고 미천해 보인다는 뜻이다. 반면 인간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지배당하기도 하지만, 배우고 창조하며 새로운 습성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는 중요한 차이점으로 자주 부각된다. 인간은 자연이 부여한 본성을 넘어 문화와 개인적 개성이라는 습성을 의지대로 취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본성과 습성의 관계는 기계성과 창조성의 관계, 또는 본능과 사회성의 관계로 대조된다.

 

 

모든 동물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바로 호오(好惡)를 가진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마음이 편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면 가시방석이니, 기술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우선 동물의 호오를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한 인간을 마주할 때, 종종 그 인간의 호오보다는 성품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마주할 때도 그렇다. 저 사람은 나쁘다, 착하다와 같은 가치 판단을 자동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들의 나쁘고 착한 행동도 결국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가치가 모두 달라서 생긴 결과다. 정약용은 하늘이 부여한 성품이라는 추상적 담론에서 벗어나 식물, 동물, 사람의 성품이 단지 '기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 정양욕, <다산시문집> 제 19권, <편지>, 이여홍에게 답함

 

 

우리는 성공하는 개체의 능력에 주목할 뿐,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기술을 내것으로 복제하려는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특출난 능력을 복제하려면 엄청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기술과 능력은 분명히 다르다. 기술은 지식이기에 그 방법을 알기만 하면 누구나 남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입맛에 맛게 변형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능력은 단순히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잠재된 에너지일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했다는 믿음만으로도 인간은 쾌락을 얻는다. 누군가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의 친구나 애인이 되기 위해 안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용적인 유학자들은 에너지를 확보했다는 '믿음'에 기대며 살아가는 미신적 태도보다는, 능력을 기술로서 통용시키기 위해 동물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인간 사회를 반추해 보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인간성마저 기술로서 통용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성은 인간이 자신의 동물성을 억누르기위해 육성시키는 의지력이 아니라, 누구나 그 방법만 알면 스스로의 마음에 이식시킬 수 있는 알고리즘인 것이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두꺼운 가죽을 입고 있다. 바로 기술과 제도, 문명이라는 가죽이다.

 

 

노루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까이 두어 사람과 친해지게 하면, 사람과 가까이 하는 습성이 천성이 되어 노루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먹이와 사랑이라는 입력의 차이에 의해 무한히 달라지는 기계적 숙명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연물은 없다. 

 

 

요즈음 어떤 친구가 파리하고 못생긴 호마 한 필을 보고 그것이 뛰어난 재주가 있다 하여 값을 후히 주고 사오게 되었으나, 집안이 매우 가난해서 그는 말을 늘 굶겼다. 이 호마가 더욱 파리해져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장차 죽기 직전이 되자, 그는 말을 그만 잡아서 고기로 팔고 말았다. 아! 이 호마가 참으로 못 생기고 쓸모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을까? 또는 그 옳은 주인을 만나지 못해서 있는 재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까? 또 이런 이유를 누구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인가? 이는 저 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이익,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 천리마

 

 

이익은 '새' 실험을 통해서 동물의 '눈치 보기'라는 행위를 관찰한다. 새 한두 마리는 겁을 주어도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새들이 여러 마리 있을 때, 한 마리 새가 겁을 먹고 날아가면 다른 새들도 반드시 그 새를 따라 날아가게 된다. 군중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조정하는데, 그 결과 군중 전체가 비슷한 의견, 비슷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익은 인간의 그러한 과정이 새 무리와도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상이 후하지 않으면 선을 권할 수 없고, 형벌이 엄하지 않으면 악함을 징계할 수 없는 것이다. - 이익, <성호사설> 제 14권, <인사문>

 

 

일벌과 여왕벌이 생긴 모습이 달라서 각자의 숙명에 따라 사는 것만큼, '어떤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 않은' 우리의 욕망이란 꿀벌의 '생긴 모습의 숙명' 만큼이나 강력하다.

흡연 인구, 음주 인구, 비만 인구는 '내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종족'에 속하는 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천한 종족이 내는 세금의 양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내는 세금이 일벌이 토해 내는 꿀이라는 노동의 결과물과 닮아 있지 않은가? 세상의 문제는 임금벌과 일벌을 나누는 귀천의 권력에 있는가? 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귀천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또한 서로가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익은 차등적 세계를 해체할 수 없다고 한다. 동물 착취는 동물 세계를 식민화시킨 것이고, 착취당하는 동물은 식민지 시민보다 못한 노예나 다름없다. 어느 누구도 그 착취를 정당화화지 못한 채 착취를 계속한다. 이익은 여기에 한 수 더 놓기를, 굴레와 코뚜레를 제제의 술법에 비유하며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라 한다. 가축이나 백성이나 동물원에 살려면 코뚜레에 얽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동물원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더더둑 그렇다. 이익은 여러 편의 글에서 재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편에서 이익을 보면 저편에서는 손실을 입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조선 사회를 부가 한정되어 있어 사슴 한 마리를 놓고 여럿이 싸우게 되는 제로섬 전략의 사회로 바라보았다.

 

 

이익은 화폐를 금지하고 농경사회로 돌아가자는, 반상업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다. 농업이나 목축의 기술을 발전시켜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쉽게 화폐를 빌려 쓰는 것은 단지 현재의 만족을 위해 미래의 가난을 사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은 창조적 파괴라고 부르는)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간에게 좌절을 허용한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좌절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구의 좌절을 금지할 것인가. 배를 태우던 사람들이 느끼던 좌절? 자본주의는 원래 소박했던 인간에게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아니라, 언제나 창궐했던 인간의 탐욕을 좌절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가들과 중상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악의 근원이라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도모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반발 심리를 이용해서 부족주의적 영달을 추구한다.

 

 

말을 타고 만 리 길을 가면서 마부에게 걸어서 따라오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단지 걸어서 따라갈 뿐 아니라, 항상 행렬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마부로 중국에 같이 들어가는 자는 모두 죄수처럼 쑥대머리를 하고 맑거나 비가 오거나 상관없이 걸어서 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하인이나 일꾼들이 자주 병드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건을 지나치게 많이 실어서 소나 말이 자주 다친다"고 명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짐승들도 이런 대접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조차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박제가, <북학의>, 내편

 

 

코뚜레 없이 사는 소들 vs 코뚜레에 꿰어 죽도록 일하고, 죽어서도 고기로 인간에게 바쳐지는 소, 우리나라의 소

 

 

세상에는 온갖 억울한 사람들이 많지만, 부모가 만드는 불행 속에서 크는 아이들만큼 억울한 인생들이 없다. 

 

 

물과 불은 기운은 있으나 생명이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고, 새와 짐승은 지각은 있으나 의로움이 없다. 사람은 기운도 있고 지각도 있고 의로움도 있다. 그래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다. - 순자, <왕제>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 굴리기를 좋아하여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용도 여의주를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 뽐내어 저 쇠똥구리가 쇠똥 굴리는 것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 이덕무, <청장관전서> 제63건. 선귤당농소

 

 

만물의 생은 각각 기질을 따르므로 생을 영위하는 것도 다르고, 생을 영위하는 것이 이미 다르므로 일삼는 바도 같지 아니하다. 예컨대 깃과 털을 가진 금수는 누에의 옷감을 알지 못하고,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발 있는 벌레와 발 없는 벌레는 궁실을 알지 못하고, 비와 이슬을 마시는 것은 어육을 알지 못하고, 사냥하는 동물은 경작하는 등 농사짓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저가 잘하는 것은 이가 하지 못하는고, 이가 잘하는 것은 저가 하지 못한다.

어찌 다만 유를 달리하는 것만이 그리할 뿐이리오. 같은 사람이라도 각각 처하는 바에 따라서 제반의 익히는 일이 또한 다르다. 그렇지만 환난을 알고 주리고 배부른 것을 깨달으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를 피하는 것은 사람과 물이 모두 같다. - 최한기, <추측록> 제6권, '추물측사', 동물과 식물은 일삼는 것을 달리한다.

 

 

큰 놈은 작은 놈을 먹이로 하고

힘센 놈은 약한 놈 포식하나니

잡아먹고 살아가는 이 세상 운명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들 해치누나

그러나 강하다고 어찌 항상 강하리오

때때로 사나운 적 불시에 만나니

힘세다 자랑 말라 힘센 놈 한이 없고

꾀 많다 자랑 말라 꾀 많은 놈 즐비하니

나와 너 분별의식 지인에겐 아예 없어

그 마음 허공처럼 툭 트였나니

허공이 이기는 물건 하나 없지만

허공을 이기는 것도 하나 없도다

- 장유, <계곡선생집> 제25권, <오언고시, 혼자 쓸쓸히 지내면서 아무렇게나 읊어본 시 십수>

 

 

지능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말하면 문제를 푸는 능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계산기도 지능을 가지고 있을까? 계산기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해결해도 지능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력을 가졌지만 계산기를 보고 사람보다 똑똑하다거나 지능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능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여기에서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정의하겠다.

 

 

생에 알맞은 것은 좋아하고 생에 알맞지 않은 것은 미워하니,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에 이름을 준 것이 비록 일곱 가지가 있으나, 기실은 호오뿐이다. 칠정이란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다. 감정의 발현에 어찌 이같이 실마리가 많겠는가. 진실로 그 실(實)을 추구해 보면 대개 호오가 있을 뿐이지만, 그 호오의 깊고 얕은 정도가 모두 같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게 된 것이다. 절박하게 싫어하는 것이 슬픔이 되고 성하고 격렬하게 싫어하는 것이 노여움이 되며, 좋아하는 것이 나타나면 기쁨이 생기고 좋아하는 것이 두드러지면 즐거움이며, 좋아하는 마음이 대상에 결부되면 사랑이고,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욕(欲)이 되는 것이다. - 최한기, <추측록> 제3권, <추정측성>, 칠정(七情)은 호오(好惡)에서 나온다.

 

 

벌레, 온갖 동물들, 그리고 사람은 자연의 도구다. 동물은 유전자와 자연선택의 역사가 빚은 하드웨어에 종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아의 역사에 종속된 노예이기도 하다.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자아의 역사에 종속된 노예이기도 하다.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온갖 잡다한 역사적/개인적 기억과 습관을 나르는 도구일 뿐이다. 현재의 삶을 바꾸기 위한 일환으로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왜 굳이 동물이란 특정한 목적을 가지도록 욕망하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그 삶은 반드시 어떤 것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벌레와 짐승은 자연의 도구라는 자신의 숙명을 모른다. 도구의 숙명을 아는 도구가 사람이다. 방 안에 갇힌 숙명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을 나와 다른 방을 구경할 수 있다. 바로 다른 짐승의 방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벌레, 고양이, 새의 방을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며 기계의 숙명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유학자들이 말하는 '습성이 천성이 되는' 상태이자 인간성이라는 기술의 한 방법이다. 이 인간성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이 벌레와 고양이의 상태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을 제공한다. 그 가상현실은 바로 그들의 각기 다른 호오의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최초의 짐승이 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그 최초의 짐승이 지금도 당신 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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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무 수확해서 절이고 씻고, 18가지 양념속과 정성을 더해 버무린 3일간의 김장여정 마무리!

김장배추에 사과, 배, 생강, 마늘, 양파, 쪽파, 대파, 무, 갓, 청각, 새우젓, 황석어젓, 멸치/디포리/황태머리 육수, 찹쌀풀, 매실청, 고추가루.

제주 흑돼지 앞다리, 뒷다리 수육에 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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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선운사 단풍의 아쉬움에 김장 마무리하고 간 문수사 단풍산책! 입구에는 단풍이 대부분 말라 떨어져 아쉬웠는데 문수사 경내 가까이는 아직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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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 조르바!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본문발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영원을 생각해 봐요. 10년, 15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순간순간이 영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구더기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입니다.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의 냄새를 맡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맛을 보고 먹을 만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잎의 위를 두드려 봅니다. 잎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잎 가장자리까지 이릅니다. 거기에서 고개 빼고 카오스를 내려다봅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떱니다. 밑바닥의 나락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지요. 멀리서 우리는 거대한 나무의 다른 잎들이 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가슴이 부풀지요. 끔찍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맞니다. 그 순간에 시작 되는 게...'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바로 시(詩)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르바가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말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내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무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뼈다귀에 가죽을 입힌 이 조르바 말입니다)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늙은 것도 그걸 알고 있어요....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조르바, 내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이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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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자연 환경적 변화와 제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간, 생각, 문화적 특징을 형성했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본문발췌]

 

 

생명이 무생물과 구분되는 차이점은 에너지의 흐름이 있느냐 없느냐다. 돌과 같은 무생물은 에너지가 들어가거나 나오지 않는다. 돌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돌은 에너지의 흐름이 없는 '닫힌 시스템'이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생명체는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 흐름상 '열린 시스템'이다. 태양 에너지는 식물을 키운다. 우리는 그 식물을 직접 먹기도 하고, 식물을 먹고 자라난 동물을 먹고 힘을 얻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것은 태양 에너지가 유기물 음식의 형태로 변환된 것을 소비하는 작용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근본적으로 태양 에너지를 먹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생명은 태양 에너지의 흐름을 이용해서 생명성을 만들어 내고 유지한다.

 

 

문화는 이러한 에너지 흐름의 과정 중에서 생명이 만들어 낸 2차 부산물이다. 둥그런 행성의 모양, 자전축의 기울어짐, 자전과 공전,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는 지역마다 다른 '지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지리적 배경은 각기 다른 '기후'를 만든다. 각기 다른 기후는 각기 다른 '환경적 제약'을 만든다. 이런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 지능의 노력이 '건축물'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비가 와서 지붕을 만들었고, 추우니까 벽으로 방을 만들고 온돌을 만들었다. 건축은 기후가 주는 문제 대한 인간의 물리적 해결책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더워지면서 건조해졌기 때문에 물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물을 구하기 위해서 물가에 모여 살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아져 주변에 있는 사냥감과 열매로는 많은 인구가 살기에 부족했다. 인간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 가지고 있던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제약 들 속에서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의 물리적 결정체가 바로 건축물이다.

 

 

<뇌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가장 창의적인 순간은 빈둥거릴 때라고 한다. 이 명제는 문화 발생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준다. 엘빈 토플러는 문명의 첫 번째 혁명이 농업이라고 말한다. 농업이 문명적 혁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농업이 시작되면서 부가 축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렵 채집의 시기에는 경제적 재화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냉장고가 없으니 사냥감을 나눠 먹어야 하는 원시적 사회주의였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 수확한 곡식을 말리면 저장이 가능했다.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창고 안에 '부'가 곡식의 형태로 축적되었고, 축적한 곡식의 양 차이가 사회적 계층을 만들었다. 같은 인간 사이에 이전에는 없던 주인과 노예라는 계층이 생겨났다.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에 의하면 모든 쓸모 있는 에너지는 온도의 차이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우주에서 생명이 가능한 것도 최초 빅뱅의 뜨거운 폭발에서부터 점점 식어 가는 우주 사이의 온도 차이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온도 차가 없으면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창조와 생명도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수백억 년이 지나고 나면 우주가 전체적으로 같은 온도의 차가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시간도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무질서의 정도를 말하는 엔트로피가 늘어나면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창조는 온도 차에 의해서 시작된다.

 

 

인간 사회 안에서 '온도 차이'를 만든 것이 농업이다. 농업혁명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계층과 부의 '온도 차이'를 만들어 내자 인간은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 수 있었다. 계급의 차이는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지만 냉정히 말해서 문명 발생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계급 차이가 계속 존재해야 창조적인 사회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차이에 의해서 나오는 '흐름'이 창조를 만드는 것이니, 사회의 계급이나 부가 고착화되면 차이에 의한 흐름이 정체되고 사회는 쇠퇴한다. 따라서 공정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회 계급 간의 자리 배치의 변화가 많은 것이 사회 발전의 에너지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 간의 이동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점은 발전의 에너지가 소실되고 있다는 중대한 문제다. 인류 초기에 사회적인 계급의 형성은 문명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열심히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놀아도 살 수 있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누군가는 빈둥거리게 되었고 창조성이 키워졌고 문명이 발생했다. 부가 한곳에 축적되면서 사람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자본력도 만들어졌다. 그 자본력으로 무거운 돌로 만든 큰 건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위대한 사상가들도 그러한 가운데 탄생했다.

 

 

인간 사회에 계층이 만들어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 기원전 500년을 전후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오래된 지역인 그리스, 인도, 중국에서 위대한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석가모니, 노자, 공자 등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사람들의 '생각의 특성'이 지리와 기후에 의해서 결정됐다는 점이다. 강수량의 조건은 농업의 품종을 결정한다. 세계의 문화 권역은 크게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다. 연강수량이 1천 밀리미터 이상이면 벼농사, 1천 밀리미터 이하면 밀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이 두 품종은 농사법이 다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하는 벼농사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치수 사업이 필요했다. 벼농사는 저수지와 보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드는 토목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밀 농사를 할 때에는 개인이 씨를 뿌리며 다니면 되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 공사도 필요 없다. 노동방식 면에서 벼농사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서 하는 방식이고, 밀 농사는 개인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의 차이는 알파벳과 한자 같은 문자나, 체스와 바둑 같은 게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강수량이라는 기후적 차이는 건축 디자인의 차이도 만들었다.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잉여 농산물은 사회 계층을 만들었고, 나누어진 사회 계층은 잉여 시간을 만들었으며, 잉여 시간은 문화를 만들었다. 문화는 다시 기후적 제약의 차이에 의해서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만들었다. 1차적으로 문명의 생각이 창조되자 서로 다른 생각은 만나고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2차적인 창조가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문명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도시는 창조의 플랫폼이었다. 다른 생각들의 융합이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르네상스의 도시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점점 더 빠른 교통수단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걸어 다니다가 점차 말과 같은 동물의 에너지를 이용하면서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교통수단의 발달이 '공간의 압축'을 만든 것이다. 공간이 압축되자 다른 문화 간의 융합이 일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 변종이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에서 발전한 문화는 이종 교배를 통해서 2차적인 창조를 만들고 그렇게 다음 세대의 문화가 탄생한다. 이렇듯 문화의 진화 과정은 생명체의 진화 과정과 동일하다. 그래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를 유전자적으로 이해하고 '문화 유전자(밈)'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차이'와 '융합'에 이어서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요소는 '기술'이다. 앞서 말한 융합 역시 교통 기술 발전이 만들어 낸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할수록 문화의 2차적 변종의 탄생은 가속화되고, 여기에 새로운 기술혁명까지 더해지면 문화의 파생과 결합이 방향에 큰 흐름이 생겨난다. 

 

 

보통 수렵 채집을 통해서 한 사람이 먹고살려면 가로 세로 각각 1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인 100만 제곱미터의 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을 하게 되면 한 사람이 먹고사는 데 5백 제곱미터의 땅만 있으면 된다. 수치상으로는 한 사람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땅의 면적이 2천 분의 1의 면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과거 수렵 채집 때 1명이 사냥을 하면서 먹고살던 땅에 농사를 지으면 2천 명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농업은 좁은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배가 고팠던 인간은 수렵과 채집보다는 인공적으로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농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최초의 문명인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과 개미의 특징은 둘 다 좁은 지역에 많은 개체 수가 사는, 단위 면적당 개체수 밀도가 높은 군집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단위 면적당 개체 수가 많은 종이 모두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개미와 인간의 경우로 미루어 보아 농업 기술은 고밀도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 집단에서는 나오지 않는 기술인 것 같다. 농업을 통해서 개미처럼 미로가 높은 군집 생활을 하게 된 인간은 개미처럼 사회 내에 신분 계층을 가지게 되었다. 개미 사회에 여왕개미가 있듯이 인간 사회에 왕이 생겨났고, 두 사회 모두 하층부에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계급이 있다.

벌도 개미처럼 밀도가 높은 군집 생활을 하는 곤충이다. 하지만 벌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 이유는 벌은 날개를 가지고 멀리까지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걸어야 하는 개미는 갈 수 있는 영역이 좁다. 반면에 벌은 날개 덕분에 넓은 면적에서 빠르게 꽃의 꿀을 수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도 고밀도 군집 생활이 가능했다. 그래서 벌 중에는 농사짓는 종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서도 찾아보면 벌처럼 이동 속도가 빨라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제국일 일궜던 민족이 있다. 바로 몽골 민족이다. 몽골 민족은 말을 타고 멀리까지 빨리 갈 수 있었다. 마치 날개 달린 벌처럼 몽골 민족은 농사를 짓지 않고도 사냐을 하거나 주변 민족을 약탈하면서 유목민족의 생활 양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벌 같은 날개도 없고 몽골 민족 같은 말도 없었던 초기 인류는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좁은 공간에 모여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농업을 통해서 수렵 채집보다 2천 배 가량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공간을 만들면서 인류는 지능상의 큰 변화를 만들게 된다.

 

 

농업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인공 생태계'다. 인간이 선택한 몇 개의 종을 대량으로 복제하여 단순한 생태계를 만들고 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방식이 농업이다. 인류 문명은 다양하게 계속 진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본질을 들여다보면 1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명은 단순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인터넷 가상공간 역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대표로 '인공 생택를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역사의 첫 단추가 농업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밀 농사를 짓는 서양에서 수학이라는 논리 위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관이 만들어져 가는 동안, 벼농사를 짓는 동양에서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상대적인 가치관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상대적인 가치관 외에도 동양 문화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비움'이다. 여기에서 비움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준비라는 의미가 더 크다.

  •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있는 것(有)이 이로운(利)이 된다는 것은 없는 것(無)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 노자 도덕경 11장, 남만성 역

  • 석가모니는 비움의 가르침을 펼쳐서, 마음을 비움으로써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인생의 모든 고난은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유하지 말고 비우라고 가르친다. 이는 일반적인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과 해탈이다.

 

 

SPACE vs 空間, 동서양의 다른 가치 체계는 공간을 뜻하는 단어만 비교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인들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다. 이 단어는 우주를 뜻하기도 하는 'universe'와 같은 의마다. 'universe'는 'cosmos'와 동의어다. 그런데 'cosmos'는 '규칙'이라는 뜻을 가지기도해서, 반대말을 '불규칙'을 뜻하는 단어인 'chaos'다. 서양 언어 속 단어의 상관관계를 보면 '공간', '우주', '수학', '규칙'은 같은 범주에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인의 머릿속에 '공간은 수학적 규칙을 갖는 것'이라는 관점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한 한자 '공(空)'과 사이라는 뜻한 한자 '간(間)' 합성된 단어다. '사이'라는 것은 두 개의 개체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간(間)'은 둘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공간을 뜻하는 단어 하나만 살펴봐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수량이라는 환경 요소가 동서양에서 두 가지 다른 공간적 특징을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벽으로 공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서양 건축의 지붕에는 처마도 거의 없다. 반면 동양에서는 띄엄띄엄 놓인 기둥과 긴 처마로 인해 내외부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특징이 있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동양에서는 철학자의 생각도 '구분'보다는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자는 "두 개의 근원은 하나다. 그 둘은 단지 이름이 다를 뿐이다. 비밀은 둘의 일치된 조화에 있다."라고 말했다. 동양 철학에서는 만물을 음과 양 두 개로 나누어서 생각하지만, 두 음양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같은 이유로 동양의 건축 공간은 항상 내부와 외부, 자연과 건축물의 융화를 통해서 두 개체 간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따라서 동양의 빈 공간은 규정되어 있기보다는 유동적이며 내외부를 관통해서 흐르는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수량은 농사와 주요 품종을 결정하고 농사법은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형성했다. 또한 강수량은 건축 재료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서 건축 공간의 성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반대로 생각은 건축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자연환경이라는 부모는 사람의 생각과 건축 공간이라는 두 명의 자녀처럼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새로운 생각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서 융합할 때 이루어진다. 보통 이런 다른 생각들은 충돌하고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이 새로운 생각으로 통합되면서 문화는 한 단계 발전한다. 모순을 새로운 이론으로 화합시키는 방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과학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잭 아니다>에 의하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구상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해서 규칙을 찾아낸 갈릴레오'의 생각과 '아주 거대한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한 케플러'의 연구를 합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전기에 대한 연구'와 '자기에 대한 연구'를 합쳐서 전자기 방정식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특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그리고 '뉴턴의 역학'과 자신의 '특수 상대성이론'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이처럼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화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루이스 칸 안에 노자 있다.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의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 노자 <도덕경> 1장, 남만성 역

  • '나는 위대한 건물은 '잴 수 없는 것unmeasurable'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디자인 과정에서 '잴 수 있는 것measurable'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에는 '잴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 루이스 칸

 

미스나 코르뷔지에가 한 융합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문화 유전자를 빌려 쓰는 '공간을 뛰어넘는 융합 능력'이라면, 루이스 칸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문화 유전자를 도입하는 '시간을 뛰어넘는 융합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간을 초월한 융합 능력'이 칸을 위대한 건축가로 만든 것이다.

 

 

안도는 "건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게끔 해 주는 중간 장치다. 중정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자연은 매일 매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중정은 집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핵이며 빛, 바람, 비와 같은 자연의 현상을 전달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안도의 건축 철학은 '물의 교회'에 잘 나타나고 있다. '물의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방문객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를 찍는 카메라처럼 계속해서 멋진 장면을 캡처하게 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 있는 요소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방문객에게 깨달음을 주게 하는 것이 안도가 추구하는 건축이다.

 

 

복잡한 진입로는 일본 전통 건축의 공간 구조적 특징이다. 일본 전통 건축은 그 안에서 경험하는 사람에게 기대감을 극대화하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 진입로를 특별하게 디자인해 왔다. 예를 들어서, 다도를 하는 방은 집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하며, 그곳에 가기 위해서 보통은 '로지Roji'라고 불리는 정원을 통해서 가게 되어 있다. 이 정원을 통과하면서 방문객은 몇 개의 문을 거쳐야만 했다. 일본이 이런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귄터 니츠케의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Time is Money - Space is Money'이라는 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떠러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 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오브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 건축의 입체적 구성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기 위해서 안도는 그의 건축물의 내외부에 복잡한 경로를 만들어 놓는다. 이 복잡한 경로를 따라 걸으면서 방문객들은 자연과 건축의 다양한 관계를 보여 주는 다양한 장면을 감상하게 된다. 본인들의 신체를 사용하여 이동하며 얻은 장면을 수집하면서 방문객들은 머릿속에 전체적 공간을 구축하게 된다. 안도의 건축에서 방문객의 신체는 측량 기구고, 건축물은 신체라는 측량 기구를 이동시키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신체를 측량 도구처럼 여기고 여기저기 다른 곳을 관찰하게 하고 경험자의 머릿속에서 전체를 구성하게 하는 방식'.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바로 영국 픽처레스크 조경 디자인의 대표 주자 험프리 랩턴의 디자인 방식과 동일하다. 동양의 1인칭 중심의 정원 디자인 방식은 도자기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서 유럽의 조경 디자인을 바꾸고 수백 년이 지나서 다시 동양의 건축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픽처레스크 조경 디자인과 안도의 건축이 비슷한 것은 동일하게 '1인칭 시점의 다양한 관계 변화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의 문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다른 종의 나비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가 섞여서 똑같은 색깔과 패턴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뮐러 의태'처럼, 영국의 픽처레스크 조경 디자인과 안도의 건축 디자인은 같은 전통 동양문화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픽처레스크와 안도는 건축 분야의 뮐러 의태다.

 

 

20세기까지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컴퓨터로 표현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 들어서는 컴퓨터의 상상력을 빌리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그런 시도를 파라메트릭Parametric건축이라고 부른다. 파라메트릭이란 굳이 번역하자면 수학에서 '매개 방정식'의 '매개'에 해닿아는 단어다. 매개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둘 사이에서 양편의 관계를 맺어 줌'이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파라메트릭 건축은 건축가가 종이에 스케치를 하듯이 최종 결과물을 직접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최종 결과물 사이에 숫자 같은 매개 변수를 조정해서 예상하지 못한 최종 형태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형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규칙이 전혀 없는 불규칙한 복잡함이다.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게리는 디자인할 때 종이를 구겨서 던지고 맘에 드는 종이를 주워서 3D스캐너를 통해 형태를 컴퓨터 데이터화시킨다. 이런 형태는 완전 무작위한 복잡함이다. 이와는 달리 복잡해 보이는 수학적 규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과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날씨나 자연계 속의 디자인은 너무 복잡해서 불규칙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자연계의 불규칙은 실은 아주 단순한 수학적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카오스 이론이다. 이는 일종의 믿음과도 같다. 천체의 움직임을 보면서 수학적 규칙을 찾아냈던 생각 유전자가 이와 같은 디자인을 추구한다. 파라메트릭 건축 디자인은 후자에 속한다. 이들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려고 한다.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수학적 규칙을 가진 형태를 추구하는 서양 전통 건축 디자인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숫자를 입력해서 만든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같은 컴퓨터 언어, 즉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이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강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패션, 건축, 산업 디자인 등 각종 디자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 왔다. 패션은 옷감을 가위로 자르고, 바느질했으며, 건축에서는 돌을 쌓고, 나무를 깎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각 분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에 근거해서 서로 전혀 다른, 다양한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컴퓨터에서 디자인하고, 스크린상에서 컴퓨터로 만든 3차원 그림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그 형태를 CAD, CAM(Computer Aided Design, 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비슷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매스 미디어의 과다한 노출로 인해 서로 점점 더 베껴 가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분야의 '다양성'이 사라져 가는 추세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 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이렇듯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현대 사회의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 모두에 '디지털과 융합한 사람들만이 사용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대륙이 만들어졌고, 기술로 인해서 우리의 실제 공간이 새롭게 재구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다. 역사를 보면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 유전자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그 '다름'이 기후 변화에서 온 것이든,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든, 전공 분야의 차이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다. 지금 시대의 다름의 원천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유전자다. 아날로그 유기체인 인간이 디지털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융합하여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다음 시대는 이 융합에 성공한 사람들이 생존할 것이고, 디지털과 융합에 성공한 자들만이 창조적 생각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쳐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구보다도 디지털화되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 있는 을지로에 가고, 1980년대 리메이크 노래를 듣고, 뉴트로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는 이유도 있다. 손 글씨 쓰기 연습, 색칠하기 연습, 가구 만들기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열풍은 지나치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나 자신은 데이터화된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디지털 사진들로 대변된다. '나'라는 존재가 비트로 구성된 데이터화되는 현실은 원자로 구성된 몸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데이터로 대체되어 가는 나를 찾기 위해서 더욱 더 물질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문화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공간의 압축을 통한 융합, 서로 다른 학문 간의 융합,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창조는 서로 다른 재료의 융합에서 나온다. 한 번이라도 요리를 해 본 사람들은 이 원리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요리는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서 섞일 때에만 완성된다. 섞이지 않으면 요리가 아닌, 그냥 재료일 뿐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기후의 변화다. 인류 역사의 첫 번째 문명은 기후 변화, 다시 말해 빙하기가 끝난 지구 온난화에서 시작되었다. '지구 온난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아닌가?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역시 지구 온난화 시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지구 온난화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인 두 번재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모든 문화혁명의 첫 번째 도미노가 기후 변화였다. 그 도미노가 쓰러졌을 때의 연쇄 반응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시작될 또 다른 연쇄 반응은 엄청날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 공간의 진화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더 많이'와 '더 빨리'다.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고밀화 공간으로 진화했고, 더 빠른 교통수단으로 공간을 압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현재 인간은 인구 천만 명의 도시를 만들었고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을 가는 세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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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과 확산의 반복, 시간의 흐름과 진화의 흔적!

 

 

[본문발췌]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입니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헌사 중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다양성의 증가일 뿐. -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

 

 

우리는 생존 기계, 즉 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분석과 관계, 본성과 상황, 추상성과 실용성 등은 서양과 동양의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키워드...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성공하는 사람들에겐 남다른 재능과 특별한 기회, 계속되는 놀라운 행운이 있었다.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를 만큼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저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 의미, 그리고 돈이죠. 제 경우, 그중에 제일은 '재미'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맹세를 했죠. 재미없는 일은 평생 안 하겠다고요. 요즘 사람들을 보면 주로 돈에, 그리고 '노벨상 수상의 영광'과 같은 의미에 너무 집착하며 사는 것 같아요. - 파인만

 

 

생물학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의미 있는 물음 - 무엇, 어떻게, 왜 - 이 존재하며, 그 물음에 대해 생물학의 여러 분과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각자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분류학은 '무엇'에 대한 대답이고, 분자생물학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이며, 진화생물학은 '왜'에 대한 탐구입니다. - <이것이 생물학이다>, 에른스트 마이어

 

 

137억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타임라인에서 역사의 대전환점을 만들었던 여덟 번의 '임계국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 여덟 번의 임계국면은 차례로 우주의 탄생(137억 년 전), 별의 탄생(135억 년 전), 원소의 생성(135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의 생성(45억 년 전), 생명의 탄생(38억 년 전), 집단학습의 출현(20만년 전), 농경의 시작(1만1000년 전), 근대 혁명(250년 전)을 말합니다. 저자들은 각 임계국면에서 매번 차원을 달리하며 복잡성이 증가했다고 말합니가. 그리고 그때마다 다양성, 관용과 개방성, 상호관련성, 정보의 축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에 빅 히스토리의 분수령이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대부분의 과학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확실성 싸움이라기보다는 어떤 설명이 '더 그럴듯한가?'를 놓고 벌이는 개연성의 싸움이다.

 

 

옛날에는 자연과 생태적 조화를 이루고 살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평등했고 전쟁도 없었으며, 어머니 대지에서 꼭 필요한 것만을 가져가고 남는 것은 되돌려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국주의, 산업주의, 자본주의, 과학주의라는 악이 들어와 이들을 덮쳤다. - <과학의 변경지대>, 마이클 셔머

 

 

르워틴은 언젠가 "본질은 맥락과 상호작용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그가 <DNA 독트린>에서 논의한 상호작용은 유전자와 환경, 개체와 환경, 그리고 원인과 결과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이런 상호작용들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는 유전자와 환경의 효과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 표현형의 범위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 유전자가 여러 원인들 중에 특권적인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환경이 개체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습니다.

 

 

3차 산업혁명의 핵심 조건 : 재생 에너지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수평적으로 공유되는 혁명이 시작 - 제러미 리프킨, <3차 산업혁명>

  • 화석 에너지에서 지속 가능한 재생 에너지로 전환

  •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니 발전소를 각 건물마다 설비

  • 각 건물의 남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의 발명과 보급

  •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공유

  • 교통수단을 수소 연료 차량으로 대체하여 에너지를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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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과 풍요, 편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합리, 효율, 성장 제일주의, 과학만능주의, 물질주의가 어떻게 생명과 자연에 적대적인 야만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일본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를 방출하려고 계획하는데, 그들 앞 세대의 실수(미나마타병)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본문발췌]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목숨 받아 태어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력대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기쁨을 알 수가 있다.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에게는 그런 기쁨을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나는 슬펐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보다 복잡하고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지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동양의 덕성이 그 체질에 감추고 있는 전제주의와 서구 근대가 기술의 역사 속에서 관철해온 합리주의의 더없이 황폐한 결합에 의해 일본 근대 화학산업은 발전하였고, 이 열도의 골수에 파고든 썩은 종양의 한 부분을 미나마타병 사건은 보여주고 있었다. 

 

 

미나마타병 사건의 모든 양상은 단순한 중금속중독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공해문제 혹은 환경문제라고 하는 개념만으로는 묶어낼 수 없는 양상을 지니고서 이 나라 근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연관된다면, 그 사상과 행동은 그 인간의 전 생애를 건, 어떤 결정적인 작업을 강요하게 된다.

 

 

미나마타병의 원인물질은 메틸수은화합물이다. 신일본질소 미나마타공장의 아세트알데히드 초산 공장설비 안에서 생성된 메틸수은화합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 미나마타만으로 방류됨으로써 만의 내부가 오염되었고 만 안쪽을 오염시킨 메틸수은화합물은 어패류의 체내에 축적되었다. 미나마타병이란 이 어패류를 지속적으로 섭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중추신경계의 중독성 질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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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er & number cruncher의 조합, 숫자에 가치를 더하는 이야기의 힘!

 

 

[본문발췌]

 

 

스토리가 뒤를 받쳐주지 않는 가치평가는 영혼과 신뢰성이 없으며, 스프레드시트보다는 스토리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의 성공 여부를 재는 척도는 창의성이 아니라, 약속 전달과 이행능력이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숫자는 우리에게 정밀하고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게 하는 균형추가 된다. 하지만 이런 정밀성은 대개 허상인 데다, 숫자가 개입하는 편향의 여지도 크다.

 

 

투자를 하면서 당장 부딪히는 문제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너무 많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데이터 과부하로 아이러니한 결과가 생겼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단정 지어 하는 말처럼, 모든 데이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의사결정의 단순성과 비합리성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또 다른 모순된 결과는 여러 사업 논의를 숫자로 지배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숫자를 믿기는커녕 점점 불신하면서 스토리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스토리를 숫자로 바꾸는 프로세스

  • 1단계: 가치평가를 위한 비즈니스 스토리 만들기. 이 단계에서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회사가 장차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감의 의견이 담겨 있다.

  • 2단계: 스토리의 가능성, 타당성, 개연성 시험하기. 가능성 있는 스토리는 많지만, 가능성 있는 스토리가 전부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개연성을 가진 것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

  • 3단계: 스토리를 가치 요인으로 전환하기. 스토리를 분해한 다음 이것을 시장 규모나 현금흐름, 위험 등 가치평가를 위한 투입변수로 전환할 방법을 관찰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스토리의 각 요소가 숫자로 표현되어야 하며, 반대로 각 숫자들 역시 스토리의 요소요소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 4단계: 가치 요인과 가치평가 연결하기. 투입변수를 기업의 최종가치와 연결하는 내재가치평가 모델을 만든다.

  • 5단계: 피드백 고리 열어두기. 그 회사를 더 잘아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조언을 활용해 스토리를 세세하게 다듬고 필요하면 수정도 한다. 스토리를 다르게 했을 때 기업의 가치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산해본다.

  

변화는 상수이다. 모든 가치평가의 시작은 기업에 대한 스토리이고, 평가의 시발점이 되는 수치들은 그 스토리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스토리 자체가 변하게 된다. 스토리가 변하는 원인은 금리나 인플레이션, 새로운 경제 지도의 탄생 등 거시경제의 변화 때문일 수 있다. 또는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 기존 경쟁자의 전략 수정, 일부 경쟁자의 시장퇴줄처럼 경재 역학이 바뀐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어떤 스토리의 변화는 경영진의 구성원이나 경영 전술이 바뀐 데서 비롯될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스토리텔링에서는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넘버크런칭도) 한번 정해진 스토리는 실제 세계에 완벽한 면역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스토리의 힘, 스토리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 감정적 관계를 만들어 더 오래 생생히 기억되게 하며, 청자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스토리텔링의 위험, 스토리가 감정을 건드리고 과거의 경험이 가끔씩 거짓 기억으로 조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숫자를 은근슬쩍 끼워넣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토리텔러가 공상의 세계를 헤매고 있을 때 공상 세계로의 여행이 가능성이나 개연성도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그를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청자를 압도할 정도로 스토리의 힘이 강력하다면, 약속된 결과를 달성하는 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찰스 맥케이는 시장 거품을 다룬 자신의 고전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서 튤립구근부터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회사에 이르기까지 매도자들이 모든 것의 가격을 부풀리고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 스토리를 활용하는지 그리고 투자자들이 이런 매도자들의 사기에 계속해서 속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다. 금융 시자의 부상과 미디어의 성장으로 스토리텔러들의 청중이 확대되었고, 더불어 그들이 입힐 수 있는 피해의 잠재 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사업 활동에서 스토리는 매우 중요하다. 스토리를 이용하면 기업은 투자자, 고객, 직원들과 순수한 사실이나 숫자만 가지고는 절대로 힘든 수준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는, 특히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스토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스토리텔러는 현실을 망각하고 성공을 보장하는 가상의 세계를 날조해낸다. 스토리에 넘어간 청자들은 회의적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의심도하지 않은 채 해피엔딩만을 원하며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처음으로 스토리의 요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 연극의 관찰을 바탕으로 모든 스토리에는 도입부, 중간부, 결말부가 있어야 하며, 모든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돼 있을 때 스토리가 계속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스토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스토리 진행에 맞춰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도 변해야 한다. 놀랍게도 이런 스토리 구조는 오랜 세월 유지돼왔다.

 

 

19세기 독일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구스타프 프라이타크는 이런 스토리 구조에 살을 붙여 다섯 가지 요소로 이뤄진 새로운 스토리 구조를 만들어냈다.

  • 발단이나 자극의 순간: 스토리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해야 할 주요 갈등이 소개된다.

  • 심화나 상승: 이 단계에서는 사건이 추가로 발생하면서 스토리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비극의 심화 단계에서는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고, 희극에서는 고난이 이어진다.

  • 절정이나 전환점: 사건의 방향이 전체적으로 뒤바뀐다. 비극은 좋은 쪽에서 나쁜 쪽으로 변하고, 희극은 나쁜 일들이 사라지고 좋은 일들이 펼쳐진다.

  • 반전이나 하강: 여기서는 앞의 3단계에서 시작된 변화의 영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 대단원: 비극이라면 스토리는 비참한 결말로 끝난다. 또는 주인공의 승리나 패배를 보여주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소설의 스토리가 주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창의성에 제약이 없는 것에 반해 비즈니스 스토리는 많은 제약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영화 각본이나 소설을 쓴다면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세상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고, 충분히 잘만 쓴다면 독자를 그런 세상으로 얼마든지 데려갈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토리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창의성만이 아니라 신뢰성 그리고 스토리에 담긴 약속을 이행하는 능력도 비즈니스 스토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에 맞게 일반적인 스토리 구조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러가 밟아야 할 단계

  • 자신의 사업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라. 자신의 사업과 회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를 만들기 힘들다. 무엇을 하는 사업이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어설프고 혼란스럽다면, 비즈니스 스토리에도 그런 혼란은 고스란히 반영된다.

  • 청중을 이해하라. 같은 회사일지라도 듣는 대상에 따라(직원, 고객, 잠재적 투자자) 스토리를 조금씩 변형할 필요가 있다. 청자마다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 사실대로 말하라. 사실 훼손만큼 스토리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회사와 경쟁사 그리고 확보하려는 시장을 철저히 공부하는 것은 스토리텔러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스토리를 말하기 전 사실 점검 단계에서 스토리텔러는 언론에서 활용하는 다음 5W를 응용해서 적용해야 한다.

    • who: 회사의 고객은 누구이고, 경쟁사는 누구이며, 직원은 누구인가?

    • what: 지금의 사업은 어떤 모습이고, 미래의 사업 모습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 when: 언제가 되면 또는 얼마나 걸려야 회사의 사업이 비전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발전하는가?

    • where: (시장과 지리적 측면에서) 영업활동을 하려는 곳은 어디인가?

    • why:  이 시장에서 승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구체적으로 말하라. 회사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가 어떤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비즈니스 스토리는 더 쉽게 기억될 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커진다.

  • 결말에 공을 들여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청중의 가슴을 뛰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동시에 압축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결말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스토리의 특징

  • 단순하다.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는 초점을 흐리지 않으며, 핵심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 그리고 메시지 전달에 방해가되는 복잡함과 난해함은 과감히 없앤다.

  • 믿을 수 있다.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고, 약속 이행이 가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는 현실의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주도한 게임에서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는 동안에도 사업적 한계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 진솔하다. 진실성은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 말이지만 의미가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당신의 사업이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담아낸 스토리가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감성을 건드린다.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는 말은 스토리텔러가 무대에서 울먹이며 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말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토리텔러 자신이 스토리에 어떤 열정도 가지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열정을 가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스토리가 관계를 만들고 기억에 쉽게 남게 한다면 숫자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숫자는 정교하지 않은 스토리도 정밀하도록 느끼게 만들며, 불확실성을 다뤄야 할 때에도 숫자를 보고 판단하면 마음이 놓이게 된다.

 

 

숫자의 힘. 정밀하다. 객관적이다.통제를 나타낸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관리할 수도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어떤 산업 분야는 산출량과 진행도를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어 재고관리 분야에서는 실시간 재고 보유 현황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기업은 재고를 크게 줄이는 동시에 고객 니즈를 정확하게 충족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 슬로건은 조금 다르게 바뀌었다. "측정하고 있다면 이미 그것을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많은 기업에서는 진지한 분석을 많은 숫자들로 대체해버렸다.

 

 

숫자의 위험.

  • 정밀성에 대한 착각. '정밀precise'과 '정확accuate', framing bias

  • 객관성에 대한 착각. 숫자의 틀짜기(framing) 방식에 따라 반응도 다르게 나온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숫자에 대한 두 번째 착각을 야기한다. 바로 숫자는 객관적이고, 넘버크런처는 어떤 의도도 숨기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 통제에 대한 착각. 무언가를 측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교한 측정 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숫자가 상식을 몰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가올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 숫자를 위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면 큰 문제에 빠질 수 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언제라도 아웃소싱에 밀려 보다 저렴한 다른 넘버크런처나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는 신세가 된다. 기계처럼 객관적이고 오직 숫자 위주로만 결정을 내리는 것이 본인의 강점이라면 기계가 그 일을 훨씬 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순수한 숫자 위주의 투자결정 과정은 남들이 모바아하기 쉽다.

  • 모두가 똑같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어쩌면 분석 도구까지 똑같다 보니 부각되는 투자 기회도 똑같을 것이다. 결국 모두가 이익을 보려고 동시에 같은 투자에 달려든다. 이런 과정에서 모두가 동시에 같은 종목을 사고파는 '군집herding'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 다음에는? 군집은 모멘텀을 만들고, 모멘텀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의 투자결정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만약 기본적 과정(사업, 시장 또는 경제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하면 군집은 집단 전체의 실패를 이끄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데이터라는 것은 어쨌든 과거의 데이터이고, 구조적 변화가 발생해 미래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다면 데이터 기반의 미래 예측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 데이터 중심의 세상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데이터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과거보다 훨씬 자주 경기호황이나 붕괴가 올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장의 거품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클 것이며, 당연하게 거품이 터지는 순간 펼쳐질 대학살극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잔혹할 것이다.

  • 집단의 광기를 부수는 최고의 방법은 대안적인 (그리고 더 현실적인) 스토리를 결합하고, 숫자로 그 스토리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숫자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숫자를 가지고 씨름하면 할수록 순수한 숫자 주심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회계에 대한 것이건 시장에 대한 것이건 금융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나는 금융 데이터에 온갖 잡음이 존재하고, 그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과학적 방법을 신봉하지만, 순수한 과학자가 얼마나 될지는 의심스럽다. 모든 연구에는 편향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단지 편향의 방향과 크기가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숫자 중심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어떤 편향에 빠졌는지 알아보고, 그 편향에 맞게 숫자를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숫자를 과정이나 변수에 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숫자를 통제하거나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 역시 오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위험을 측정한 수십 가지의 수치는 말할 수 있고, 그것의 학문적 배경까지도 술술 설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실제로 나는 위험이 정확히 무엇이고, 그것이 투자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좋은 비즈니스 내러티브: 단순해야 한다. 신뢰성이 담겨야 한다. 영감을 주어야 한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는 단순하고 믿을 수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를 말하려면 사업과 그 사업이 속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비즈니스 내러티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구체적인 부분과 세부사항일수록 말을 아끼고, 큰 그림과 비전에 대해서는 많이 설명해야 한다.

 

 

 

가능성, 타당성, 개연성

  • 기업에 대한 스토리를 구상한 다음에는 제일 먼저 그 스토리의 가능성Possible 유무를 시험해야 한다.

  • 두 번째 시험은 타당성Plausible 시험으로, 가능성보다는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스토리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런 스토리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단은 비슷한 스토리를 성공시킨 다른 기업의 선례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스토리텔러의 역사에서도 그런 성공적인 기업들과 비슷한 선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 세 번째이자 가장 어려운 시험은 스토리의 개연성Probable에 대한 시험이다. 개연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정량화할 수 있어야 하며, 스토리를 숫자로 전개했을 때의 예상치를 최대한 정확하게 추산해서 제시해야 한다. 가능성이 있다고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며, 타당성 시험을 통과한 스토리도 개연성 시험에서는 낙제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서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전통적 가치평가는 개연성을 중심으로 하고, 그런 개연성을 바탕으로 매출과 순익, 현금흐름 등의 형태로 기댓값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타당성을 중심으로 삼으면 주로 미래 기대 성장률 측면에서 허점이 생긴다. 가능성만 따진다면 일어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 없고,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평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른바 실물옵션모형real option model(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하나의 대안option이 아니라 여러 개의 대안에 소규모 투자를 함으로써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적 의사결정 방법 중 하나)을 적용해야 한다.

  • 구시대의 가치투자자들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에 나온 배당 중심 가치평가 모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종목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격언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따. 그래서 그들은 '개연성이 아주 높은' 내러티브를 말하는 회사에 투자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기업이 전체적으로 확실하면 좋겠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어느 정도 공격적인 가치투자자는 개연성의 경로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 내러티브의 개연성이 낮아도 회사의 주가가 적정가격이라면 투자할 것이다. 성장투자자는 타당성이 있는 스토리에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성장 예측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예상에는 위험이 크게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후기 단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몰려 있는 곳은 타당성 스팩트럼의 아래쪽으로, 그들은 유망성과 잠재력이 있는(타당성이 낮은 내러티브를 생각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기업에 투자한다. 초기 단계 벤처캐피털리스들은 가능성을 보이는 내러티브에 운을 건다. 그들은 가능성 시험을 통과한 스토리의 일부만이 타당성 시험을 통과하고, 또 ㄱ중에서 아주 일부만이 스펙트럼의 가장 마지막인 개연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스토리텔러가 제시하는 매출 성장, 이익률, 재투자, 위험에 청자가 동의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스토리텔러의 견해에 일관성이 없어서 이런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면 스토리는 개연성을 잃는다.

 

 

가치의 철의 삼각관계의 세 꼭짓점(성장, 위험, 재투자)은 비즈니스의 가치 요인으로, 이 세 변수가 미치는 영향은 예측이 가능하다. 성장이 늘어나면 가치는 상승하지만, 위험이나 재투자가 증가하면 하락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토리텔러가 고성장, 저위험, 낮은 재투자율을 한데 묶어 말한다면 이 스토리는 앞 뒤가 맞지 않으므로 타당성도 없다. 고성장을 꾀하는 회사가 성장을 달성하려면 재투자를 높여야 한다. 그러니 평상시보다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치 분해하기

  • 스토리와 가치를 연결하려면 제일 먼저 내재가치평가에 대한 기본부터 이해해야 한다. 내재가치란 현금흐름, 기대 성장, 위험 등의 펀더멘털에 근거해 자산에 매겨진 가치를 의미한다. 내재가치에서 중요한 부분은 시장이 다른 자산에 매긴 가격이 얼마인지 전혀 알지 못해도(물론 그런 정보를 알면 도움이 되기는 한다.) 특정 자산의 가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현금 흐름할인법 모델은 위험 조정된 기대 현금흐름을 토대로 자산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내재가치평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자산가치(장부가치) 접근법도 내재가치평가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회계사가 추정한 고정자산과 유동자산의 가치가 기업의 진짜 가치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현금흐름할인법 평가는 가치와 기대 현금흐름을 연결하는 등식을 이용해 내재가치를 추정하며, 기대 현금흐름은 성장 추정치에(위험 반영 가중치를 적용함) 할인율을 결합한 것이다.

  • 사업 유형에 상관없이 가치 창조의 핵심 요인. 첫 번째는 기존 자산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으로, 수익 창출력earning power이 높은 자산일수록 낮은 자산에 비해 가치를 많이 창출한다. 두 번째는 성장가치로, 성장 결과에서 상충되는 부분들을 더하고 뺀 결과 값이다. 성장가치는 매출과 이익 증가는 더하고, 성장을 위해 들어간 재투자 비용은 뺀다. 세 번째는 위험이다. 위험이 높아질수록 할인율은 커지고 가치는 줄어든다.

  • 현금흐름할인법으로 가치평가를 할 때의 한 가지 단점은 계속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기업이 아주 오랫동안 영업활동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회사으 장기적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경우에는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될 수 있다. 이런 부도 위험은 사업 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여러 힘든 시험대를 거쳐야 하는 신생기업이나, 오래되고 쇠락 중인 시장에 속해 있고 부채가 아주 많은 기업일수록 높다. 그런 회사들의 기대가치를 추정하려면 투자자의 입장에서 부도 확률과 거기에 따른 결과를 분명하게 고려해서 부도 위험으로 조정한 가치를 다시 구해야 한다.

 

 

가격결정 스토리

  • (주식의) 가격결정은 대개 (매출 요인, 매출액, 순이익, 순자산가치에 대한) 가격 승수를 계산하고, 이 배수를 '비교 가능한' 기업들과 대조해보는 식으로 이뤄진다.

  • 사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현금흐름, 위험, 현금흐름의 불확실성, 기대되는 성장 수준과 효율성의 크기이다. 거래되는 자산(주식)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진다. 사업가치도 가격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수치지만,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 지배적 요소는 아닐 수 있다. 시장의 밀고 당기기(모멘텀, 유행, 기타 가격결정 요소)와 유동성(또는 유동성 부족)은 가격 자체에 독자적인 역동성을 부여하는 원인이 되어 가치와는 전혀 다른 시장가격이 매겨지게 할 수 있다.

  • 가격결정의 세 단계

    • 비교 가능하거나 비슷한 자산을 찾는다.

    • 투자자들이 회사들의 가격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척도를 찾는다. 기업에 가격을 매길 때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투자자가 '사용해야 하는' 척도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촉도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 회사의 가격을 결정할 때 초점을 맞추는 척도가 사용자 수라면, 우리도 그 척도에 초점을 맞춰서 해당 분야 회사의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 기업에 가격을 매긴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 회사가 사용자 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2013년 시장이 사용자 1명당 평균 100달러의 가격을 매겼다면 트위터의 시장가격이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다. 2013년 10월 트위터의 사용자 수는 2억 4,000만 명이었으며 시장가치는 대략 240억 달러였다.

  • 가격결정으로 나온 결과는 가치평가는 결과와는 매우 다를 수 있다. 어떤 결과 값을 사용할 것인지는 본인이 투자자인지 트레이더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여기서 트레이더에 대해 좋은 말도 나쁜 말도 할 생각이 없다. 투자자의 초점은 가치이고, 가격은 가치를 향해 움직일 것이라고 믿으며 투자한다. 트레이더의 초점은 가격이며, 그들은 가격 이동의 방향을 옳게 파악했는지를 통해 능력을 판단받는다.

 

 

가치평가 진단

  • 성장, 재투자, 투자의 질: 앞에서 성장, 재투자, 위험의 균형이 일관된 가치평가를 만들어내는 가치의 철의 삼각관계를 소개했다. 일관성을 검사하는 간단한 방법은 고성장 단계에서 예상되는 영업이익의 변화를 합산하고, 그 합산액을 같은 기간 동안 예상되는 재투자 변화로 나누면 된다(한계자본수익률=영업이익의 변화 / 재투자). 한계자본수익률marginal return on invested capital은 기업의 미래 투자가 좋을 것 같은지, 나쁠 것 같은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이다. 이 수익률이 기업의 자본비용, 역사적 자본수익률, 산업평균 등에 비해 너무 낮거나 높다고 판단되면 본인이 세운 성장과 재투자에 대한 가정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적신호이다.

  • 위험과 돈의 시간가치: 현금흐름을 할인하는 과정은 돈의 시간가치(다시 말해 현금흐름은 빨리 들어오는 것이 더 좋다.)와 계속기업으로서 회사를 운영할 때의, 위험을 반영해 가치를 조정하는 작업이다. 시간가치와 위험이 기업의 가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면 명목현금흐름(할인을 하지 않은 현금흐름)의 총액을 현재가치와 비교하면 된다. 돈의 시간가치는 재무학 수업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기본 개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금흐름이 들어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수록 가치는 놀랄 정도로 크게 떨어진다. 특히 위험이 높거나 고인플레이션 환경이라면 그 가치는 더욱 크게 낮아진다.

  • 현금흐름의 가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고성장하는 신생기업이라면 초기의 현금흐름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 초기 연도에는 순이익이 낮거나 순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한 이유이고, 고성장을 위해 재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한 이유이다. 주식투자자는 소유 지분이 미래의 주식 발행으로 희석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지만, 마이너스 현금흐름은 이런 희석 효과를 포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래의 주식 발행은 마이너스 현금흐름을 보충하기 위해 행해지므로, 만약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가치 추정에 통합한다면 희석 효과를 미리 포착하는 것과 같다. 간단히 말해 현금흐름할인법으로 가치평가를 할 때는 미래의 주식 발행 수를 추정해서 현재의, 주식 수를 조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미 가치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 자기자본의 마이너스 가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합한 것이 영업자산가치이며, 영업자산가치에서 순부채를 차감한 값이 자기자본가치이다. 하지만 영업자산의 가치가 순부채보다 낮으면 어떻게 될까? 자기자본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장가격이 0 이하가 될 리 없으므로 자기자본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의 재무상태가 심각하게 부실한데도 혹시나 흑자 전환으로 영업자산의 가치가 오를 수 있다고 희망하면서 계속 영업활동을 유지한다면 자기자본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기자본은 옵션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투자자 역시 자기자본을 옵션으로 처리해야 한다.

 

 

카너먼이 자신의 책에서 투자자의 심리에 대해 말했다시피, 투자와 주식 시장에서 경험은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과거의 성공에서 잘못된 교훈을 얻고, 실패에서는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망상에 빠져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어난 것이라고 기억한다.

 

 

기업 스토리는 불멸의 고전이 아니다. 기업 스토리는 언제, 어느 순간에도 바뀔 수 있는 내러티브이다. 또한 실적 보고와 재무제표만이 아니라 투자 발표, 자금조달, 배당 정책 등 여러뉴스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뉴스 발표로 인해 기업의 내러티브와 가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발표 내용에 따라 달라지며, 긍정적인 방향일지 부정적인 방향일지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뉴스 발표에 시장이 보이는 반응은 가치평가 보다는 가격결정 게임에 더 가깝다. 그리고 짐작한 것처럼 어떤 뉴스에는 주가가 크게 오르거나 내리지만 가치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어떤 뉴스에는 주가는 잠잠하지만 가치는 크게 변할 수 있다. 기업의 내러티브에서 최고경영진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들에 대한 뉴스는 주가와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시 스토리의 출발점은 기업이다. 시장과 경쟁 상황을 감안해 스토리를 구축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초점은 기업이다. 대다수 기업에는 이런 관점이 적절하겠지만, 통제가 거의 또는 전혀 불가능한 거시 경제 변수가 투자 실적을 좌우하는 사업에서는 이런 관점이 쓸모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원자재 시장의 성숙 기업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원자재 가격 변동이 미래의 순이익을 결정하며, 기업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크지 않다. 또한 경제 흐름에 미래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좌우되는 순환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위험이 큰 신흥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스토리 라인은 이사회와 경영진의 활동보다는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맞물릴 수밖에 없다.

 

 

거시경제 내러티브를 세우는 과정. 우선은 해당 거시변수(원자재, 경기 순환, 국가 등)를 식별하여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가치평가를 진행 중인 기업이 거시경제 변수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를 계산한다. 마지막으로 가치평가가 거시변수 예측에 어느 정도나 좌우될 것 같은지, 그리고 거시변수를 투입변수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기업의 라이프사이클, 라이프사이클 초기에는 내러티브가 숫자를 이끈다면, 후기에는 숫자가 내러티브를 이끈다.

  • 모든 가치평가는 내러티브와 숫자가 결합해서 탄생했지만, 지금이 라이프사이클의 어느 단계인지에 따라 내러티브와 숫자의 중요도는 달라진다. 초기 단계의 기업은 역사적 숫자가 거의 없고, 아직 사업 모델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가치를 견인하는 동인은 거의 전적으로 내러티브이다. 기업의 사업 모델이 가시적 형태를 띠고, 결과를 보이기 시작할수록 숫자가 가치평가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진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러티브가 더 중요하다.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내러티브는 뒤로 물러나고 숫자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 라이프사이클 단계가 진행되면서 매력적인 내러티브를 이루는 요소들도 바뀐다. 스타트업 단계에서 투자자를 이끄는 것은 큰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대한 내러티브expansive narrative이며, 큰 스토리를 말하는 기업들이 높은 가치를 보상으로 얻는다. 기업이 아이디어를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시장과 자원 제약으로 인해 내러티브의 범위가 좁혀지거 아예 와해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에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고 나면 내러티브는 '비용과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고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싸워야 한다. 수익성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다음으로는 기업이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는 확장성scalability을 강조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생산과 경영, 재무 능력의 한계를 시험받게 한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생산과 경영, 재무 능력의 한계를 시험받게 된다. 모든 시험을 다 통과하고 수익을 내는 성숙 기업에 올라선다면 내러티브의 중점은 '진입장벽'과 '경쟁우위'로 옮겨가야 한다. 이 두가지를 가졌는지에 따라 성숙 기업으로서 시장에서 이익과 현금흐름을 누릴 수 있는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쇠락 단계의 스토리는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규모를 줄이고 시장에서 사라지려는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계속 수익을 창출하고 투자자들에게도 탈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 가치가 아니라 가격결정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편이라면 상대평가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해당 기업의 주가가 경쟁사들의 주가보다 싼 편인지 비싼 편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럴 경우대개는 공통변수인 가격결정 승수를 선택해서 주가가 높은지 낮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업 라이프사이클 초기 단계에는 영업실적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거의 없다. 그럴 경우에는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사용자수, 다운로드 수, 구독자 수 등을 공통변수로 선택할 수 있다. 라이프사이클의 후기 단계로 나아갈수록 영업실적을 나타내는 척도를 가지고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수익성이 더 높아질 소지가 큰 성장 기업에는 매출액을, 성숙 기업에는 순이익을 척도로 사용하고, 쇠락 기업에서는 순자산가치(청산가치를 대변)를 척도로 사용하면 된다.

 

 

타인의 생각이나 투자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평가한 기업의 가치로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모든 스토리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담겨 있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스토리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포함될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꺼리지 않게 되면서 나는 한 가지 부수적 효과를 얻었다. 불확실성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으며,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거부감이 덜 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똑같은 회사에 대해서도 나의 스토리와 다른 투자자의 스토리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덕분에 나는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더 침착하게 받아들에게 되었다.

 

 

투자자와 직원, 고객을 끌어들일 때는 물론이고 성공적인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스토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비즈니스 스토리는 가능성, 타당성, 개연성의 시험을 거쳐야 하고 현실 검증을 거쳐야 하며, 필요한 현실 여건을 반영하여 스토리를 수정해야 한다. 어떤 스토리도 영원하지 않으며, 어떤 가치평가도 항구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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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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